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
구례의 가을은 지리산에서 시작한다. 가을의 색은 지리산 지붕 노고단에서 내려와 계곡을 따라 퍼져나가다 섬진강과 만난다. 그때부터 계절이 바뀔 때까지 구례의 자연은 색과 소리로 우리의 지친 마음을 치유해준다.
산으로 둘러싸인 구례에서는 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 대숲에 일렁이는 아름다운 바람 소리,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섬진강의 잔잔한 물결 소리...... 가을 구례에는 소리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고유의 울림이 있다. 그 울림을 통해 나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하게 된다. 이렇게 세상의 숨결을 듣는,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을 얻는 경험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또 다른 기쁨이다.
나 아닌 모든 것들의 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써 비로소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구례에 있다. 천은사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조성한 소나무 숲길이다.
천은사는 통일신라 시대 흥덕왕 3년(828)에 지어진 절이다. 임진왜란 이후 중건할 때 절 주변에서 나온 구렁이를 잡았다가 화재와 재앙이 끊이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 후 조선시대 4대 명필 중 한 명인 이광사가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서 일주문 현판으로 걸은 후 재앙이 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노고단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위치한 이곳에서부터 구불구불한 해발 1,000m의 성삼재까지 올라갈 수 있다. 반대로 전북 남원의 정령치 혹은 뱀사골부터 굽이친 도로를 따라 전남 구례의 성삼재를 넘어오면 천은사에 도착한다.
천은사 소나무 숲길은 세 가지 코스로 나뉘어 있다. 지리산로와 닿아있는 소나무 숲 입구부터 천은사까지의 1km는 ‘나눔길’이다. 잔잔한 물결의 넓은 천은 저수지 입구부터 수류관측대까지의 1.2km는 ‘보듬길’이다. 이 두 코스에 걸쳐있는 편안하게 넓은 저수지와 공원처럼 펼쳐져있는 절 입구가 성삼재를 넘어온 격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천은사로 가기 위해서는 작은 하천인 감로천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야 한다. 그 다리 위에 수홍루라는 정자가 있다. 이 수홍루부터 천은사 안에 있는 산문을 지나 경내 뒤편 오솔길을 따라 제방까지 순환하는 1.1km의 길이 ‘누림길’이다.
천은사 소나무 숲길의 하이라이트인 누림길을 걷기 위해 산문을 나서면 삼백 년 된 소나무가 오솔길에 들어선 여행자를 반겨준다. 야생차밭을 지나 계곡을 건너면서부터 본격적인 소나무 숲길은 시작된다.
자연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면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와 자극으로부터 뇌가 쉬게 된다. 이렇게 쉼을 통했을 때 우리는 문제 해결 능력이 좋아지고 더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 그야말로 가장 맑은 눈부신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길 중간중간 이 쉼을 위한 명상 쉼터가 있다.
숲길을 걷는 중 국립공원공단에서 이름 지은 ‘묵언의 길’이라는 이름과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침묵하면 세상이 보이고, 묵언하면 내가 보인다. 묵언은 말을 하지 않음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말을 하지 않음을 뜻한다. 참 나를 찾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계절이 자리를 옮길 때 즈음에 간 천은사 소나무 숲길은 초록의 싱그러움과 휘고, 구부러진 소나무의 자유분방함으로 인해 내 안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 아름다운 힐링 스페이스였다.
#천은사 소나무숲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