늘 ‘그냥’ 지낸다고 답하는 나의 속마음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지인들은 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으레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묻는다.
‘하왈유’에 ‘암파인땡큐’로 답하면 될 것을 왠지 그 잘 지내냐는 질문앞에서 자판을 치던 엄지손가락이 잠시 갈팡질팡한다. 정작 질문한 사람은 그 다음에 나올 본론이 중요함에도 어쩐지 쉽게 답하지 못하고 진지하게 ‘나 잘 지내고 있나..’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못 지내는 것은 아닌데 잘 지내는지는 모른다가 맞겠다. 바꿔 말하면 엄청 만족스럽진 않은데 그렇다고 안 행복할 이유는 없어서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라고 할 수 있다. 별 거 아닌 말을 굉장히 이리꼬고 저리꼬는 듯 보이지만 복잡해 보이는 게 딱 요즘 내 심경이다.
요즘 내 24시간 중 23시간 정도는 완전 육아에 올인되어있는데 아마 그 영향이 크지 않나 싶다. 어른들 하는 말 틀린 게 하나없다고 임신 중 힘들어 끙끙대는 날 보며 그때가 좋을 때라고 하던 엄마 말이 그렇게 듣기 싫더니 요즘은 그 말이 또 그렇게 실감난다. (차라리 구체적으로 어떤 게 힘든지 알려줬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까.. 같은 미련한 생각을 하는중)
1. 스무살이후로 이렇게 땡전한푼 안 벌어본적은 처음인데다
2. 이렇게 오랫동안 외출을 못한 적도 처음이고
3. 남편의 퇴근시간을 이토록 간절히 바라게 될 줄이야
이 외에도 못먹는 음식들(예를 들어 음주..?)도 많고 아직 완전히 들어가지 않은 배와 뭔가 항상 꼬질꼬질한 상태의 나를 보고 있자니 다소 숙연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이런 감정을 느낄 시간이 있다는 건 몸이 편해졌다는 증거다, 하하.
주관과 자의식이 뚜렷하며 음주가무를 즐긴 프리맨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회상해보면 하루종일 나와 떨어지지 않는 아들을 코알라처럼 들쳐안고있는 내 모습이 그렇게도 어색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있거나 콤콤한 우유냄새가 나는 아들에게 코를 박고 부비고 있자면 뭔가 알수없는 벅찬감정이 엄청난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다소 변태적인 표현인가..!
아무튼 그러하다.
나는 오늘도 지난 나의 삶과는 초특급으로 변한 일상을 체험하고 있다. 하루하루 퀘스트깨듯 생활하며 아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재미. 아들로 인해 열린 세상에서 이전엔 몰랐던 단어들을 배워가고 쓰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렇게 조금씩 적응하며 이 안에서 조금씩 나만을 위한 시간도 쪼개보는 중이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브런치에 글을 써 본다든지 말이다. 물론 지금도 아들은 내 무릎에 딱 붙어 세상 불편한 자세로 자고 있는 중이고, 살풋 잠이 깨려할때마다 나는 <필살 궁뎅이 두드리기>를 시전하며 글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오늘도 나는 그냥,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