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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J Jun 04. 2021

좋아하는 영화로 내 소개 하기

자소서 연습장

영화로 소개


저는 ‘노트북 ‘미 비포 유’  영화를 정말 좋아합니다. 고등학생쯤 ‘노트북 처음 봤는데, 막노동꾼 ‘노아 도시 여자 ‘앨리 순수한 사랑이야기입니다.  둘의 순수한 러브스토리가 정말 심금을 울렸지만, 그보다는  장면이 정말 마음에 와닿아서 좋아합니다. 노아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습니다.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온 앨리는 처음에는 그런 과감하고 자유로운 노아를 싫어하지만, 둘은 친해지면서 여러 가지 ‘일탈 합니다. 하루는 한밤중에 도로 위에 대자로 눕습니다. 내가 원하면 문제없다고. 저는 ‘노아 그런 행동에 충격을 먹었지만, 노아에게 물들며 점차 자유롭게 변해가는 앨리의 모습이 좋았습니다. 아마도  시절 제가 가장 갈망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에 억눌려 옳은 모습이 아닌, 내가 원하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이 순수하고 이뻐 보일  있다는 것을 처음 알려준 영화입니다.

‘미 비포 유’도 다른 사랑이야기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노트북’과 비슷한 면 때문에 빠져들게 된 것 같습니다. 잘 나가던 사업가 ‘윌’은 사고로 전신마비 환자가 됩니다. 일하던 카페에서 잘려 백수가 된 ‘루이자’는 윌의 간병인 됩니다. 시골마을에서 평범하게 자란 루이자는 자막이 보기 귀찮아서 외국영화도 봐본 적 없는 좋게 말해 순진무구한 시골처녀입니다. 촉망받던 사업가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던 윌에게는 우물 안 개구리였습니다. 둘은 사랑했지만, 불구인 자신의 모습으로 평생 살 수 없다고 결심한 윌은 존엄사를 선택하고, 루이자에게 세상에 나아가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공부하 것을 부탁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저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특히 영화를 좋아해서 많은 영화들을 봐왔지만, 특별히 이 두 영화가 기억에 나는 이유가, 저한테 새로운 것을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에 겁을 내는 그녀들의 모습조차 사랑스럽게 표현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런 ‘노트북’의 앨리같이 되고 싶어서 저의 영어 이름을 앨리라고 짓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겁이 많고 생각이 많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자존감이 높고 겁이 없어야 여러 가지를 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작고 나약한 나라도 다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제는 호기심 많고 해 봤던 거 안전한 거를 해야지 싶다가도 막상 새로운 것이 발견되면 궁금해서 못 참곤 합니다. 그래서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신제품이 나오면 지나치기 힘들어해 실패한 경험이 많습니다.


그런 성격의 영향인지 직업의 선택에도 많은 탐험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중간까지는 과탐이 좋아서 수 2랑 물리, 화학을 배우며 이과를 전공했었는데, 고2 중간 답이 나와있는 수학, 과학보다는 답을 만들어내는 미술에 더 관심이 가, 예체능으로 전향했습니다. 덕분에 관심에 없었던 사탐 과목까지 섭렵했습니다. 대학교 때는 코딩을 배워야 하는 아두이노 수업을 포함한 인터렉션, UXUI, 모션그래픽을 다 배워야 하는 전공의 특성상 여러 가지에 심취해 작업해보았습니다. 개발도 한때 열심히 배워보기도 했었고, 플래시 작업에 재미를 붙여 여러 가지 시퀀스가 적용된 인터렉션 게임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사이트와 앱, 모션그래픽, 사운드 등을 배우며 여러 가지 장르를 알아갔습니다. 타 전공의 광고 수업과 심리학 수업도 관심을 많이 두고 공부해 재밌는 학교생활을 보냈습니다. 흥미도가 비슷하여 여러 가지 중 하나의 세부 전공을 따로 고르지 못한 채로 4학년이 되었고, 재정적으로 투자할 돈이 안 든다는 이유로 모션그래픽 영상을 졸업작품으로 선택했습니다. 영상으로 졸업을 했지만, 그 후 취직은 디자인팀으로 시작을 해 4년 동안 그 안에서도 여러 가지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삶이 궁금해 더 늦기 전 30살의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미국 땅에서 1년 반을 버티며 지내기도 했습니다. 전혀 영어를 구사하지 못한 채로 간 터라, 1년 반 동안 어학원을 다니면서 영어를 공부했습니다. 한국어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외국인 친구들이랑 어울리며 한국의 예능도 일절 보지 않기도 했었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나고, 뉴욕의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알고 있었던 내 시야가 얼마나 좁았었는지 깨닫고 성장했습니다. 디자인적으로도 감을 잃고 싶지 않아서 일이 있으면 기회를 놓지 않고 병행해보려 그사이 유튜브라는 채널도 운영해보고, 블로그에 글도 써보고, 외국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레스토랑의 리브랜딩도 맡아서 해보기도 했습니다. 항상 더 많이 알고, 새로운 것을 접하고,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큰 즐거움입니다.


이제는 주변 사람들 그 누구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장벽이 없다고 느낍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니 항상 수용적이게 될 수 있습니다. 디자인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편견 없이 일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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