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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쥬쥬 Jan 05. 2019

여행지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면

우리는 얼마큼 가까워져야 할까

아주 멀리까지 떠나왔는데, 어김없이 그곳에서는 한국어가 들린다. 모국어라는 것의 위엄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많은 잡음 속에서도 한국말만큼은 귀에 쏙쏙 꽂힌다.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의식하게 되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하기 마련이다. 여행지에서 다른 한국인을 마주친다는 것이, 때로는 반가우면서도 때로는 썩 유쾌하지만도 않은 탓이다.


얼마 전, 여행을 준비하다가 카페에서 우연히 이와 관련한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인들에게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건네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단답의 '네'뿐이었고 서운한 마음이 들어 앞으로는 말을 먼저 건네지 않겠다는 자조 섞인 글이었다. 이 글에는 꽤 많은 답글이 달렸고, 의견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하나, 나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 참 민망했다. 같은 한국인끼리 그럴 필요까지 있는지 모르겠다. 둘, 나도 한국인은 일부러라도 피하는 편이다. 조금만 가까워지면 몇 살이냐, 직업은 뭐냐, 결혼은 했냐 등 사생활을 캐묻고 훈계가 시작된다. 그걸 피하자고 여행 왔는데 되려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다.


아마도 해외여행이 지금만큼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낯선 타지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이 마치 이웃을 만난 것과 같은 기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명백하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댓글까지 꼼꼼히 읽어본 후의 나는 각각의 의견에 완전히 공감하면서도, 어떤 것이 정답이다 도무지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프라하성, 프라하/ 2010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때에는, 여행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에게 한껏 마음을 열었다. 성격 탓에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가는 것 까진 못했지만, 적어도 다가와주는 사람들은 반가워했다. 나보다 여행을 먼저 경험한 사람들은 좋은 팁을 공유해 주었고, 때로는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나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우리는 같이 밤을 지새워가며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마치 원래 일행이었던 것처럼 남은 일정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 당시의 나는 여행을 마침과 동시에 끝이나 버리는 그 인연을 너무나 아쉬워했고, 연락처를 교환하면서 다시 꼭 만나자 약속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온 후로는 그 인연을 다시 이어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여행의 기억과 함께 희미해져 버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아쉬운 경험을 반복하고, 또 현실을 깨우치는 나이가 되면서 나도 점점 보수적으로 변해갔다. 스스로를 방어하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인지, 그냥 그 모든 과정이 귀찮아진 것인지 모르겠다. 먼저 말을 건네준 사람들에게도 필요 이상의 답을 하지 않았고, 인연을 억지로 이어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가장 극단적인 예는 최근에 떠난 치앙마이 여행에서 일어났다. 내가 참가한 현지 투어에는 한국인도 몇몇 있었는데, 처음에는 서먹하기가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분위기를 극복하기가 무섭게 우리는 서로의 여행, 쇼핑 이야기 등을 실컷 나누었고 심지어 투어가 끝난 후 함께 맥주 한 잔 하자는 제안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한국인 여자 세 명은 치앙마이의 한 로컬 식당에 들어가서 함께 맥주를 마셨다.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즐거운 대화와 식사가 이어졌고, 시간이 늦어지자 남은 여행을 잘하라는 인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각자의 숙소로 헤어졌다. 나는 숙소에 돌아가는 길에 깨달았다. 우리 중 누구도 서로의 연락처를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을. 심지어 이름은커녕 서로의 나이도 말이다. 웃음이 났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씁쓸한 웃음이었다. 콘크리트 벽처럼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이 상황에 대한.




시체스/ 2015


몇 년 전, 바르셀로나 숙소에서 고작 이틀 밤 정도를 같이 지낸 어떤 언니는 충분히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좋은 인연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역시나 희미하게 끝나게 될 것이라고 섣부르게 생각하며 연락처도 이름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돌아온 후에는 왜인지 그 언니가 두고두고 생각이 났고, 깊은 아쉬움이 남았다. 억지로 거리를 두지 않았더라면 지금 그 누구보다도 좋은 인연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정답은 모르겠다. 애초에 정답이라는 건 없겠지만. 우리가 굳이 서로를 격하게 반가워할 필요도 더 이상 없겠지만, 서로를 꺼려하며 선을 그을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닐까. 그중에는 어느 누구보다도 좋은 인연으로 이어질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도 다음 여행에서는 가볍게 눈인사 정도는 먼저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p.s. 사진은 한국사람이 젤 잘 찍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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