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열음 May 29. 2022

70년대생 팀원들과 요가를 했다

동료들이 좀 좋아졌다.



2000년대 초반, 전화선과 PC통신의 시대를 거쳐 초고속 인터넷 시대가 도래했다. 더 빠르고 더 많은 가입자를 모집하기 위해 땅을 파고 그 땅 아래로는 수많은 통신선들이 교차된 채 깔렸다. 그 시기 통신사들은 인프라 구축을 선점하고 그것에 기반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사람을 많이 뽑았다. 70년대생 남자 사람들. 이들은 우리 회사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연령대를 구성한다.


통신사에 근무한 지는 올해로 10년 차다. 본래 HR로 지원하여 입사했으나 입사한 2013년도에 B2B 부문이 막 성장하고 있던터라 이쪽으로 발령을 받았다. B2B 조직은 통신 서비스를 기업체에 세일즈하는 영업조직과 서비스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사업조직으로 나뉜다. 입사하고 영업팀에 1년, 그 후부터 쭈욱 사업팀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속한 팀의 구성원들의 연령은 평균 45세가 넘는다. 모두 2000년대 한국 초고속인터넷 시대의 탄생을 도모하고 함께 해온, 역사적 현장을 목도한 사람들이다. 이들과 함께 하는 일은 때론 지루하지만 편안하다. 식사 자리에서 하는 말들은 우리 엄마 아빠가 하는 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지루한데 그런 익숙함과 친근함에서 오는 측은함과 편안함이 있다. 그들은 도전보다는 안정을 새로움보다 익숙함을 좋아한다. 한 직장에서 이십년 넘게 근무한 그들의 성실함은 대단한 능력이었으나 동시에 그들의 야성을 야금야금 먹어 없앴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2년동안 전면 재택 근무를 시행하다 이번 달에 와서야 주 2-3회 출근으로 지침이 바뀌었다. 그간 서먹해진 팀원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팀이 함께 모이는 자리를 만들자는 의견이 있어 팀 워크샵을 하기로 했다.


누군가 전체 메일로 선빵을 날렸다.


“지난 번에 코로나로 인해 하지 못했던 미완의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은평구 쪽 계곡으로 가서 맛있는 닭백숙과 족구를 하며 시원함을 느껴보시죠”


계곡이라니 족구라니 백숙이라니.


엊그제까지 아이들 국으로 닭백숙을 끓여 지겹도록 먹었다. 그 메일을 보자마자 뒤통수가 뻐근해지고 집중력이 솟아오른다. 마우스를 움직이고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치는 속도가 생각하는 속도를 넘어선다.


“이번에는 새로운 것을 해보면 어떨까요. 계곡에 족구도 백숙도 좋지만 아래 활동들은 어떠세요? 아래 후보로 투표 올려볼게요. ”


1. 이건희 컬렉션(국립현대미술관) 갔다가 삼청동 루프탑에서 분위기 있는 저녁

2. 체형 교정 클래스 받고 저녁 먹기

3. 담금주 클래스에서 만든 술로 저녁에 시음회 하기

4. 계곡가서 족구 차고 발 담그고 따끈한 백숙


메일을 보내고 나니 등이 따끔따끔하다. 하지만 벌레 많고 시원하지도 않은 계곡에 가서 백숙을 먹긴 싫다. 미움 받는 것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게 더 힘든 나는 또 사서 고생을 하기 시작한다.


지체할수록 승리는 멀어지는 법이다. 팀 카톡방에 투표를 올리기 전 친하게 지내는 B 매니저님과 연락을 했다. 나이는 사십대 중반을 넘어섰어도 늘 소설과 에세이와 과학책을 읽고 예쁜 디자인의 키보드를 수집하는 매니저님과 함께 계곡만은 결사반대라며 전의를 다졌다.


투표 결과는 이건희 컬레션 4명, 계곡 3명, 담금주 1명


모든 이가 다 투표에 참여한 것을 확인하고 투표 마감 시간 전에 “투표 마감합니다” 라는 나의 카톡에 “아직 마감되지 않았잖아요?” 라는 S매니저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담금주에 투표한 한명은 본인이 캐스팅 보트가 되었다며 안철수 짤을 올리며 말했다.


