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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Aug 12. 2022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문제를 내봅니다.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울렁거림


듣고 있는 수업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과제를 내주는데요. 이번엔 대상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서사적으로 풀어서 써오라고 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이야기로 써오라구요. 제가  아래 글을 보시고 어떤 단어 떠오르세요? 제가 어떤 단어를 유념해두고 썼을지 짐작이 가시나요? 생각나는 단어가 있다면 댓글로 써주세요. 아니면 그냥 생각만 해보셔도 좋구요. 매미들과 새소리로 시끌시끌한 아침입니다. 무탈하시길 빕니다.




방학이 시작되고 일주일 뒤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나는 엄마와 함께 여름 휴가를 떠났다. 엄마의 남자친구인 낚시 아저씨도 함께. 어디로 갈 거라든지 혹은 가서 무얼 할 예정인지에 대한 엄마의 언급은 없었다. 그저 아저씨와 함께 간다는 이야기뿐이었다. 집 앞으로 온 아저씨의 차를 탔다. 크지만 오래되고 낡은 다이너스티. 오래된 외관에 비해 내부는 깔끔했다. 차시트의 검은색 가죽이 맨들맨들했다. 차가 오랫동안 볕에 노출된 탓인지 반바지를 입고 앉은 좌석이 뜨거웠다. 한동안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은 채로 앉아있었다.


- 별아. 우리 마석으로 갈거야. 아저씨 친구가 그 절 스님이래. 거기 가서 일주일 정도 있다가 올거야. 피곤하면 뒤에서 자.


엄마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뒷좌석에 앉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는 내 옆이 아닌 아저씨의 옆에 있었다. 엄마에게 내 옆으로 오라는 말이 턱밑까지 나왔으나 내뱉지 못했다. 차에 탄지 5분도 되지 않아 갑자기 할머니가 있는 집으로 다시 가고 싶었다. 지금 말하면 뒤로 돌아서 갈 수 있을까. 다시 집에 갈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이에 이미 집은 멀어졌다. 그래도 엄마랑 같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 엄마가 옆에 있으나 없으나 늘 불안했어도 엄마를 지켜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백미러로 운전하는 아저씨의 얼굴을 몇 번 훔쳐보았고 엄마와 아저씨가 하는 이야길 들었다. 김씨네 부동산, 곗돈 받을 계획, 다음 주에 계획된 아저씨의 낚시여행.. 내가 알지 못하고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 밀려오는 울렁거림에 뒷좌석에 옆으로 누워 무릎을 굽힌 채 누웠다. 잠에서 깨고 보니 주차장이었다.


마른 흙과 돌맹이가 황량하게 널려있는 공터에 세운 차를 두고서 엄마와 아저씨는 짐을 들고 걸었다. 나는 그 뒤를 따라서 걷다가 주변 것들에 자주 시선을 빼앗겼다. 그러다 그들과 거리가 벌어졌다 싶으면 황급히 뛰었다. 아예 맘 놓고서 딴짓을 하기 위해 그들을 추월한 후 한참을 앞서 걷고 뒤를 돌아 저 멀리 엄마와 아저씨의 위치를 확인했다. 나무, 돌, 물웅덩이 앞에서 자주 멈춰 그것들을 만지고 쳐다보았다. 저 앞에 숲이 보였다. 숲으로 들어가는 길은 아스팔트가 아니라 흙으로 덮인 길이었다. 명확한 경계. 이 흙을 밟는 순간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흙을 밟고 조금 걷자 나무 몇 개를 이어 만든 통나무 다리가 나왔다. 다리 아래는 며칠간 내린 비 때문에 물이 불어 있었고 그 아래로 물이 뭉텅이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리를 넘자 1층짜리 파란 지붕을 가진 집이 나왔다. 그곳을 엄마는 절이라고 했다. 마당 한 쪽 끝에는 양팔을 둘러도 손 끝이 닿지 못할 둘레를 가진 대추나무가 있었다. 백살이 넘는, 벼락을 맞고서도 버틴 영험한 대추나무라고 했다.


- 이고 꼬마 아가씨 왔네요!


웃는 얼굴로 우리 셋을 맞이하던 걸걸한 목소리의 늙은 남자 스님은 옅은 회색의 승려복을 입고 있었다. 남자 스님 옆에는 키가 작고 말랐지만 동글동글하게 생긴 여자 스님도 함께 있었다. 멀미로 속이 채 가라앉기도 전이라 환영하는 인사에 고개만 까딱 숙였다.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그리고 어딘가 불안했다. 집에 가고 싶었다.


- 이 방이 제일 커요. 이 방에서 셋이 자면 돼요. 공주님 예쁘게 생겼네.


여자 스님이 이 말을 하며 방문을 열었다. 방 끝에 위치한 행거에 옷을 걸면 된다. 요와 이불은 넉넉하니 세 개 정도 방안 가득 펴서 자면 된다. 더우면 선풍기를 켜라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엄마와 내가 한 방에서 자는 게 아니었다. 아저씨와 자는 공간을 공유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잘 모르는 남자 어른, 그 남자를 의지하고 그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엄마와 한 공간에서 잠드는 것. 엄마를 울먹거리며 쳐다보았다. 불편함을 감춰야 한다는 생각이 빠르게 들었다. 그나마 방이 커서 다행이었다.


앞에 있는 개울에서 흐르는 물 때문인지 무겁고 축축한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그럴 때면 상쾌한 동시에 이상하게 막막했다. 이곳에서의 엄마, 이 곳에서의 아저씨, 스님과 여자 스님, 아저씨 엄마와 함께 잘 저쪽 방, 마당의 저 큰 대추나무. 어둑해진 된 하늘. 모든 것이 나보다 컸고 모든 것은 내가 올려다봐야 하는 것들이었다. 별들을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큰 나무의 가지들이 시야를 막고 있었고 그 사이로 넓고 먼 하늘을 보니 집 생각이 났다.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 엄마에게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


0-3-2 3-4-4 1-3-3-4


집 전화 번호를 누르자 신호음이 갔다. 신호음을 듣자마자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목울대가 아팠다.


딸깍.


- 여보세요. 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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