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이 허락한 길을 걷다.

호도협(虎跳峡)

by Arista Seo

별 헤는 밤 대신 구름 위를 걸을 수....


2018년 8월 4일 오전 01:30 중국 윈난성 후타오샤첸 창솅천 종누오유천 674400 (虎跳峡镇长胜村中诺余村) 나시객잔(纳西客栈) 앞마당.


밤하늘에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달빛도 흐르지 않는 검은 하늘에 비를 잔뜩 머금은 짙은 회색 구름만이 끼여있다. 별 헤는 밤을 꿈꾸며 찾아온 청정 지역이 이곳 호도협이었는데…… 오랫동안 꿔왔던 꿈을 다시 가슴속에 담아야 되나 보다. 그래도 온몸을 휘감는 산속 공기가 인생길을 묵묵히 걷는 영혼들을 달래주려는 듯 싱그럽다.

이젠 별이 안 보여도 좋다. 이 밤이 지나 날이 밝아진 후 트레킹을 할 수 만 있다면…… 그래서 웅장한 설산을 양 옆에 끼고 발아래 굽이치는 강물을 보며 구름 위를 걸을 수만 있다면……


마방들이 걸었던 차마고도의 잔도 중 하바쉐산(哈巴雪山)의 허리를 걸으며, 가파른 절벽의 위룽쉐산(玉龍雪山)과 두 산 사이로 흐르는 진샤강(金沙江)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 호도협(虎跳峡) 트레킹 구간이다. 영국 BBC에서 세계 3대 트레킹 코스 중 한 곳으로 선정한 구간이다. 이 지역의 기후가 여름철은 우기에 해당되어 밤이면 거의 매일 비가 오고, 낮에도 가끔씩 비가 내렸다. 비 때문에 생기는 산사태, 도로 유실 등으로 인한 위험으로 우기 때에는 트레킹 코스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신들이 허락해주어야만 걸을 수 있는 신들의 언덕인 것이다.

DSC_0052-1.jpg 이 다리를 경계로 리장과 샹글리라 현으로 나뉜다
DSC_0067-1.jpg 교두진 가는 길 진사강


벌써 며칠째 이곳 트레킹 구간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어제저녁 교두진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출입 통제가 풀리기를 기다렸다.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차를 타고 이곳 나시객잔에 올 수 있었다. 오는 중에도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트레킹 진행 여부는 이곳에서 오늘 밤 잔 후 내일 기상 상태를 보고 결정하기로 하였다.


이른 아침 구름이 올라오는 산속 객잔의 풍경이 청량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 식사 후 트레킹 준비를 마치고 말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말이 오지 못한다는 연락이 왔다. 말을 타지 않고 걸어서 가기로 했다.

‘그래…… 말에 목숨 맡길 일 있나…… 즐기면서 천천히 걸으면 되지…… 이렇게 천하의 호도협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축복받은 가슴 벅찬 일인데…… ‘

20180804_070357_HDR.jpg 이른 아침 구름 올라오는 나시객잔
20180804_085440-1.jpg 나시객잔 비오는 모습

호도협(虎跳峡) 트레킹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인 장강(长江, 또는 양쯔 강 揚子江)의 상류인 이 지역에서는 강의 이름이 진샤강(金沙江)으로 바뀌면서 거대한 두 산의 발아래로 흘러 들어간다.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의 충돌로 야기된 지각운동으로 하나였던 산이 위룽쉐산(玉龍雪山 5,596m)과 하바쉐산(哈巴雪山 5,396m)으로 나누어졌다. 그 갈라진 틈 사이로 강이 흘러들어 길이 16km, 높이 2,000m의 길고 가파른 협곡을 형성한 것이다. 호도협(虎跳峡)이라는 이름이 ‘강의 폭이 좁아 호랑이도 건너간 곳’이라고 해서 붙여졌다고도 하고 ‘강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의 소리가 호랑이의 포효하는 소리처럼 커서’ 붙여졌다고도 한다. 아무렴 어떠리……

트레킹 코스.jpg


오늘 트레킹은 나시객잔을 출발해 차마객잔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중도객잔까지 가는 “상호도협”으로 불리는 11.5km의 산 길이다. 출발할 때 내리던 비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구름 밑에서 출발한 발걸음이 어느샌가 구름을 옆에 끼고 걷고 있었다. 구름 밑 좁은 협곡을 흐르는 강이 보이는 경관 앞에서 발걸음을 허락해준 신들께 감사의 마음이 절로 들었다. 힘들다는 28 밴드(굽이)를 올라서 건너편 위룽쉐산(玉龍雪山)의 위용과 산 허리를 감싸고 있는 구름의 절경이 보이는 곳에서는 나 스스로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를 더 사랑하고, 더 아끼는 삶을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같이 트레킹 하는 일행 중 한 명인 아주머니의 혼잣말이 들렸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곳을…… 나이 50 넘어서 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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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4_103845_Burst01.jpg 호도협 오전 트레킹 모습

차마객잔, 오후 트레킹


절경과 자연에 빠져 걷다 보니 어느새 차마객잔에 도착했다. 차마객잔 테라스에서 보이는 위룽쉐산이 더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오전 산행의 피로는(사실 자연경관으로 인해 피로를 크게 느끼지도 못했지만) 점심으로 먹은 김치찌개로 다 풀 수 있었다. 오후의 산 길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파란 하늘과 함께한 트레킹이었다. 그때 생각해보니 오전에 구름 끼고 비가 내린 것이 산행을 어렵지 않게 해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산 지대라서 수목들의 키도 작고 뜨거운 햇볕 때문에 오랜 시간 걷기에 힘이 들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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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4_122453.jpg 차마객잔에서

가파르게 경사진 비탈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떼들, 비탈진 산기슭에서도 뭔가를 재배하고 있는 밭, 파란 하늘 아래 멀리 보이지 않는 곳까지 산허리를 감싸듯 굽이쳐 만들어져 있는 길, 시시각각 변하는 높은 산 정상의 구름들 그리고 드문드문 보이는 파랗고 하얀 지붕들.

깊은 산속 오지 산골 마을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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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4_151523[중도객잔 가는 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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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을 받아 걸을 수 있었던 길, 그곳에서 만났던 자연의 위대함 그리고 생명을 걸고 그 길을 걸으며 생과 투쟁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들.


내 생의 지금쯤 필요한 성찰의 시간을 준 길이었다. 그래서 신은 나에게 그 길을 걷기를 허락해 주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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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4_160002.jpg 중도객잔에서 내려오는자동차 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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