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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회진 Aug 14. 2019

펜싱 이야기 #.18 명예롭게 지는 방법

 태권도, 검도, 합기도 등 모든 종류의 무도는 각각 나아가는 길은 다르지만 공통의 이상을 가지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승리를 추구하지만 승리를 취하는 과정도 승리 못지않게 중요시한다. 승자는 승자의 예를 갖추고 패자는 패자의 예를 다하는 것이 그것이다. 무도는 준비가 되지 않은 상대를 공격하거나 인사하는 도중 기습을 하는 행동을 금지한다. 넘어진 상대를 공격하는 기술도 없으며 교전 중 상대에게 등을 보이거나 고의로 넘어지는 행동을 금지한다. 실력만큼이나 예의를 중요시 여기는 면에서 격투기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펜싱은 서양에서 넘어온 검술이라 도(道)라는 글자가 들어가지 않지만 동양의 무도와 이루고자 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다. 피스트에 오르면 상대 선수와 심판, 관객에게 각각 인사를 하고 준비 자세인 앙가드 (En garde) 자세를 취한다. 이것은 격투기에서 준비, 즉 파이팅 포즈와는 다르다. 이 '앙가드'라는 단어의 뜻은 '방어 자세를 취하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결투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대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앙가드는 정정당당함의 패기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또 다른 예로 득점을 뜻하는 용어인 '뚜쉐'라는 단어가 있다. 이것 역시 위의 내용과 상통한다. '뚜쉐'는 '찔렸다'라는 뜻인데 찔린 사람이 자신의 실점을 인정하는 뜻이다.


가장 기본적인 판정인 '아따크 Attaque- 뚜쉐 Touche- 뿌앙 Point ' 상황을 한국어로 번역해보겠다.

< 한 선수가 공격을 했고(아따크) 상대 선수가 찔렸음을 인정했고(뚜쒜) 그래서 득점을 인정(뿌앙)한다.>


 한 선수가 공격을 했고 그 공격이 성공해서 득점을 한 것이 아니다. 상대 선수가 자신이 찔린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득점이 인정되는 것이다. 현대 펜싱은 전기 장비가 도입되어 심판의 판정에서 전기 신호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아졌지만 과거에는 찔린 사람이 패배를 인정함으로써 득점을 할 수 있었다. 찔린 사람이 찔리지 않았다고 우기면 득점은 인정되지 않았다. 패자의 승복만이 승자를 만들어 주는 예의의 검술이었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넉넉한 논쟁거리가 있다. 현대 펜싱은 (특히 플러레) 실제 검을 들고 싸우는 결투를 위한 연습 종목이었다. 연습을 하는 이유는 실전에서 이기기 위해서인데, 져놓고는 이겼다고 우겨서 백 번, 천 번 이기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의 기술과 자신의 부족함을 연구해 실력을 키우는 것이 당시 펜싱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전에서는 몸 가운데 구멍 하나가 더 생겼는데 안 찔렸다고 손사래를 칠 수는 없다. 연습 시합에서 이기는 것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현대 펜싱과는 목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뚜쉐'를 예의의 산물로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 의견에도 충분히 동의를 하는 바이다.


 이제 패자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일 대 일 겨루기 스포츠에서는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조건 한 사람은 이기고 한 사람은 진다. 패자가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즉,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 최고의 스승 밑에서 배운 사람이라면 단 1패도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그 천재조차도 스승에게 배우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하게 압도적인 패배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의 바르게 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패자가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은 패배를 부정하는 것이다. 나의 패배를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나의 패배를 억울해하며 승자를 축하해주지 못하는 것만큼 비겁한 행동은 없다. 한 술 더 떠서 패배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욕을 하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물건을 부수는 행동까지 한다면 그는 수치를 모르는 겁쟁이일 뿐이다.


 그런 광경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바로 1년 전, 한 시합에서 1점 차이로 패배한 어떤 선수가 그런 몰지각한 행동을 했다. 승자의 기쁨을 철저히 짓밟고 자신과 자신이 소속된 클럽, 코치를 모욕하는 것을 똑똑히 본 적이 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나를 보는 관객과 상대 선수, 심판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시합 종료와 동시에 검과 마스크를 집어던졌고, 와이어가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키가 허리쯤 오는 예쁜 꼬마 여자 아이가 그 와이어를 주워와서 나에게 내밀었을 때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 생각을 했을 땐 주위는 이미 냉골이었다.  


 나는 그 상황에 대해 여러 가지 핑계를 댈 수 있었지만 그럴 자격이 없었다. 심판과 상대 선수, 상대팀 코치에게 사과를 했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 후로 며칠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패전의 아픔 따윈 떠오르지도 않았다. 무례한 행동, 명예롭지 못한 패배가 고통스럽게 내 가슴을 후벼댔다. 가슴에서 피를 흘러나왔다면 족히 1톤은 넘었을 것이다.


 지지 못하는 사람은 이기지 못한다. 패배에서 억울함을 느꼈다면 승부를 제대로 복기하지 못한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일 뿐 아니라 최선을 다한 자신을 향한 박수이기도하다. 나는 그것을 깨닫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이미 시합이 끝나버렸기 때문에 특별한 경고를 받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날 그 순간 나에게 레드카드 5,000장을 부과했다. 단순히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로는 부족했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스포츠인의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지고 웃기는 힘들다. 나의 시합이 끝난 순간 아쉽고 억울하고 서럽다. 하지만 속의 상처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펜싱은 심리 싸움이 중요한 스포츠이다. 타고난 뜨거운 성격을 감추고 상대에게 의도를 드러내지 않으며 쉽게 들뜨거나 풀이 죽지 않는 사람이 마지막 1점을 취할 수 있다. 패배를 경험하고도 깊은 한숨을 쉬지 않는 당당함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창호 9단이 이런 말을 했다.


 "중요한 승부에서 패하고도 마음이 아무렇지 않다면 그것은 이미 프로가 아니다. 그것은 인품과는 무관하며, 승부사에게 패배의 아픔은 항상 생생한 날 것이어야 한다. 항상 이길 수는 없지만 패자의 역할에 길들여져서는 안 된다."


 패배에 쓰라려하는 모든 이들이 작은 위로를 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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