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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May 26. 2022

아이를 놓고 왔다

맞벌이로 아이 둘을 키운다는 것



5시에 근무를 마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꾸욱 누른다. 4층에 내려 어린이집으로 갔다.


-   현이 가요, 선생님


선생님이 교실로 가 아이 소변을 보게 하고 양말을 신기고 가방을 싸는 듯하다. 한 3-4분 기다리니 아이가 몸을 베베꼬며 반가움을 온몸으로 나타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광대가 올라가는 아이. 씨익 웃는 게 마스크로 가렸지만 다 보인다. 현이를 뒷좌석에 태우고 불편해 불편해 라는 아이 말에 카시트 살짝 채울게요 하고선 기어를 D에 놓고 엑셀을 밟는다. 오늘따라 도로에 차가 없어 집에 금방 도착할 것 같다.


-   오예 현아, 우리 금방 집에 왔지


집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좌회전을 하는데 등골이 오싹하다. 여행 가기 전날 밤 여권은 거실 피아노 위에 놔뒀으니 챙겨야지, 하고서 잠든 후 다음 날 여권 없이 공항에 간 사람처럼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등 뒤 피부가 따끔따끔하다.


-   아 솔이!!!!!!!


급하게 유턴을 하고 내비게이션에 영국문화원을 치는데 오늘따라 내비게이션이 느리다. 막막한 마음에 네비도 찍지 않고 대책 없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오빠, 어떡해. 나 솔이 잊었어. 솔이 찾아왔어야 했는데 솔이 까먹었어! 솔이 지금 혼자 있어


-   침착하고 네비 찍어봐, 얼마 나와? 그리고 전화 다시 하자


네비 찍느라 듣던 엘사의 렛읻꼬가 꺼지자 뒤에 탄 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평소 같았으면 울지 말라고 엄마가 금방 틀어줄 거라고 달래줬을 법한데 사나운 말이 나온다.


-   야 이현. 너 지금 언니가 엉? 거기 시청에서 엉? 지금 혼자 내팽개쳐져 있는데 엉? 음악 못 듣는다고  지금 울어?


네 살짜리가 시청은 어디고 내팽개친 건 뭐고 지금 상황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아이에게 한 말은 모두 다 애를 잊고서 차 안 막힌다고 신나서 집으로 온 내게 하는 말이다.


아이가 6살부터 다녔던 문화원은 서대문역과 시청 사이에 있다. 정동길이라고 덕수궁 돌담길을 넘어 서울시립미술관이 있는 고즈넉한 . 솔이와 나는  길을 좋아했다. 돌담길 끝자락에 있는 초코 와플집에 가서 솔이는 와플을 먹었고 나는 커피를 마셨다. 가을엔 돌담길을 걸으며 노란색 주황색 낙엽을 줍기도 했다.


전화가 왔다.


-   가고 있어?

-   어..  근데 나 어떻게 그럴 수 있지

-   아니 뭐 그럴 수 있지. 정신없었나 보지

-   아니 그럴 순 없어.. 애를 까먹을 순 없어…

-   아니 뭘 그래 그럴 수 있지.

-   아니 난 그럴 수 없어 난 자격 없는 엄마야


남편 목소리에 눈물이 왈칵 흐른다. 아이를 혼자 놔뒀다는 생각은 언덕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무지막지하게 커진다. 혼자 있을 아이가 느낄 고립감 외로움 두려움이 꼭 내게 벌어진 일 같다. 눈앞이 뿌예져서 눈을 비볐다.


-   엄마 슬프지 마. 엄마 웃어보세요.


둘째의 목소리는 앳되고 혀가 짧은데 말의 내용이 너무 어른스러워 정신이 바짝 든다. 슬프지 말란 말에 마음을 다잡는다. 비록 아이가 혼자서 기다리긴 하겠지만 문화원에 전화해서 아이를 안전하게 실내에서 봐달라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두고 간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는 내가 올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걱정보다는 엄마가 분명히 온다는 기대감과 설렘으로 나를 기다릴 거란 생각을 하니 마음이 가라앉는다.


자꾸만 아이의 상황에 나를 끼워 넣는다. 어릴 적 내가 겪은 고립감과 절망감들. 아이의 모습에 나를 투영한다. 아이에 나를 얹어서 그 이상으로 생각하고 느끼기.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대부분 이런 것이다.


이날 따라 주차는 왜 이렇게 안 되는지 평소엔 한방으로 잘만 하던 한 주차인데 이리 뺐다 저리 뺐다. 기어가 R에서 D를 넘나든다. 마음이 타들어간다. 우려곡절 끝에 차를 세우고 둘째 카시트를 휘리릭 풀고서 안고 뛰었다. 내 몸 보다 내 가슴이 더 빠르게 뛰니 현실감각이 없어지는 느낌이다.


-   엄마 주차장에서 뛰면 안 되는데 왜 엄마는 뛰어? 주차장에서 뛰면 안 된다고 떤댕님이랑 엄마가 그랬는데


언제나 그랬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멀찍이 공상에 빠진 나를 현실로 다시 데려와주는. 지금에 발 붙이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아이들.


1층 자동문이 열리니 빨간 티셔츠를 입은 아이가 선생님들 사이에 앉아서 의자 위에서 다리를 폈다 접었다. 생각보다 표정이 괜찮다. 선생님들과 인사하며 나오는 아이 발걸음이 가볍다. 살짝 미소까지 보인다.


-   솔아 오늘은 엄마가 미안해. 사과할게. 기다리게 한 거 미안해. 엄마가 오늘 회의가 여러 개였고, 정신이 없었는지 수요일인걸 잠시 잊고 집으로 갔어. 그래도 금방 생각이 나서 얼른 왔어.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게 할게


-   엄마 왜 늦었어? 배고프다 밥 먹고 가면 안돼?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던 두 아이가 한 명은 집 앞 초등학교, 한 명은 회사에 있는 어린이집으로 찢어졌다. 등하원이 여간 어려워진 게 아닌데 다행히 이사 온 동네의 돌봄 인프라가 잘 되어있다. 입학하고 4월부터는 친구들과 함께 돌봄을 제공하는 문화놀이터로 간다. 학원에 보내지 않고 안전한 곳에서 선생님들의 돌봄을 받으며 미술 수업, 바느질 수업, 훌라춤도 추고 전래놀이를 한다. 내가 집에서 해줄 수 없는 부분들이 채워지고 무엇보다 퇴근 전까지 아이가 어디 이동하지 않고 안전하게 있을 수 있어 부모로서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사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맞벌이 부모들의 사정과 환경이 우리와 같지 않을 것이다. 회사도 다니고 아이도 챙기는 부모들의 여유 없는 마음이 오늘 밤 불현듯 떠올라 괜히 마음이 깝깝했다. 부모가 해야 하는 영역이 분명히 있지만 돌봄의 문제를 공적인 영역보다 개인의 영역으로 인식하는 분위기에 한숨이 나올 때가 많다.


문화원에서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간 쌀국수집 요리가 맛있어서였는지 아이들 먹으라며 남자 종업원 분이 갖다 준 금색 동전색의 껍질을 가진 초콜렛이 달콤해서였는지 아이들은 내내 신나있다. 아이 둘을 태우고 집에 가는 길에 차에서 창문을 여니 비가 한두방울 떨어지고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백미러로 창 밖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을 중간중간 확인했다. 고된 하루였는지 아이들 눈에 잠이 가득하다. 이른 육퇴를 꿈꾸며 서둘러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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