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시족(納西族)을 따라 걷다

리장고성(丽江古城), 수허고진(束河古镇), 위룽쉐산(玉龙雪山)

by Arista Seo

동파(東巴)문화, 동파문자의 나시족


따리(大理)가 바이족(白族)의 도시라면 북쪽으로 150여 km 떨어져 있는 리장(丽江)은 나시족(納西族)이 주인인 도시라고 하겠다. 물론 도시 전체는 한족(汉族)이 많지만, 리장고성(丽江古城)은 나시족 문화와 생활이 중심인 중국 내 유일한 나시족 자치구이다.

그 옛날 차마고도를 왕래했던 상단 중 대규모 상단을 꾸렸던 사람들이 바로 이들 나시족이었다. 현재는 인구 30만명 안팎으로 추측되며 대부분이 진사강(金沙江)유역 리장 지구에 살면서 9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동파문자(東巴文字)와 동파 문화로 널리 알려진 소수민족이다.

동파(東巴)란 말은 나시족의 제사장을 의미하는데 “지혜로운 자”라는 뜻으로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다가 제사를 지낼 때는 제사를 주관하였다고 한다. 동파문자는 일 천년 이상 이어져 온 전 세계에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유일한 그림에 가까운 1,700여 개의 상형문자이다. 현재도 리장 거리의 표지판에는 한자의 간체자(簡體字)와 함께 표기되어 있다.

한편, 이들의 신앙은 “동파교”라고 하는 산, 물, 바람, 불 등 자연현상을 숭배하는 다신교를 믿었는데 티베트 불교의 영향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일처다부제의 전통을 가지고 있어서 1950년대 이전까지는 여성이 가장으로, 자식들이 어머니는 알지만 아버지는 모르는 모계사회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백사마을에 있는 동파문자와 차마고도 소개 자료
리장고성 담벼락에 그려진 동파문자 그림들
리장에서는 표지판에 동파문자를 같이 표기한다

나시족(納西族)의 고장 리장고성(丽江古城)


따리에서 리장에 가까워질수록 점차 고산지대로 들어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산과 계곡이 높고 깊어져 갔다. 차마고도의 중간 기착지이자 남방 실크로드의 통로였던 리장고성과 해발 5,596m의 만년설산으로 나시족의 성산인 위룽쉐산(玉龙雪山)이 속해 있는 위룽나시족 자치현으로 갔다.

리장고성 신쓰팡광장 앞 과 고성 모습

리장고성은 현대식 도시에서 길 하나 건너편에 있는 구역으로 따리와 달리 성벽이 보이지 않았다. 송대 말부터 원나라 초기까지 지어진 건물들로 이루어진 이 지역에 1996년 리히터 7 규모의 강진이 발생하였는데 고성의 옛 건축물들은 그대로 건재했다고 한다. 그 후 쑤허고진(束河古镇), 바이사 고진(白沙古镇)과 함께 1997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800년 역사만큼이나 엮어지듯 미로처럼 퍼진 수많은 도로와 골목으로 이루어진 고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신쓰팡 광장(新四方 廣場)에는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왔다 간 커다란 석벽이 휘호와 함께 서 있었다. 고성의 구조는 쓰팡제(四放街)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길이 나 있어서 어느 골목으로 가도 쓰팡제를 만날 수 있게 되어있다. 이곳 쓰팡제 광장에서는 나시족 할머니들의 나시족 전통 춤 공연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방 골목길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늘 수많은 인파로 붐볐다.

위룽쉐산에서 내려오는 눈 녹은 맑은 물이 배가 다닐 수 없는 좁은 길을 통해 얌전하게 골목골목을 누비며 만든 수로의 풍경과 그 좁은 수로 곳곳에 놓인 돌다리, 수로 옆으로 휘영청 늘어져있는 버드나무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풍경이 한여름 밤의 꿈같은 편안함과 위로를 가져다주었다.

위룽쉐산을 향해 펼쳐진 4,200여 고가(古家)들의 지붕이 펼쳐있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고성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만고루(万古楼)의 찻집에 앉아 있던 8월의 오후는 예스러움의 멋에 흠뻑 빠져버린 시간이었다.

리장고성의 풍경들

나시족은 13세기까지 독립을 누리며 중앙의 한족 정권에 저항하여 왔다. 이에 중앙정부에서는 저항을 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목씨(木氏)를 이 지역을 다스리는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대리통치를 한 것이다. 목씨 가문은 이때부터 22대에 걸쳐 500여 년 동안 이 지역을 다스려오다 청나라 때에 이르러 중앙정부에서 직접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이 목씨의 통치 장소로 행정 관사와 함께 저택의 구실을 했던 궁궐이 고성 안에 있는 목부(木府)이다. 목부 안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입장료로 내야 하는 고성 유지비가 있는데 생각보다 비싸서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만 둘러보았다.

