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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Dec 13. 2024

무엇을 기억하고 전승할 것인가

김현아 작가(어딘)와의 송년 토크

그 이야기 없이는 시작할 수 없는, 그런 사건들이 있다. 지금의 우리에겐 12월 3일이 그랬다. 계엄령이 내려지던 그 날. 어딘과 함께 글을 쓰고 공부한 앳된 여자들은 계엄령이라는 말을 듣고 곧장 국회로 달려갔다고 한다.


그들이 지체없이 국회로 달려갈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그냥이 아니었다. 그간 그들에게는 이미 이야기가 쌓여가고 있었고 그들 안에서 그 이야기가 움직였을 것이라고 했다. 백남기 농민의 시신이 공권력에 의해 강제로 부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장례식장을 지키면서, 세월호 집회에 나가면서, 기후위기 대행진을 하면서. 그 세대들은 거리에 나와 그들만의 이력을 쌓아가고 있다고.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각 세대가 각자의 이야기의 이력을 쌓아가면 사는 일'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여행학교 교장으로 일하면서, 읽고 쓰는 수많은 모임을 조직하고 꾸려가며 어딘이 많이 듣는 질문은 '저는 어떻게 살아가면 될까요?' 라고 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너무 고민하지 말라고 말한다.


공부를 하면 몸이 저절로 움직일 수 있다고. 제대로 된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그 공부가 결국 몸을 일으키고 움직이게 할 것이라고.


나는 그 세대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경의를 표해요.


지금 거리에 나와 케이팝을 부르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데에 서슴치 않는 이들에게 그가 전했다. <금강> 시를 낭독하던 그는 끝없이 반복되는 수탈과 배반과 착취의 역사를 동학으로부터 물꼬를 텄다. 19세기의 동학이 21세기의 우리와 접속하는 이 신비를, 이 절묘함을 감탄했다. 사사천 물물천 이천식천 사인여천, 이라는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가치를 그대로 담고 있는 동학의 사상.


그는 강의 도중 우리에게 이런 물음을 던졌다.


시민으로 살 것인가 고객으로 살 것인가


소비자 정체성이 가장 큰, 자본주의 아래에서 사는 우리가 시민으로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한 역사를 알고 이 땅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지. 그러면서 꼭 자존감과 뱃심이 길러지는 공부를 하라며 우리를 다독였다. 또한 우리는 누구의 등을 타고 오늘 이 자리에 와있는지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는 또한 우리의 식민지 역사를 소환해내며,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냥 '친일파'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들이 얼마나 독립투사만큼 어떨 땐 그보다 더 성실하고 치열하게 친일을 했는 지에 대해서.


이 세상에는 단 한번에 척결, 처단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우리 같은 국민들도 끝없이 되살아나 권력에 대응하고, 썩은 권력 또한 그 명맥을 끈질기게 유지하며 국가 권력을 가져가고. 이 세계의 역사는 끊임없이 분탕질 치는 자들과 그들에 대응하는 세력의 싸움으로 반복된다고.


그러면서 이야기의 전승과 관련해서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겪고 있는 이 일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그 질문을 놓치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내게 주어진 질문의 무게와 압박을 정확하게 보는 눈을 기르는 일이라고.


노무현 재단 건물에서 이뤄진 강의. 그가 생전 했던 말이 곳곳에 적힌 멋스러운 건물에서 나의 스승 어딘의 강의를 듣는 일은 행복하고 또 행복했다. 함께 글을 쓰는 동료들도 와 어딘의 이야길 같이 들었는데, 3년 간 글쓰기 수업을 하며 주 1회 매주 그의 이야길 들었어도 그의 이야기는 마르지 않는 샘 같았다. 즐거웠고 가득찼다.


재단 건물 앞의 멋스러운 창덕궁 돌담


그리운 노무현 대통령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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