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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회진 Jul 24. 2019

펜싱 이야기 #15. 왼손을 뚫자.

 오늘은 오른손잡이 선수를 위한 편이다.


 생물학적인 특성상 오른손잡이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래서 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은 오른손잡이다. 7년 이상 운동을 했지만 시합장에서 왼손잡이 선수를 만난 적은 거의 없었다.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비율은 실생활에서 9 대 1 정도라고 하는데 펜싱 업계에서는 체감상 20 대 1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오른손 선수가 왼손 선수를 만나면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는 연습 부족, 그리고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난 적이 없으니 연습할 필요가 없고, 왼손 코치가 없다면 사실상 연습 자체가 불가능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행히 꽤 많은 왼손 코치들을 만났다. 3명의 코치와 1명의 현직 선수에게 차근차근 배우면서 왼손을 뚫는 법을 하나씩 배워나갔다. 그때 익힌 요령을 하나씩 풀어 보겠다.


 첫 번째로 왼손 선수와의 시합은 오른손끼리의 시합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다. 차라리 종목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걸 깨닫지 못하면 승리는커녕 제대로 된 시합 조차 어렵다.


 두 번째로 왼손 선수는 늘 오른손 선수를 만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어색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편하다. 자신이 유리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무리를 하지 않는다.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흐름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온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으니 그냥 힘으로 밀어붙인다. 초반부터 압도해야 끝까지 버틸 수 있다는 부담감이 머릿속에 꽉 찬다. 시작 신호와 동시에 달려들어보지만 너무도 쉽게 점수를 잃는다. 그래서 우리는 초반에는 조금 힘을 빼고 상대를 잘 들여다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상대의 자세와 거리를 확인하고 상대의 주 공격 루트를 기억해야 한다. 왼손 선수는 많은 기술이 필요 없기 때문에 사용하는 기술이 몇 개 없다. 상대의 예비 동작만 파악한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세 번째로 오른손 선수끼리는 좌우로 흔들어 공격한다면 왼손 선수는 위와 아래로 나눠서 공격해야 한다. 왼손 선수 앞에서 좌우로 흔들고 들어가는 건 아주 위험한 행동이다. 왼손 선수의 검은 방향이 다르고 거리가 다르다. 오른손 선수를 상대하듯 치고 들어간다면 어느새 상대의 검이 내 어깨 앞까지 들어와 있을 것이다. 펜싱의 기본자세인 앙가드 자세를 '상', 그대로 검만 내려서 상대의 왼쪽 복부를 노리는 것을 '하'로 구분하자. 상대의 검의 바깥 지점을 선점하고 상하로 흔들면서 들어가야 한다. 내가 공격을 하는 중 상대가 기습적으로 역습을 시도한다면 그대로 상대의 어깨를 찌르고, 상대가 나의 검을 걷어내려고 한다면 시계 방향으로 검을 떨어뜨리며 왼쪽 복부를 찌르자. 위-아래, 아래-위, 위-아래-위, 아래-위-아래, 이런 식으로 동작을 쪼개 공격을 시도하자. 공격 시 보폭은 줄이고 자세를 낮춰야 한다. 왼손 선수와의 시합에선 길고 시원한 팡트보다 짧고 빠른 팡트가 더 잘 먹힌다.


 네 번째로 상대의 가슴 정중앙으로는 가능한 공격을 하지 말아야 한다. 각도상 검의 거리가 가까워 상대가 나의 검을 걷어내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검이 막힌다면 상대는 나의 검은 그대로 흘려버리게 된다. 막히는 순간 상대의 검이 내 가슴 한가운데로 향하며 자동으로 점수를 빼앗기게 된다. 오른손 대 오른손의 경우에는 양쪽 방향에서 힘이 부딪치기 때문에 검이 겹쳐지는 순간 중간에서 잠시 멈추게 된다. 그래서 다음 동작(방어)을 할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왼손과 오른손의 경우에는 오른손의 검이 쳐내어지는 순간 같은 방향으로 힘이 작용을 하며 나의 검은 그대로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체중이 분산되며 자세가 무너지게 된다. 하지만 상대는 나의 검을 쳐내는 순간의 반발력을 이용하여 검을 멈추기가 쉽다. 그리고 뭔가를 하지 않아도 그 검은 자세가 무너진 채 당황하는 나의 가슴 중앙에서 멈춘다.


 사실 왼손을 극복하려면 왼손 선수와 많이 겨뤄보는 수밖에 없다. 주위에 왼손 선수가 없다면 제아무리 완벽한 이론으로 무장되었다고 하더라도 왼손 선수와의 시합에서 이기기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거울을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도 많이 하자.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다. 나의 공격과 나의 방어 동작이 반대로 비친다. 그게 왼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거울 속의 나와 열심히 겨뤄보자.


 프로 선수들은 왼손 선수가 많다. 그만큼 오른손 선수가 왼손 선수를 이기는 것이 힘들다는 뜻이다. 정말 다행히도 우리는 프로가 아니다. 왼손 선수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모든 왼손 선수가 다 노련하지도 않다. 방어를 좀 더 굳건히 하고 다리를 더 부지런히 쓴다면 우리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조정석 씨의 광고 멘트를 인용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야, 너도 왼손 잡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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