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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Apr 23. 2022

내가 믿는 신에 대하여

신을 믿는지 신을 믿는 나를 믿는 것인지



어른 팔뚝 만한 크기의 . 누르스름한 몸통과 곳곳에 까만 속살이 보였다. 손잡이가 기다란 나무 바가지에 물을 조금 담고서 머리 꼭대기에 물을 부었다. 엄마가 이렇게 목욕을 시키면 눈과 코가 엄청 매울텐데.  번째 바가지에 담긴 물은 어깨선 아래로 기울여 흘려보냈다. 할머니를 따라서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부처님이 오신 날에는 절에 갔다.  날엔 아기 부처님 목욕을 시키는 행사가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신은 목욕이 필요한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


할머니가 택시에 치여 엉덩이 뼈가 부러지고 나서부터는 절에 나가지 못했다. 절에서 맛보았던 나물과 찰밥, 불당의  냄새 생각이 종종 났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어느  학교가 끝나고 교문 밖을 나서자 어른  무더기가 몰려들어 ‘달란트 잔치초대장을 주었다. 얼떨결에 받아 들은 초대장을 꼬깃 꼬깃 만지는데 옆에 있는 아줌마가 말했다. “이번  일요일에  나와야 . 달란트로   있는 물건들이 많아. 아줌마랑 약속해.” 달란트 잔치에 대한 호기심 보다는 초대장을  어른과의 약속에 대한 의무감으로 엄마 손을 잡고 교회에 갔다. 교회에 처음 발을 들인 날의 기억이다.

달란트 잔치 초대장으로 시작된 교회 생활이 지금까지 이십년 째다. 교회에는 친구들과 몸을 숨기고   있는 은밀한 장소가 많았다. 전기 장판이 깔려 있어 바닥이 뜨끈뜨끈한 기도방과 지하에 위치한 교사 회의실과 창고에서 친구들과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사계절을 보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교회 수련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련회에서 저녁밥을 먹은  자기 전까지 집회를 열었다. 집회는 주로 외부에서 섭외된 강사가 간증으로 시작해 기도시간으로 끝이 났다. 하나님을 믿고 무당이었던 자신의 어머니가 교회로 돌아온 이야기. 귀신과 싸워 이긴 이야기.  교통사고를 당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목숨을 구한 이야기. 강사의 말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조용한 찬양이 흘러나왔고 기도가 시작됐다.​


“이렇게 보잘 것 없는 나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 나를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 시작된 기도회 시간은 수많은 말들이 잠과 함께 쏟아지는 시간이었다. 내게 기도를 해주기 위해 다가오는 선생님들은 사전에 “기도해줄까” 라고 묻는 법이 없었다. 큰 손바닥을 내 등위에 덥썩 대고서 시끄럽게 기도를 시작했다. 특히 손바닥이 등에 철썩 붙는 순간 놀라서 움찔할 때면 잠든 게 들켰을까봐 선생님이 하는 기도소리에 맞춰 몸을 유난히도 세게 흔들었다.

뱀의 머리가 아닌 용의 꼬리가 되게 하시옵고 …. ”

다니엘처럼 사자 굴에 들어가도 담대하게 해주시고 나라와 민족과 국가를 위해  써주소서 …” ​


용의 꼬리가 나은  뱀의 머리가 나은 . 개종을 요구받자 거부하고 사자 굴에 들어간 다니엘의 마음은 정말 담대했을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쓰임 받는다는 것은 무슨 일인지. 대통령이나 정치인처럼 티브이에 나오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선생님들의 기도는 궁금한  투성이었지만 그것을 다시 물어본 적은 없다. ​


교회에 있는 어른들은 우리 집에 있는 어른들과는 달랐다. 그들도 집에 가면 우리 집의 어른들과 같아지는지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와 눈을 맞추고선 언제나 기도 제목이 있는지 물었다. 표정이 좋지 않은 날에는 무슨 일이 있는지 묻고  손을 감싸고 기도를 했다. 나를 걱정하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어른들이 있는 교회가 좋았다. ​


집이 주지 못했던 안식과 평온함을 주던 교회. 어린 시절의 결핍을 채웠던  곳에 더이상 내가 찾는 안식이 없다. 지난 5년간 갈피를 잡지 못한 마음은 여전하다. 교회에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부터 시작해서 나는 신을 믿나  믿나, 신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나. 나는 신을 믿는 것인가 신을 믿는 나를 믿는 것인가. 까지 나간다. ​


남자가 여자의 머리가 된다는, 모든 죄는 여자로부터 들어왔음을,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구절을 가진 성경에 대해 물을 때면 하나님의 경지는 높고 넓어 우리의 이해로 가늠할  없다며 질문을 막았던 이들. 혼전순결이 주님의 뜻이라며 나와 친구들을 매일  죄책감에 떨며 울게 했던 메시지를 전하던 이들. 혐오에 맞서야 하는 이들이 그것을 재생산하는 주체가 되어  동성애를 말하던 이들. 전해 내려오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강요했던 이들. 나와 같은 신을 믿는다고   없는 이들을 나는 교회에서 만난다. 나는 그들과 같은 교인이다. 아직 나는 그들과 같은 신을 믿는다.​


오랜 시간 고민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라는 종교를 쉽게 떠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며 욕하면서도 신을 붙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오랜 시간을 지탱해온 신앙이라는 부분을 내가 부인하는 순간, 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에 기대었던  지난 시간들이 무의미해질까봐 두려운 것이다. 내가 아직도 교회로부터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신의 존재에 대한 조그마한 희망보다는 진리라고 믿고 좇았던 것들이 실은 허상이었음을 고백하는 일이 힘들어서인지도 모른다. 신에 대한 사랑이 아닌  지난 삶에 대한 애착이 이토록 마음에도 없는 신앙생활을 이어나가게 하는 지도 모른다


아직도 내겐 신앙과 교회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아이에게 물리적 엄마가 줄 수 없는 사랑의 한계에 봉착할 때. 엄마보다도 널 더 사랑하며 이해해주는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말하며 아이의 자존감을 기를 수 있는 쓸모로서의 신앙. 혹시나 우리 가족에게 재난이 찾아올 때. 안 그래도 안전망 없는 한국사회에서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물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공동체로서의 쓸모. 내 어딘가 비어진 공허를 사람이나 성공이나 성취나 어떤 것으로 채울 수 없을 때 허무를 달래줄 무언가로의 쓸모. 쓸모로서의 신.

경조사가 있을  집안에 어려움이 있을  달려온 교회 공동체의 도움들. 내가 교회에서 속한 청년부, 찬양팀, 아동부 교사 모임들로 인해 생겨 지금까지 이어져온 인연들. 단물만 빨아먹고 내빼려니 어딘가 염치가 없는 기분이다. 이것은 신앙 자체의 문제. 신의 존재 유무나 신념의 문제라기보다는 기독교 문화 속에서 살아오며 구축했던 관계, 생각의 기틀, 그로 인해 누렸던 안정감 같은 것들에서 빠져나오는 간단치 않은 작업인 것이다.

애를 셋이나 키우며 육아와 일로 바쁜 목사님 부부는 우리 가족이 코로나에 걸리자 외식 상품권을 보냈다. 아파서 힘이 없을  시켜먹으라고 했다. 인스타에 조금이라도 우울한 피드가  아이디로 올라올 때면 다짜고짜 카카오톡으로 선물을 보내는 이들. 언제나 나를 생각한다며 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들을 나는 떠난다고   있을까.​


신은 존재할까, 어떤 모습일까. 나는 무엇을 믿는가. 나는 그것을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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