‘저 이제 몸값 올라가나요’


투표가 종료되는 오후 1시까지 정체불명의 긴장감이 가득했지만 이변은 없었다. 의외로 미술관에 관심을 보이고 투표하신 분들이 나와 B매니저 말고도 두명이나 있었고 1표 차이지만 계곡을 눌렀다는 사실은 감격 그 자체였다. 팀장님은 계곡으로 투표하실 것 같아 애초에 투표권을 드리지 않았다. 핳핳ㅎㅎ


이건희 컬렉션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나서도 미술관 줄 서는 게 싫다, 작품 보려면 오래 걸린다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런 소리들을 간단히 참아내며 워크샵 준비를 했다. 네이버에 이건희 컬렉션에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보는데 느낌이 쎄하다.


‘평일에도 90분 대기했어요’


‘두시간이나 기다렸지만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었어요.’


…90분? 두 시간? 우리 매니저님들 요즘 무릎도 안 좋으실텐데 땡볕에 세워놓을 순 없다. 줄을 선 채로 여기 가자고 한 게 누구냐며 욕을 먹긴 싫다.. 그렇다고 계곡으로 후퇴를 할 순 없다. 체형교정 클래스로 슬그머니 방향을 틀기로 한다. 마침 최근 팀장님이 아파서 입원을 하신 일도 있었고 팀원들 중 몇분이서 허리가 아프다며 점심시간에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어색하고 이상하게 스트레칭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카톡방에 운을 띄웠다.


“이건희 컬렉션은 줄이 길 것 같아요.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데… 안되겠죠? 내 몸챙김을 주제로 체형 교정 클래스 워크샵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매니저님들 요즘 아프시고 불편하시니까!! 괜찮을까요?”


늘 그랬듯 내 카톡에 B매니저가 화답을 한다


“좋습니다”


팀장님의 “그렇게 진행하시죠” 라는 재가에 속으로 ‘오예!’를 외치며 마음 편히 워크샵 계획에 돌입했다.


마음 편히 계획을 세울 수 있던 이유는 실력있고 믿을 만한 요가 선생님이 있었기 때문도 컸다. 같이 요가를 하고 요가를 배웠던 지금은 요가원을 운영하는 원장님을 강사로 섭외했고 장소 대여까지 한번에 해결했다. 워크샵 일주일 전 피피티로 간단히 우리 상황을 나열했다.


-

슨생님! 저희는 총 9명의 팀원이고요. 원래는 계곡 가서 백숙 먹기로 했으나..(중략)

자신의 몸에 대해 집중해본 적도 돌본 경험이 없는 분들이 대다수에요.

이번 기회에 팀원들이 본인의 몸을 돌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완전 초보 난이도로 부탁드려요.

-


도화동에 있는 요가원에 가니 1층부터 기분 좋은 향 냄새가 났다. 향 냄새를 맡고 올라가니 입구에 “Security 사업팀을 환영합니다” 라는 입간판에 쓰인 문구가 우릴 반긴다. 팀원들 이름이 적힌 9장의 포스트잇을 입간판에서 떼어 본인 매트 앞에 붙였다.


화려한 조명까진 아니지만 단단한 에너지가 요가원을 감쌌다. 처음 보는 요가 슨생님에 대한 궁금증 새로운 공간에 대한 설렘 열심히 하고자 하는 열쩡의 에너지. 저 앞에 우리를 마주보고 무릎 꿇은 자세의 강사님처럼 매니저님들은 무릎을 꿇고 다소곳하게 앉으며 이런 소리들을 냈다.


“아이고 아이고”

“아유 무릎이야”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이 말했다.


“여러분, 꼭 저처럼 앉지 않으셔도 됩니다. 편하게 앉아주세요”


그제서야 우리 매니저님들은 편안한 양반자세로 매트위에 앉는다.


