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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Jeong Aug 21. 2017

비계 덩어리 - 기 드 모파상

씁쓸한 마음의 움직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모파상의 데뷔 소설

상황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변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과연 옳은가?

자기 말만 맞다고 고집불통인 사람도 문제지만, 뜨거운 모래 위를 맨발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 같은 경박스러운 사람도 고운 시선 받기는 어렵다. 하지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 처한다거나, 가족을 위해 자신의 의견이나 따위를 바꾸는 것을 과연 질타해야 옳은 것인가? 굳은 의지와 강한 신념으로 한 몸 내던질 수 있는 광기에 가까운 행위는, 그 반대의 허약함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자연스레 영웅화 된다.



불 드 쉬프는 감히 눈을 들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분노를 느꼈고, 그들이 위선적으로 자신을 그 프로이센인의 품 안으로 내던져서, 그의 애무로 자기의 몸을 더럽히고 굴복했다는 것에 모욕감을 느꼈다.


불 드 쉬프. 엘리자베스 루세. 그녀의 분함을 이해할 수 있을까?

누구든지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득권, 힘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부조리와 억울함. 자려다 이불을 걷어차게 만드는 그들의 놀라운 뻔뻔함에 비해 초라한 자신의 나약함,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 명민하게 대처하지 못한 바보스러움에 치를 떨어 본 적이 없다는 사람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 일 없는 이상적인 사회에서 살았다는 사람도 만나본 적이 없다.



“그 창녀에게는 그게 직업인데, 어떻게 이 사람은 좋고 저 사람은 거절할 수 있단 말이에요?” 하고 노골적으로 표현했던 그 생각이 모두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 드 쉬프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그녀를 이용한 다른 사람들은 지탄받아야 마땅한 파렴치한 악당들인가?

아니라고 말하기 도덕적으로 부끄럽지만, 그들도 이해할 수 있다. 살면서 가끔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을 때. 혹은 보잘것 없는 스스로의 보호를 위해, 나보다 불리한 자가 마주한 불합리함을 비겁한 용기로 덮었던 적이 있다. 그때 그 마음이 백작, 루아조 등등과 형태와 방식만 다르지 결국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사람의 마음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자연스레 판단할 수 있는 두 가지 축이 있다. 

그 두가지 축은 떳떳함과 부끄러움과 비슷한 것들이다. 우리가 가진 두가지 축은 어떤 행위를 한 즉시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즉각 알려준다. 다만 그 두 축은 모든 사람들마다 기준이 다르기에, 누구도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가급적 무엇을, 누구를 보호하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는, 마음 속의 두가지 축를 어디에 놓을 것인가 정하는 마음의 손에 달려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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