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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Jeong Oct 12. 2017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 유시민

삶에서 마지막 날은, 어쩌면 집 이사를 하기 전날과 같은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5년 넘게 산 집을 떠나야 했다. 이사하기 이틀 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막상 하루 앞으로 들이닥치자 오래된 우산 천에서 물이 스며 나오듯 아쉬움이 새어 나왔다. 이사 하루 전, 더욱 전투적으로 집을 정리하다 보니 집안 구석구석, 매일 보는 곳부터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곳들까지 들쳐보게 되었다. ‘이건 그때 샀던 거였지’, ‘이게 여기 있었구나’ 등등 아직까지 있는지도 몰랐던 물건들이 죽은 줄만 알았던 기억들을 되살려냈다. 그런 기억들이 점점 모이자 집에 대한 애정이 부풀어올랐다. 그리곤 '이 집에서 좋은 기억이 많았구나' 새삼 기분이 훈훈해졌다. 하루 더 머물고 싶어도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감정을 더 요동치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갑자기 뚝! 하고 삶이 끝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나 차근차근 죽음을 준비할 것이다. 하지만 매일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것인지 사실 어리둥절하긴 하다. 막연히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을 뿐, 적극적으로 준비하며 느낀 경험이 없으니 뭐라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아마도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육체가 바짝 마른 푸석푸석한 빵처럼 탄력을 잃고, 정신이 새로운 날에 대한 기대보다 지난날을 추억하는 날들이 더 많아질 날이 슬프지만 당연한 듯 올 것이다. 그때가 집 떠나는 날을 준비하듯, 삶에서 떠나기 위해 전투적으로 준비하는 날들이 아닐까? 물론 겨우 몇 년 살았던 집보다는, 인생이라는 긴 세월을 살펴봐야 하는데, 달고 쓰고 맵고 짠맛들이 섞여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기억을 헤매다 보면 그저 막막하고 먹먹해지는 게 아닐까 예상해본다. 왠지 아쉬움이 많을 삶.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도 아쉬움은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만하면 괜찮게 산거야’라는 말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일종의 항복이자 푸념을 근사하게 포장한 립서비스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한다는 조언은 많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 ‘가슴 뛰는 일을 하며 살아라’, ‘위험하게 살아라’ 등 입에서 입으로, 글자에서 글자로, 오랜 시간 살아남아 훗날을 보장받은 훌륭한 조언들이 많다. 안타깝게도, 이 말들은 일시적인 시원함을 줄 수 있어도 완벽한 정답을 줄 수는 없는 듯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경험은 더욱 풍성해지고, 그래서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지난날 하지 못해 안타까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수록, 더욱더 아쉬움이 커져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악순환이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삿짐을 정리하며 떠올린 날들은 5년간 살아온 모든 날들이 아니었다. 조각조각 흩어진 기억들이 대부분이고, 전체가 기억나는 특별한 날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여행 후 추억을 떠올리면 막상 기억에 남는 일들은 굵직한 것만 남은 것과 같다고 할까. 죽음이 코앞에 닿을 거라는 걸 깨달은 순간, 무엇을 떠올리고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본다. '아쉽지만 그래도 내 삶은 즐거웠었다'라는 훈훈한 행복감을 위해서라도 특별한 날들을 좀 더 많이 만드는 것, 한 가지만 있는 삶보다는 풍성하고 깊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즉, ‘100억을 벌 수 있었는데 50억밖에 못 벌었다’라는 아쉬움보다는, ‘사랑도 즐길 수 있었는데 일만 했다’가 더 안타깝고 측은하게 느껴질 것 같다. 집에 묻혔던 화석 같은 물건들이 애틋하게 집을 떠나게 해주었던 것처럼, 삶에서 좀 더 많은 시도와 다채로운 기억을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가 떠나는 날 삶에 대한 애정을 꿀처럼 진득하게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놈만 패는 인생보다는 사랑도 하고, 일도 하고, 예술도 하고, 운동도 하는 풍부한 삶. 그것이 세상의 흔적을 내 안에 새기는 것이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다양하게 살아야겠다고 흥겹게 발버둥 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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