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거든요
모두가 잠든 일요일 아침 도둑 고양이 마냥 이불을 걷어내고 조용히 나왔다. 간간히 들리는 첫째의 숨소리와 둘째의 기침소리는 괜히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일어나서 주전자에 물을 받아 보리차를 끓이고 늘 그랬던 것 처럼 냉장고를 열어 초콜렛 한 조각을 떼어 내 입에 넣었다. 이것은 내 오래된 습관인데 어릴 적 주말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나를 위해 사다놓은 간식 생각부터 났다. 눈을 다 뜨지도 못한 채 냉장고로 가 초콜렛을 뜯어 크게 베어먹으며 행복감을 느꼈던 것으로 시작했던 일. 기름에 튀기는 유탕처리된 과자보다는 달달한 초콜렛을 좋아해서 주말이면 가장 먼저 냉장고 앞으로 가 설레는 마음으로 초콜렛을 꺼냈다.
지난 한 주는 잠을 깊게 자지 못 했다. 그 이유는 3주 째 몸살 감기에 시달리며 밤에 기침을 한 탓도 있겠지만 바로 책 출간 계약을 앞두고 있기 때문도 컸다. 내게 일어난 일이 꼭 꿈 같아서 자꾸만 의심을 하고 이 일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내게 너무 과분하여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 이 일이 너무나도 좋기에 나의 의식와 무의식은 애써서 모든 방어기제를 총출동 시켜 나를 보호하려는 듯 했다.
10월 중순 부터 투고를 한두 곳 시작해서 연락온 곳들 중 한 곳과 계약을 하기로 했다. 지난 주 금요일에 편집자분과 미팅을 했고 “출간을 확정되었어요, 이제 책을 어떻게 구성할 지 이야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라는 말을 들었다. ‘출간 제안을 드리고 싶어 메일을 드립니다.’라는 메일을 받고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미팅 날짜를 잡고 그 날을 기다리는 3일이 얼마나 길었던 지. 미팅 말미에 “저.. 이제 책 계약 한다고 주변에 말해도 되는 거죠? 사실 말하면 꼭 이게 신기루처럼 사라질까봐 말을 거의 못했어요.” 라고 하니, 편집자님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럼요, 그럼요”
출간계약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는 언젠가 한번 글로 정리할 예정이다. 투고를 앞두고 원고의 투고 형식이라든가 출간 기획서 작성 방법에 대해 브런치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 내 스스로 이 과정을 기록해두고 싶어서다. 설렘과 실망 당황스러움 막막함 우울감이 다채롭게 나를 지배했던 지난 한 달간의 시간. 돌아보니 그 모든 과정 속의 나는 나다웠고 나다움을 선택하기 위해 애썼고, 솔직하고 정중하려 애썼다는 사실. 그것이 지금 내 자신에 대한 충만감으로 다가온다.
책 한 권 내지 않은 무명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투고를 앞두고서 출판사 리스트를 뽑으며 묻지마 지원은 하지 않겠다는 마음. 다소 주제넘은 마음이지만 이것을 지키려 애썼다. 일일이 책장을 뒤지며 내가 푹 빠져 읽었던 책들의 맨 뒷면을 펴서 출판사 이름을 엑셀에 정리해놓고, 그 출판사의 대표작들을 그 옆에 적어두고 그 중 내가 읽었던 책이 있다면 감상을 적어놓았던 작업들. 일일이 출판사의 대표 사이트나 SNS에 들어가 그곳이 지향하는 바가 나의 글이나 나와 맞는 지 확인했던 일들. 모두다 리스트업을 해놓은 후 나와 결이 다른 곳들을 제하는 과정을 거치고 우선 순위를 정하며 홀로 숫자를 매길 때엔 마치 투고자의 입장이 아니라 출판사를 선정하는 입장의 심사위원같은 엄숙한 내 모습이 웃기기도 했다.
하루에 한 곳 혹은 두 곳의 출판사에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삼 일에 걸쳐 여섯 곳 정도에 메일을 보냈을까, 삼일 째 되는 날 보낸 메일에 바로 회신이 왔다. 그간 출판사에서 출간된 돌봄 관련 책들의 연장선 상에서 나의 원고를 검토해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약 한 달이라는 시간을 달라고 하셨고, 중복 투고 중이라면 이 원고 또한 검토하기엔 어렵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길기도 했고, 중복 투고를 말아달라는 요구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해가 되었던 것은 이 곳이 1인 출판사였던 것. 이 원고에 대한 검토와 노동력이 헛되지 않도록 함이니 봐달라고 양해를 구하셨다. 사실 이 메일에 마냥 좋아만 할 수만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연이어 냈고, 이 곳에서 나온 책들을 보면서 어떻게 이리 책을 예쁘게 만드는 지, 궁금도 했었다. 또한 이 출판사의 대표 겸 편집자님의 인터뷰도 몇 번 본 적이 있었고 신뢰가 갔다. 이곳에 메일을 보내면서도 마치 자격 미달의 내가 조건이 차고 넘치는 애인에게 구애하는 듯한 느낌을 가졌던 곳이다. 꼭 이 원고가 검토되지 않더라도 이러한 곳에 내가 원고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내 자신이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다만 문제는 내가 이미 여섯 곳 정도에 투고를 한 상태라는 것인데, 솔직하게 내 상황을 말씀드리고 기다린다는 메일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나의 투고도 잠시 멈추게 되었다. 한 달 간 모든 투고 활동이 멈춘 상태에서 내게는 글쓰기와 관련한 굵직굵직한 일들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