목부 정문과 목부 밖에 있는 공부를 강조하는 상들

고성 안의 스쯔산(狮子山) 공원에서부터 골목 구석구석을 따라 걸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갈고 닦여져 맨들맨들한 바닥의 돌들을 보았다. 길을 떠나며 흘렸던 수많은 마방(馬幇)들의 땀과 눈물에 뒤범벅된 돌들의 매끄러움이 왠지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해가 진 후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하는 상점 앞에 걸려있는 홍등과 어우러진 고성의 야경은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많은 사람들로 인해 오히려 감흥이 떨어졌다. 리장고성을 고성답게 하기 위해서는 인원을 통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장고성의 야경

전통적인 옛고을의 모습 수허고진(束河古镇)

리장고성의 번잡함과 인파에 지쳐 돌아가 쉰 곳이 수허고진(束河古镇)의 “허텐샤” 객잔이다. 이른 아침 산책을 나가고, 낮에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고, 저녁에는 수로 옆 카페나 식당에 앉아 음악을 들으면서 전통적인 옛고을을 맛보는 휴식을 며칠 가졌다. 이곳 역시 위룽쉐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수로를 타고 마을 구석구석을 적시고 있다. 물가의 수양버들과 수초들이 여유롭고 낭만적인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중국의 젊은 신랑, 신부 커플들이 사진 촬영을 많이 하러 오는 것 같았다. 리장고성과 마찬가지로 기념품, 차 가게, 먹거리 식당과 객잔 등이 중심가를 형성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호젓한 분위기였다. 우리가 이곳에서 쉬는 동안 횃불을 들고 춤을 추는 일종의 훠바제(火把节)가 열렸다. 공연이 끝난 후 출연자와 관객이 모두 손을 잡고 광장을 돌면서 춤을 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수허고진의 풍경

나시족의 성산 위룽쉐산(玉龙雪山)의 운삼평(云杉坪)


리장에서 30km 정도 떨어져 있는 위룽쉐산(玉龙雪山)은 13개의 봉우리를 지니고 있는 은빛 용이 꿈틀댄다는 만년설산이다. 산은 크게 간해지(甘海子), 빙천공원(氷川公園), 운삼평(云杉坪), 마오뉴핑(牦牛坪), 바이쉐이허(白水河)의 5개 지구로 나눠진다.


우리가 산에 간 날은 빙천공원이 통제되어 위룽쉐산의 주봉 밑에 위치한 해발 3,240m에 있는 운삼평으로 갔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원시림으로 잘 보호되어있는 숲을 지나니 흰 봉우리가 우뚝 솟은 밑에 삼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가운데가 넓은 풀밭이 나타났다. 넓은 초지를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무 데크로 난 산책로를 걸으며 거대한 설산과 삼나무 숲이 주는 청정의 기운을 마음껏 들이마셨다. ‘청정지역이란 이런 걸 말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룽쉐산 가는 길의 풍경
운삼평

동화의 순수 바이쉐이허(白水河)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다시 버스를 타고 조금 내려오니 위룽쉐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계곡 바이쉐이허(白水河)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 계곡이 일반적인 보통 계곡이 아니라 하얀 석회암이 마치 다랑이 논처럼 층층이 쌓인 위로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푸른 물빛의 계곡이었다. 홋카이도에 있는 “아오이케”의 푸른 물이 떠올랐다. 위룽쉐산의 흰 봉우리 밑에 내려오는 푸른 물빛 계곡. 마치 동화의 한 장면처럼 순수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풍경이었다.

바이쉐이허

나시족 마방 이야기 "인상리장(印象麗江)"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연출했던 장이모우(張藝謨) 감독이 연출“인상리장(印象麗江)” 공연을 관람하였다. 위룽쉐산을 배경으로 만든 야외 자연 공연장에서 공연이 열렸다. 나시족의 동파 문화를 기본으로 해서 마방(馬幇)들의 음주문화, 오락문화, 생사관, 기복 의식 등을 공동체적 집단가무로 표현한 내용이었다. 아쉬운 점은 야외공연장이다 보니 햇볕이 뜨거워서 오랜 시간 앉아보는데 어려움이 컸다.

"인상리장" 공연 모습


그래도 공연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나시족의 눈물과 회한, 삶에 대한 끝없는 도전은 느낄 수 있었다. 위로는 티베트족, 아래로는 따리의 바이족 틈 사이에 끼어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눈물이 가슴에 와 닿아 공감되는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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