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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Aug 08. 2022

그간 오해가 좀 있었다

근황을 써보았습니다



1. 오해가 좀 있었다.

외향적이고 충분히 친절하고 순응적이라고 생각해왔다. 그치만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며 어색한 상대가 민망해보일지라도 불편하면 입을 열지 않는, 주어진 규율에 따르기보다 자신을 표현하길 원하는 사람. 이것이 그에 대한 설명으로는 좀더 적절할 것이다. 진정한 자유를 누려본 적이 없기에 자유의 대가가 무엇인지 아주 조금 건너 들어 알지만 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는 박완서 선생님의 책 제목처럼 자유의 냄새가 그렇게 매혹적일 수가 없다는 그. 자꾸 여기저기 기웃기웃대면서 본인이 사는 이 현생을 벗어나고자 한다. 여기서 ‘그’는 당신이 생각한 그 사람이 맞습니다.


2. 나는 지금 혼자다.

지난 주까지 학교와 거점돌봄센터 방학으로 첫째와 하루종일 함께 했다. 오늘까지 휴가라 드디어 혼자.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를 하고 아이를 개똥이네 데려다주는 길에 같이 나왔다. 황정은 작가 책 두 권, 필사 공책 하나, 스케쥴러 하나, 노트북을 바리바리 챙기니 가방만 두개다. 자주 가는 카페 말고 마을에 있는 비건 카페에 와봤다. 두유 베이스에 마카다미아 시럽이 들어간 라떼. 카페에서 꽂아준 스텐 빨대에 입술을 대고 쪼옥 들어마실 때마다 뒤쪽 어금니부터 잇몸과 옆구리가 으슬으슬하다. 감각은 어떻게 이리 빨리 퍼지는 것일까. 진짜 옆구리가 오싹한건지 뇌가 그렇다 생각만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스텐이 머금은 아이스 커피 한기가 고오대로 전해진다.


3. 쓰게 하는 이를 떠올린다.

나는 자주 그의 말을 받아적는다. 그가 말할 차례가 되면 이미 노트의 새 페이지를 펴 놓고 만년필 뚜껑을 열어놓는다. 그는 늘 재밌는 말을 하니까. 자꾸 내가 쌓아온 시간에 흠집을 내고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결국엔 쓰게 만든다. 지난 합평 시간에 그가 이야기했다. 당신 계속 써야한다고. 본인이 자신의 글과 자신 감정의 지향과 지도를 만들어 내야한다고. 그래서 나는 무슨 이야길 하고 싶은지 내 궁극의 마음은 무엇인지 찾아야한다고. 하지만 이번 글은 끝이 너무 말랑말랑해서 마무리에 클리셰가 많다. 글을 쓰면서 찾을 수 있을것이다, 그 이야기의 궁극에서 하고 싶은 것은 나만 알 수 있다, 당신 이미 성큼 나갔다, 쓰는 만큼 나아갈 것이다. 쓰고 싶은 만큼 써라. 당신이 계속 써봤으면 좋겠다, 쓰고 싶을 때까지.


4. 무지막지한 이야기를 읽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소설 특유의 난해함과 시공간의 이동과 회상인지 그로 인한 복기인지 독백인지 모를 대사들. 하나하나 보면 정말 모르겠는 것 투성인데 모아 놓고 보니 지나치게 흠뻑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말 말고 다른 말 못 찾겠다. 읽는 내내 압도당했다. 당사자성. 내가 겪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이 세계에 존재한다. 그래서 중요하지만 멀리 보이는 일들이 있다. 눈 앞에서 사람이 일하다 죽고 차별받아 죽어도 멀리 있다고만 생각되는 일들 앞에서 우리가 초연할 수 있는 이유. 그의 이야기는 제주도 4.3 항쟁의 당사자가 아니라 80년이 지난 지금 역사의 한 사건으로만 봐왔던 나를 그 안으로 질질 끌고 들어왔다.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아픔에 대한 묘사가 얼마나 시리고 끈적끈적하고 불편한지 읽는 내내 같이 아프고 같이 괴로웠고 우울했다. 당사자 아닌 자를 당사자로 몰아넣는 그 무지막지함. 그 무지막지함에 당해보시길 권한다.


5. 나는 나를 너무 중요하다 여긴다.

아이는 키운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엄마가 키운대로 자라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자꾸만 내 아이가 내가 키운대로 될 것 같아서 늘 주눅이 든다. 내가 하는 작은 말, 작은 행동에 영향을 받아서 그런 아이로 클까봐 겁이 난다. 내가 하는 말들과 행동들이 나는 맘에 들지 않는다. 어쩌다 한번 맘에 들 때가 있으면 그 순간을 기록하고 인스타에 종종 올린다. 요즘은 그마저도 잘 하지 않는다. 현실이랑 괴리가 너무 커서 괴롭게 될테니까. 내가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 아이에게 절대적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다. 사실 자책도 겸손하거나 자기반성보다는 자기 안에 있는 에너지를 해소하기 위함이라고 어디서 보았다. 비대해진 내 자아와 자의식을 좀 잠재우고 싶다. 누가 좀 알려주세요.


6. 새벽에 물 속에 몸을 담근다.

주 3회 새벽 수영을 한다. 정확히는 수영을 하기 위해 수업을 듣는다. 처음 나간 날 수영장 중고급반 분들이 발휘하신 텃세에 기가 죽었으나 이제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내가 잘 씻고 있는지 어머니된 마음으로 감시하시는 것일까. 물을 맞고 있는 알몸의 나를 뚫어져라 쳐다볼 땐 샤워부스를 옮긴다. 얼른 어깨 관절을 돌려가며 자유형을 신나게 하고 싶다. 배 위에 조개를 놓고 유유히 물위를 떠다니는 해달처럼 드러누워 배영을 하고 싶다. 새벽에 쏟아붓는 에너지가 내 쓸데없는 생각들을 잠재워주길 원한다. 단순한 걸 복잡하게 볼 때, 팩트보다 과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 나를 내가 너무 미워하기 전에 잠에 들고 싶다. 물 속에서 어설프고 제멋대로 흔드느라 지친 온몸의 근육들이 깊은 수면에 빠져들게 하는 호르몬의 분비를 도와주시길 비나이다,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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