팀원  만큼 미리 준비된 웨이브 폼롤러로 발끝부터 머리 끝까지 몸을 풀었다. 아킬레스건 종아리 시작점 허벅지 천골 허리. 중간중간 나오는 신음소리에 모두들 킥킥킥 웃는다.


“아이고” “어우” “으아”


그저 누워서 하는 아주 기본적인 동작인데도 뭔가 이상한 자세를 하고서 몸의 오른쪽에만 힘이 들어간 매니저님. 허리가 위로 들리지 않는 매니저님. 상체를 쓰는 동작인데도 자꾸 허벅지가 아픈 매니저님. 모든 동작에 오리궁뎅이처럼 엉덩이를 내빼는 매니저님.


소고양이 자세에서 점점 난이도가 높아져 다운독 자세까지 갔지만 그곳에서 나는 정말 다양한 다운독 자세를 보았다.


개가 기지개 펴는, 다운독이라고 불리는 저 자세를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와. 신기해. 뒤에서 그들이 에너지를 담아 열-씸히 하는 모습들의 사진을 찍었다. 그들의 동작을 보고 웃음을 참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오기 전까지는 ‘요가, 체형, 아 난 그런거 몰라’ 했던 분들이 막상 수업이 시작하고 나서 선생님이 하는 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 모습. 어렵고 불편하면 쉬어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에도 쉬는 분은 한 분도 없었다. 우리 매니저님들의 성실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


땀을 뻘뻘 흘리고 뻣뻣한 몸을 가지고서도 이리 굴려보고 안되면 저리도 굴리다가 떼굴떼굴 구르는 매니저님들은 눈 위를 구르는 하얀 북극곰같았다.


하이라이트는 사바아사나 송장 자세에서 보여준 그들의 이완 능력이다. 모든 동작을 마친 후 사바사나라는, 팔다리 모두를 뻗어 힘을 빼고 편하게 눕는 자세에서 휴식을 취하라는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들은 바로 휴식에 돌입했다. 3초 정도 지났을까 여기저기서 울리는 거친 숨소리와 코고는 소리가 요가원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곤하게 잠든 그들의 정신과 몸이 코고는 소리를 통해 내게 전달되자 덩달아 긴장했던 내 몸과 마음도 풀어졌다. 미움 받을 용기가 늘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이 이 워크샵을 싫어하면, 힘들어 하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짓눌렸던 건 사실이니까.


아무런 걱정 없는 표정으로 미간에 힘을 뺀 채 누워있는 그들의 모습. 늘 서 있거나 앉아있던 모습만 보다가 팔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누운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감동적이었다. 그동안 좀 무례하고 공감 능력이 없고 재미없다는 이유로 그들과 거리를 뒀는데 그들과 좀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신나게 누워 코를 골고 일어난 그들의 뒷머리는 이리저리 솟아있고 눈두덩이를 비롯한 얼굴 피부가 살짝 부어있었으나 개운해보였다.


“몸을 왼쪽으로 돌린 후 팔을 집고 조심히 앉으세요”


선생님의 쉬운 설명을 듣고도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헷갈려 몸을 요리 조리 돌리는 매니저님들. 내가 좋아하는 세계에 그들의 발을 담그게 한 것이 뿌듯하여 마음이 빡빡하게 차올랐다. 계곡이 아닌 요가의 세계에 발을 담근 그들이 좋아졌다.


워크샵이 끝나고 나서도 선생님께 야무지게 질문하는 그들.


“목이 아플 땐 어떤 자세가 좋나요.”

“햄스트링이 짧아진 것 같아요.”

“아까 알려주신 자세들을 집에서 할 때 몇 분정도씩 하면 되죠?”

“이 폼롤러 목 뒤에 받치고 자도 되나요?”


워크샵이 끝나고 회식 장소에 가면서 내 몸을 아끼고 소중하게 대해야 된다는 걸 배웠다며,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그들. 식사까지 마치자 여섯시. 근무시간 안에 회식을 포함한 워크샵이 마무리된 것까지 완벽한 하루였다.


집에서 요가를 할 때마다 매트 위 그들이 보여준 신기하고 이상한 동작들이 생각날 것만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를 놓고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