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꿈, 꿈.

이제야 조금씩 와닿는 멀고 먼 꿈과의 거리.

by 에이블

우연히 텔레비전을 돌려 보다가 개그맨 김영철의 호주 개그 콘테스트 도전기를 보았다. 처음엔 '저런 대회도 있구나' 하면서 보기 시작했는데, 점점 김영철의 'A dream come true'에 대해 나도 같이 설레고 벅찬 감동을 느꼈다. 마치 내 꿈을 이룬 듯한 설렘에 도취되어 있던 나는 TV를 끄자마자 하룻밤 꿈에서 깬 허무함에 한동안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었다. 단순히 '와 멋있다, 대단하다'로 끝날 여운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 또한 꿈에 대해 설레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아니 했던, 그리고 이제는 다시 노력하려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꿈? 꿈은 그저 꿈일 뿐이야. 현실이 아니라고.


처절하게 공부했던19살, 대입을 준비하면서부터 처음으로 나의 꿈은 그저 꿈으로 남아야하는지 고민했다. 정상적인 사고의 고3에게는 꿈보다 수능 점수, 대학교 이름, 미래의 돈벌이가 우선이었다. 그러다보니 그저 공부 좀 한다 하면 사범대, 아님 인 서울로 모든 선택지는 수렴되었다. 뭘 공부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머릿속에 그리는 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궁금해하면 멋모르고 꿈꾸는 철없는 아이라고 여겼다.

사실 그때의 나는 그런 걱정어린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고, 아니 오히려 무시하고 이런 저런 꿈들을 두서없이 마구마구 꾸는 것에 취해있었다. 난 이 많은 것들 중 하나는 이룰 거라고 생각했으니, 지금 보면 참 근거없는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스무살, 스물하나,스물둘. 한 살 씩 먹는것도 모르고 그냥 학교생활 열심히 했었다. 언제 하려나 했던 졸업도 했고, 판타지와 같았던 결혼도 진지하게 생각할 나이가 되었다.



꿈꾸는 것 말고, 난 그 동안 꿈 이루기 위해 뭘 해왔던가?


문제는, 이제와서 돌아보니 꿈은 온데간데 없고 허무함만이 가득 남았다는 것. 내가 꿈만 꾸고 있었지,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한 게 없었던 것이다. 그냥 이 꿈만 품고 있으면 대학 졸업할 때 알아서 알을 깨고 나와 날개를 펼 줄 알았나보다. 학교 다닐 때 똑똑한 척은 다해놓고 정작 손에 잡히는 것 없이 졸업하니 부끄러웠다. 난 대체 그 동안 뭘 안한걸까?


한가지 꿈을 정하지 못했다.

문어발식 꿈이라고나 할까. 여기저기 좋아하는 일 또는 가능성이 있는 일에다가 발 하나씩 걸쳐놨을 뿐, 집중적으로 몰입해야할 꿈을 정하지 못했다. 쉽게 말해 여러가지 꿈들 사이에서 간보기 바빴다. 어떤 길이 빠를까, 어떤 꿈이 이루기 쉬울까, 요즘은 이게 뜬다던데 등등 약삭빠르게 움직이려고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었다. 그러니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 한가지 꿈을 고르지 못했을 수 밖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한 발 물러나서, 사람 욕심에 따라 여러가지 꿈을 간 볼 수 있다고 치자. 이것저것 따져보는 과정도 경우에 따라 필요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간보느라 시간만 보내고 결국 아무것도 고르지 못했다는 건 다른 문제다. 내 안에 꿈을 골라낼 기준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 기준을 만들어낼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것이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니 어떤 꿈이 나와 맞을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다른 것도 보고 판단해야겠다 싶어 여러가지 꿈들을 뒤로 패스, 패스, 패스. 그리고 현실에서 해야할 일 부터 처리하다보니 다시 맨 앞의 꿈으로 돌아가보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뒤로 미뤄놨던 꿈들은 어느샌가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그래놓고 나는 이제와서 꿈이 없어졌다, 허무하다, 이런 아쉬움 짙은 소리만 늘어놓고 있는걸 보면, 아끼고 사랑해야할 나 자신이지만 참 어이가 없다.




핑계는 얼마든지 댈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은 그러고 싶지 않다.

물론 꿈을 가진 자로서 고민은 넘치게 해왔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 고민의 끝에 '지금이 인생의 갈림길에 서있는 순간이 아닐까' 싶은 때가 있는데, 나는 그 때마다 돈이 없다는 핑계, 가족이 반대한다는 핑계, 더 좋은 기회가 올거라는 핑계 등 여럿의 핑계로 당장의 결정을 피해왔던 것 같다. 그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사실 지금도 그 핑계의 연장선에서 또 다른 핑계로 꿈에 대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하지만 달래기엔 아쉬움이 너무 커져버렸다. 더 이상은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아졌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꿈을 꾸고 이루는 과정 한단계씩 꼼꼼하게 만들어고 싶다.


다시 개그맨 김영철의 호주 개그 콘테스트 도전기로 돌아가서, 주저리 주저리 꿈에 대한 생각을 읊고 나니 이런 걸 보고 마냥 부러움에 한숨 쉬지 말자고 나 자신을 다독이게 되었다. 부러움에서 나를 돌아볼 계기를 찾고, 나를 움직일 자극만 찾아내면 된다. 이 정도의 생각까지 갔다면 내가 이 글을 쓴 보람이 있다고 본다. 어쨌든 생각의 전환이 생겼으니, 충분하다.


꿈, 어릴 땐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듯하여 만만하게 여겼지만, 세상을 알아갈수록 생각보다 멀리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존재. 지금의 나로부터 멀리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못 만날 곳에 있는 건 아니라고 다시 한번 오늘부터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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