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해진 나를 보는 일은 쉽지가 않다
처음 며칠은 꿈 같았는데 계약을 하고 작업이 다가오니 여기저기가 아프다. 3주간 길게 앓은 감기 탓도 있겠지. 오늘은 점심시간에 밥도 건너뛰고 의자에 앉은 채 잠시 눈을 붙였다.
“국희 매니저 일어나봐”
“국희 매니저 뭐해”
“국희맴 무슨 일 있어?”
아무리 대답하려고 해도 말이 나오지 않았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도록 사지가 묶인 느낌. 겨우 눈을 떴다. 모두 꿈이었다.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저쪽 끝에서 보고서 작업을 하는 동료의 타자 소리만 들릴 뿐. 곧장 오후 반차를 내고 회사를 나섰다. 이 글은 병원에서 쓰고 있다. 이 글을 휴대폰 메모장에 쓰며 동시에 내 자신에게 몇 마디를 해주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가장 먼저 네 몸 생각한 거, 꽤 먼 거리의 병원에 가는 걸 마다하지 않은 것, 정말 잘했다. 병원 가는 거 귀찮았을텐데. 출간 준비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되는 거 알아. 괜찮아. 얼마나 떨리겠어.’
요즘 읽고 있는 책에 쓰여있는 것처럼 다른 누구가가 아닌 나를 향한 연민을 바탕으로 나를 격려하고 독려하고 따뜻한 언어를 내 자신에게 건넸다.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내가 나를 바라봐주는 이 느낌이 낯설었어도 싫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나는, 내가 나의 부모가 되어야 했었다. 비어있던 양육자와의 정서적 연결을 어린 내가 스스로 채우기 위해 택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단호함과 강박이었겠지. 스스로도 잘 해내는 것 처럼 양육자의 부재를 메꾸고 괜찮게 보이려고 누군가에게 책잡히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을까.
중요한 일을 앞두고 취약해진 나를 보며 우울에 빠진다. 그리고 그것이 꼭 실패인 것처럼 내 자신이 실패자인 듯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실수를 하는 것은 그것으로부터 배우는 일일 뿐, 과도하게 자신을 책망하거나 자책할 일이 아니란 것. 그 메시지들을 나의 자녀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도록 나에 대한 연민, 자아존중을 내 스스로가 내면화해야한다고.
나중에 출간에 대해서는 따로 쓸 기회가 있겠지만 이번 해 10월 시작한 투고에 좋은 결과가 있었다. 마치 자격 미달의 내가 조건이 차고 넘치는 애인에게 구애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며 메일을 보냈던 곳. 꼭 원고가 검토되지 않더라도 이곳에 내가 메일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내 자신이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러던 중 연락이 왔고 이제 계약을 막 마쳤다.
그 과정 중 많은 부침이 있겠지만,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는 나의 편이 되어주겠다는 마음을 먹어본다. 그리고 이제 시작이다. 힘을 내보기로. 잘 먹고 잘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