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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J Mar 17. 2022

어린날의 염세주의

어릴 적 나는 지독한 염세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져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 불가능과 불행을 먼저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리 부모님은 지극히 평범하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정.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와 주부로 있는 어머니. 조금 더 들여다볼까. 아빠는 직장 생활에 치여 살았고 엄마는 우리들의 공부 성적에 관심이 많았다. 두 분은 소통하는 법을 잊었고. 조금만 깊은 대화 주제가 나오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헐뜯었다. 아주 어렸을 땐 그러지 않았던 거 같긴 한데.. 두 분은 내 생활에 대해 물어봤지만 문제나 사건이 없으면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3살 터울의 언니가 한 명 있다. 어릴 적 그리 넉넉하진 않았기에 엄마는 항상 뭔가 사주면 둘이 같이 쓰라고 했다. 그러면 그것들은 모조리 언니의 차지가 되었다. 나는 빌려 입는 느낌으로. 옷 같은 것들은 당연히 물려 입었다. 그때부터 내 것에 대한 애착과 집착 대신 포기와 체념을 먼저 알았다. 컴퓨터는 싸움의 중심이었다. 언니는 맨날 잠깐 쓴다고 나를 비키게 하고는 한 시간 넘게 썼다. 언니는 큰 눈으로 째려보고 공포스러운 분위기 몇 번으로 나를 제압했다. 어리고 몸집이 작은 나는 힘이 없었다. 부모님은 큰 문제가 없으면 우리 둘 사이에 관여하지 않았다. 장유유서를 중요시하셨기에 언니 말을 잘 들으라고 말하시곤 했다. 나는 너무 억울했다. 몇 년 일찍 태어난 것으로 권력을 쥐어주는 꼴이다.


그래도 너무 억울하고 부당할 때는 언니한테 반항을 했기에 부모님은 대체로 나의 편이었고 언니는 그를 아니꼬워했다. 자기가 얼마나 이기적인지는 모르는 거 같다. 그리고 두 분은 너무 유해서 언니를 크게 혼내지 않았다. 그저 사건이 종결되기만을 우리의 싸움이 끝나기만을 위한 중재를 하셨다.


그런 부모님의 행동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항상 억울한 일을 당하고 나서 편을 들어주는 것. 그건 이미 피해 상황이 끝난 것이다. 누군가의 이해로 사건이 없어지진 않는다. 나는 그렇게 부모님을 크게 신뢰하지 않았던 거 같다. 사실 그때는 이렇게 논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겨우 7-8살이었으니까. 나는 억울했고. 아무도 내편이 되어 상황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어린 내가 이 세상에 대해 깨달은 법칙이었다.


내 것을 쟁취하기 위해선 엄청나게 노력해야 했고 나는 그 대신 포기하는 법을 택했다. 포기하면 편하니까.


그렇게 하나 둘 불편한 게 당연한 거라고, 나한테 맞춰진 건 있을 수 없다고 배웠다. 나는 점점 짜증이 많은 아이가 되었다. 싫어라는 말만 하는 아이. 가족에 대한 애정은 많이 없었고, 삶이 대한 애정도 그리 있지 않았다.


죽지 않았으니까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죽어도 괜찮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바라는 게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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