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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Jeong Aug 28. 2017

"난 책 한 권쯤 쓸 수 있을 거야."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아고타 크리스토프

인간이란 어머니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날 단 한 번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계속해서 태어난다.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조용히 새로 태어날 수도 있지만, 사고나 죽음 등의 충격을 통해 새로 태어날 수도 있는데, 어쨌든 우리가 매 순간 새로 태어나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과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는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각각 일정한 주기로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예를 들어, 미각을 느끼는 혓바닥 미뢰는 10일마다 새로 바뀌고요, 간이나 내장기관 등은 좀 더 걸리고, 척추 등의 뼈는 몇 년을 주기로 바뀐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 여러분의 몸에 있는 모든 세포들은 7년이 지나면 하나도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7년마다 몸의 모든 세포가 전부 다른 세포로 교체된다는 겁니다. 세포를 기준으로 본다면 7년 전과 7년 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거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이 일관성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것인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세포들은 매번 새롭게 바뀌면서 변해가는데 우리는 매 번 똑같은 일을 해야 한 해서 따분하고 괴롭다고 여기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전에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평생에 걸쳐 직업을 바꾸는 횟수는 평균 12번이라고 합니다. 어떤 직업이 자기한테 맞지 않으면 바꾸고, 이런 식으로 평균 12번을 바꾸는 것이죠. 이때 비슷한 커리어를 계속 시도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분야로 바꾸면서 자신의 천직을 찾아 헤매다, 결국 찾으면 거기서 빵! 하고 대박이 터졌다고 합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최근 한국인 평균 전직 횟수는 4.1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비슷한 커리어로 점프하는 소극적인 이직의 경우가 대부분인 듯해요. 예를 들어, 제약회사에서 제약회사로, 패션 회사에서 패션회사로 전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해요. 제약회사에서 패션회사로 전직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합니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가 당연히 있겠지만, 이렇게 해서는 이 일이 정말 나한테 맞는지 알아보기는 힘들 듯합니다. 그 회사가 나한테 잘 맞을지는, 그 회사에 또라이가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결정될 확률이 더 높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내 인생의 주도권을 넘겨주어야 한다는 게 굉장히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주도권을 넘겨주는 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일이 싫어서 전직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지금은 조그만 스타트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슬슬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인생에 대해 사춘기인지 온 듯합니다. 일은 나쁘지 않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는 최고 매출도 올렸고요, 올해가 3년 차라 운영에 조금 여유가 생겨서 무작정 스트레스만 받지는 않는 듯해요. 그런데 작년 이맘때만 해도 어떻게 더 키울 것인가에 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여러 가지 이유로 혼란이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내가 하고 싶은 건 다른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뭘 하고 싶은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건 글쓰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좀 더 알아보려고 몇 가지 모임에 기웃거리고 있는데요. 얼마 전 벌교에 있는 한 여관에서 밤새서 글을 쓰는 모임에 참가했습니다.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참가했는데요. 첫 번째는 '내가 글 쓰는 과정을 즐길 수 있을까?' 두 번째는 '그 글이 읽힐만한 가치가 있는가?' 다행히 글 쓰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임의 분위기가 다들 잘한다~잘한다~ 여서 그 글이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 냉정한 평가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몇 가지 다른 모임에도 나갈 예정입니다.


글 쓰고 싶다는 마음이 이 책이랑 무슨 상관인데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책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루카스가 남긴 일기 같은 삶의 기록입니다. 그러나 이 기록은 '사실'이나 '팩트'보다는 '자기가 살고 싶었던', 혹은 자기만 살고 있던 '자기만의 세계'를 글로 옮겨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각각의 등장인물에 자신의 욕망을 듬뿍 담아두었건 게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은 루카스에게 서점을 넘기고 글을 쓰로 떠난 빅토르에게 투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이제 쉰 살 밖에 안 됐어. 내가 담배와 술을, 그래 술과 담배를 끊는다면, 책 한 권쯤은 쓸 수 있을 거야. 몇 권 더 쓸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단 한 권이 될 거야. 나는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 빅토르


빅토르는 정말로 글을 쓰고 남기고 싶어 하죠. 그런데 좀 더 크게 보자면 빅토르의 이야기는 사실 루카스가 쓴 글이 아닙니다. 이 글의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자기 안의 무언가를 글로 쓰고 싶다는 욕망의 흔적인 것입니다. 그녀는 왜 글을 썼을 까요? 어쩌면 빅토르의 말에 힌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무것도 쓰지 않은 사람은 잊혀질 것이라서 그게 두려워서가 아닐까요? 혹은, 어렸을 적에 우리는 모두가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특별한 존재였지만 나이가 먹어가면서 점점 보통의 존재, 혹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가는 게 안타까워서, 그게 슬퍼서 글이라도 쓴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사에서 자기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을 대신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남이 만든 세계에서 다른 사람의 일만 해주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만의 세계를 잃어버려서 그림자가 흐릿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다양한 자리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각자 정말 독특한 자신만의 우주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참 듣고만 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자기가 가진 우주가 얼마나 흥미로운지, 보석처럼 반짝이는지, 그런 걸 말하지 않으면 모르고, 적지 않으면 잊혀집니다. 게다가 더 슬픈 건 세월이 지나서 쓸려고 꺼내보려면, 어쩌면 말하거나 쓰기 싫은 것이 아니라 기억이 없어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 기억을 가진 세포가 사라질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모두 다 조금씩 뭔가를 썼으면 좋갰습니다. 그 글 들이 남에게 기여가 된다면 더 좋겠지만, 자기만의 우주를 위해서라도 썼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히 장담하건대 여러분 모두 책 한 권쯤 쓸 수 있을 겁니다. 같이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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