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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Mar 21. 2022

자주 엄마 생각을 한다.

내가 쓸 수 있는 글


삶의 바닥. 혹은 바닥의 삶. 어떤 말이 더 적절한 말일까. 서울역에 위치한 회사로 인해 그 주위 노숙자분들을 자주 마주친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소주 혹은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대부분 그곳에는 남자들이 있으나 어쩌다 여자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엄마 생각이 난다. 만약 엄마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병원에 있었다면 여전히 내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서 꺼내 달라는 요구를 했을 테고 병원 밖이라면 내가 오후에 마주친 서울역의 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다. 나의 추측이 너무나 분명하고 단정적이라 폭력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지만 내가 겪어온 시간이 내리는 답이다. 엄마를 딸의 입장이 아닌 제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객관화를 시키며 별개의 존재로 이해하다가도 어느 땐 연민에 차고 그리움에 젖다가도 이렇게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적나라하게 꺼낼 때면 적의에 찬 감정이 날 지배한다. 그 감정도 이 감정도 그 느낌과 이 느낌 모두 나의 것이 맞다. 이렇게 서로 다른 감정들이 모두 존재하는 나의 마음속은 분열적이다.


엄마의 목소리가 기억나는지 떠올려보았다. 두 눈꺼풀에 힘을 주어 평소보다 더 꽈악 눈을 감았다. 목소리를 떠올렸다. 기분이 좋았을 때의 엄마 모습과 머릿속에 엄마의 목소리가 그려졌다. 목소리가 그려진다는 표현이 이상하긴 하지만 정말로 그려졌다. 나의 첫째 딸이며 엄마에겐 첫째 손녀인 그 아이를 안고서 동요를 불러주던 그 목소리가 뒤통수에서 맴돈다. 그리고 화면이 넘어가듯 그다음에는 엄마의 술 취한 모습이 연이어 나타난다. 내가 초대한 이미지도 의도한 모습도 아니지만 술에 취해 눈이 풀린 채로. 술에 취했을 때 지었던 흐느적한 몸짓과 억울한 목소리의 엄마가 나를 바라본다.


엄마의 음주는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엄마 유전자의 반을 가지고 태어난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나에 대해 피곤할 만큼 생각을 자주 한다. 남들과 다른 부분들이 있는지. 있다면 얼만큼 있는지. 평온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마음은 물려받은 것인지 그렇게 길러진 것인지. 혹은 나 말고 다른 이들도 이렇게 불안하고 흔들리는지에 대한 궁금증들. 그럴 때마다 떠올리게 되는 것은 나의 뿌리이고 그것은 나의 엄마다. 그가 준 그만의 방식의 사랑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가 내게 준 마음의 흠집도 분명하고 선명하다. 최근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지금의 나를 살게 하는 것들, 살아있는 나를 이루는 것들.


이 글은 모녀 관계 사이에서 느낄 법한 그리움이나 연민, 사랑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모녀 관계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준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와의 시간과 그 시간이 내게 만들어준 이야기에 대한 글.


엄마의 음주와 그로 인한 에피소드들. 엄마의 음주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는 노력과 괴로웠던 시간을 버텨낸 나에 대한 위로와 의미부여 작업이 그간의 글이었다면 이번에는 흘러나오는 대로 쓰고자 한다.


술에 취하면 자주 쓰러졌던 엄마였다. 일부러 쓰러질 때까지 마신 것인지 마시다 보니 쓰러진 것인지 늘 궁금했다. 엄마가 쓰러진 장소가 집에서 가깝기라도 하면 다행이었지만 매번 가깝지만은 않았다. 집 주변에서만 술을 먹던 엄마의 반경이 점차 넓어지더니 엄마를 데리러 역 하나를 지나서 가야 할 때도 있었고 생판 모르는 다른 이의 집에 찾아가야 할 때도 있었다. 분명히 집에서 나갈 때는 두 발로 걸어갔던 엄마였는데 엄마가 나가면서 닫은 대문 소리는 늘 불길했다. 엄마를 데려오는 음식점에서, 편의점에서, 동네 아줌마네서. 엄마를 챙기는 나를 보고 연민의 눈길이라도 받았으면 했던 것 같다. 그런 눈빛이 당시 나의 상황에 어떤 도움이 되지도 못했지만 그 순간에는 어른들의 눈빛이라도 받고 싶었다. 해가 갈수록 살이 쪘던 엄마를 데려오는 일은 더 힘에 부쳤지만 그 시간에 비례하여 나의 몸도 커져갔기에 집까지 오는 일이 가능했다. 그것이 가능하단 사실, 엄마를 부양할 수 있는 만큼 내가 커진다는 사실, 그래서 엄마를 떠안아야 하는 현실이 점점 더 다가왔다.


