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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Jeong Jul 29. 2017

나태해도 괜찮아

해변의 카프카 -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를 읽다가 가장 놀랐던 장면이 있었다면 어디였나요? 

조니워커가 고양이를 잡는 일? 하늘에서 정어리가 떨어지는 일? 커넨 샌더슨 대령? 사람마다 각각 놀랐던 부분이 달랐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놀랐던 부분은, 예상컨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부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냐면 말이죠. 카프카가 도서관에 있을 때 오시마 씨가 전화 왔다고 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들]

저는 필사를 자주 합니다.

주로 외국 원본을 많이 필사합니다. 영어책으로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The Alchemist) 필사를 완료했었습니다. 오만과 편견과 루이스 새커의 홀(Hole)  중간쯤 하다가 내팽겨둔 쉬고 있는 상태입니다. 요즘에는 코엘료의 브리다(Brida)를 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어로는 어린 왕자를 하고 있는데 진도는 잘 안 나가네요. 한국어는 소설책은 하지 않고 논어나 손자병법 등을 아침에 한 구절씩 옮겨 썼었고 요즘에는 채근담을 하고 있습니다.

 

[해변의 카프카 원서와 필사 노트]

일본어 책은 바로 이 책, 해변의 카프카를 하고 있습니다.

왜 필사를 하냐고 물으시면, 외국어 공부도 하고 책도 조금씩 읽는다고 정답처럼 답변하고 싶습니다. 공부하는데 효과가 있냐고 물으시면, 솔직히 어휘들만 본다면 일상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면, 문장 구조 굉장히 좋은 문장들이 많습니다. 특히 파울로 코엘료나 루이스 새커의 홀 등의 책은 중학교 정도의 어휘로 쓰여 있는데, 굉장히 글이 이쁩니다. 이런 글을 보면 번역본보다 원본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같은 어휘로 이런 글을 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외국어라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싶지만 한국어도 마찬가지죠. 소설가나 시인이 글을 읽은 후 내가 쓴 글을 보면 좀 한심하죠. 그런 차이들이 매일 조금씩이라도 쓰면 혹시 조금이나마 소화가 될까 하는 야망을 품고 하루에 일정 분량씩을 필사를 합니다.


[전화가 걸려오는 부분에 대한 내용, 오른쪽 페이지 마지막 3번째 줄에 "전화?"라고 나온 부분이 가장 놀란 부분]

해변의 카프카를 필사하는 도중에 정말 깜짝 놀랐던 장면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카프카는 가출한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세 소년입니다. 카프카는 가출한 상태에다 돈을 벌지 못하니 아껴야 했죠. 그래서 호텔에 저렴한 숙박비로 머물기 위해 호텔 여직원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오후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있을 때, 오시마 씨가 전화 왔다고 알리는 장면. 깜짝 놀랐습니다. 글을 눈으로 읽었다면 몇 줄만에 넘어갔을 장면인데, 글을 옮겨 적다 보니 그 사이에 머릿속에서 별 생각이 다 드는 겁니다. '누가 전화한 거지? 거짓말이 들켜서 아버지가 전화를 걸었나? 경찰인가?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전화를 한 거지' 원래 손에 땀이 많은 편인데, 이때는 땀 때문에 받혀둔 손수건이 흥건해졌었습니다. 한 자 한 자 옮겨 쓸 때, 주인공이 전화를 받으러 가면서 생각할 내용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전화의 주인공이 호텔 여직원이고, 진짜로 도서관에서 연구를 하는지 확인을 위해 전화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약간 안도가 되면서도 '괜히 놀랬네' 하고 살짝 실망했었습니다. 어쨌든 그 순간 '어! 필사하다가 이렇게 놀란 건 처음이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카프카 전에 영어 책을 몇 권 필사를 했을 때는 이렇게까지 몰입되지는 않았던 것 같았는데, 이때는 정말 확실하게 몰입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필사의 효능에 대해서 생각이 좀 더 명확해졌습니다. 글을 좀 더 깊게 경험할 수 있다는 점, 이게 필사의 매력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저는 성급한 편입니다

책을 읽을 때면 빨리 책을 다 읽고 다른 책 읽고 싶습니다. 특히 '질보다 양'이라는 생각이 더 강합니다. 하나를 꼼꼼히 완성하는 것보다는, 대충 완성해서 10번 정도 다시 만들었을 때 나오는 결과물이 더 낫다, 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그래서 한 사이클을 도는 시간이 빠른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뭔가를 빨리 달성하거나, 완성하고 싶어 합니다. 물론 이게 종종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에 항상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빨리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다 보니 결정을 빨리 못 내리거나 나태해지면 그게 참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항상 빨리 뭔가를 하고, 결정도 빨리 내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내려왔던 어떤 결론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긴 시간을 두고 살펴보면 그동안 저지른 대부분의 실수들은 욕심과 야심 때문에 빨리하려는 마음이 대부분의 문제를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나태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더 볼 것 없다는 생각에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는데, 얼마 뒤에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경험들. 아마 다들 몇 번쯤은 있으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빠르게 치고 나가는 추진력도 필요하지만, 느긋하게 생각하고 천천히 살펴보는 것이 길게 보았을 때 더 유익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원래 느긋한 기질을 가진 분들도 있겠지만, 뭔가를 빨리하려는 기질 때문에 뭔가가 자꾸 턱턱 걸린다는 걸 알았다면 마음의 균형을 맞춰 줄 무엇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게 온 깨달음의 주문은 이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행동을 해야 할 때 이렇게 생각해 보니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저지른 그 많은 바보짓들 너무 빨리 결과를 하려고 해서 생긴 실수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나태해도 괜찮아. 천천히 천천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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