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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J Mar 17. 2022

어릴 땐 몰랐던 사실 하나.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우울증을 겪었던 건 아닐까.


나이가 들고 나를 좀 더 돌아보고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하니 풀린 오해가 몇 가지 있다.

오늘은 그중에 '나'에 대한 오해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나'는 보통의 아이들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났다. 이게 좋은 게 아니고 어떤 느낌이냐 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내가 내 감정을 느끼기 전에 상대방의 감정부터 알게 된다. 이거의 문제점은 나의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다. 언니가 기분 나빠하니까 하지 말아야지. 엄마가 이걸 좋아하니까 해야지. 등등. 너무 상대방의 감정이 너무 강하게 느껴지는 나머지 어릴 때부터 너무나 자연스럽게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게 정답인 줄 알았다. 원치 않게 착한 아이로 살았다. 아니다. 사실 착한 아이까지는 힘들었다. 정확히는 말썽 부리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짜증이 많은 아이가 되었다. 상대방의 조그마한 기대와 조그마한 실망조차도 잘 느꼈기 때문에 맨날 짜증이 났다. 남들은 너무 많은 걸 요구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혼자가 편했다. 


일례로 나는 한국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감정의 도가니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마다 가지는 서사들은 너무 기구했고, 그걸 견뎌내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항상 울었다. 억지로 너무 많은 감정들이 뭉쳐져서 영화를 보고 나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일본 영화를 좋아했다. 일본 영화는 담백했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스토리가 진행되고 카메라에는 감정이 담기지 않았다. 저런 기구한 이야기를 저렇게까지 담담하게 표현해도 되나. 그래서 울림이 더 크다고 느꼈다. 나를 봐달라고 매달리는 게 아니라서 더 여운이 길었다.


아무튼, 이런 깊은 공감능력은 예민함에서 나온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너무 예민해서 오감으로 들어오는 정보가 많았다. 빛이 조금만 밝아도 눈이 부셨고, 조금만 어두워도 불편했다. 100m 바깥의 담배냄새도 맡을 정도로 코도 예민해서 싫은 냄새도 많았다. 피부도 예민해서 조금만 습하거나 건조하거나 춥거나 덥거나 너무 잘 알았다. 작은 소리도 충분히 잘 들었고, 조금이라도 과한 새소리 나 음악소리, 차 소리도 싫어했다. 하루하루 이 많은 양을 다 알아채며 살았었다. 그래서 또 삶이 불편했다. 싫은 냄새, 소리, 밝기, 온도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중 아무것도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야말로 외부환경이니까. 


그래서 좋았던 거는 사람의 몸짓, 표정 하나, 목소리 톤 하나 세심한 정보들이 항상 흘러넘쳤다. 이 사람이 기분이 좋아서 하는 말인지 나빠서 하는 말인지 그런 파악이 아주 빨랐다. 그래서 딱 기분 나쁘기 전에 멈출 수 있었다. 남들은 그렇게 자세하게 주변 상황에 대해서 인지하지 않는다는 걸 거의 서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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