엄마를 부축하고 오는 길에서는 엄마로 인한 억울함이 가슴 한가득 차있었지만 그 억울함을 풀 곳이 없어 꾹꾹 삼켰다. 결국 집에 와서 엄마를 안방에 눕히고 터져버린 울음은 쉬이 그쳐지질 않았다. 휴지로 닦아낼 양의 눈물과 콧물이 아니었기에 화장실에서 수건을 하나 골라 잡아 맘껏 코도 풀고 눈물도 꾹꾹 닦았다. 실컷 울기라도 하면 좀 나아졌다.


한번 시작된 엄마의 음주는 일주일 가량 이어졌다. 텔레비전은 하루 종일 커져있었고 어두운 밤과 새벽에도 퍼런 불빛을 깜빡깜빡 거리며 화면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등장할 때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 색깔의 불빛을 맞은편 하얀 벽지에 비추며 정신 사납게 굴었다. 술 취한 엄마의 모습이야 익숙할 법도 한데 그렇다고 그것이 익숙해지는 법은 없었다.


불안이 자극될  여자 혼자 딸을 키우는 자신이 처량할  술을 먹는 건지. 혹은 딸인 나의 어떠함 때문에 내가 못돼서 내가 착하지 못해서 내가   엄마를  먹지 못하게 막지 못해서 엄마가 술을 먹는지 궁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작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으나 그저 알코올 의존증이었다. 엄마 음주의 이유를 내게서 찾는 일은 너무도 당연했다. 엄마의 비행과 음주 모두 딸인 나의 탓인  같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의 한계이기도 하겠으나 요즘도 나는 나에 대한 자책을 자주 한다. 어떤 갈등 상황과 문제 앞에서 그것의 초점을 ‘ 돌리는 것이 익숙하다. 그러면 통제할  없는 변수로 가득했던 불안의 순간이 내가 통제 가능한 ‘라는 변수로 단순화된다. 힘들어도 그것이 내게 익숙한 방법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면 자주 불안하고 마음이 떨렸다. 비가 온 날 엄마가 술에 취해 대문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날의 기억. 엄마를 데려오지는 못하고 대문 안에 서서 엄마를 훔쳐봤던 기억. 지나가던 여자와 남자 둘이서 엄마를 보고 수근거렸던 기억. 그 기억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늘 비가 오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어둑어둑해졌다. 내가 어릴 적 엄마는 비가 오면 마음이 씻겨가는 것 같아 시원하고 좋다고 했었는데 엄마를 시원케 하는 그 비가 내게는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그런데 며칠 전 침대에 누워 듣는 빗소리. 밤에 막 내리기 시작했던 빗소리를 듣고선 빗소리가 좋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이었다. 엄마를 떠올리던 빗소리가 이제는 빗소리 그 자체로 들렸다. 이미 빗소리를 생각하며 엄마를 떠올렸으니 여전히 나는 엄마에게서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 싶지만 타닥타닥 건물과 바닥에 튀기는 빗소리가 그날은 참 좋았었다.


자주 엄마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전만큼 자주 엄마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리울 때도 있지만 엄마가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다. 엄마가 죽고 7년이 흘렀지만 이렇게 늦은 밤 엄마를 떠올리며 글을 쓴다는 것이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써야 할 것 같아서 써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시작한 글이다. 글을 쓰며 어느 누군가를 단편적으로만 이해하는 글. 누군가를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글은 쓰지 말라고 배웠는데 엄마에 대한 글을 쓸 때면 한없이 단편적이 되어버린 것 같아 늘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이것이 내 마음이고 이것이 내 솔직한 이야기인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조금 더 자유롭게 쓰고 싶었다.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 나은 글쓰기의 방향에 입각한 글 보다도 내 이야기에 솔직하고 싶었다. 사실은 엄마 이야길 하면서 더 나은 방향의 글쓰기까지 할 자신이 없었다는 게 좀 더 맞는 말이겠다.


쓰고 싶은 글 말고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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