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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 Sep 02. 2017

14. 비오는 날, 프라하에서 핫초코

예상치 못하게 만난 핫초코의 달콤함

한국 집에 있는 꿈을 꾸다 잠에서 깼다.

어쩐지 내 방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휑했다.


조식을 먹기 위해 준비를 마치고 방을 나서니 오랜만에 제대로 된 한식이 내 마음을 위로했다.

거의 2주 만에 먹는 한식 메인 요리 수육을 보고 내 양 볼을 감싸 쥐었다.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 예보를 보고 우산을 챙겨나갔다.

역시 비가 오고 있었지만 보슬보슬 내리는 비 때문에 걷기에 불편하진 않았다.

프라하성을 향해

빗물로 촉촉이 젖은 프라하의 거리를 걸었다. 어제와는 다른 공기에 어쩐지 기분이 차분해 짐을 느꼈다.

지도를 보고 무작정 걸어가다 끝이 없는 것 같은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다 옆을 보니 이런 풍경이 펼쳐졌다.

어제 천문 탑을 올라서 내려다보던 풍경과는 다른 시야였다. 훨씬 더 멀리 높게 프라하의 모든 전경이 보이는 듯했다.


Matthias Gate

뒤를 돌아 조금만 걸어가다 보니 광장 같은 곳과 경비병들이 서있는 문을 발견했다.

경비병들이 없었으면 그냥 산 위에 있는 다른 마을 정도로 생각되는 풍경이었다.

언덕 위 마을 같던 프라하 성을 걷다 발견한 단연 돋보이는 건물을 발견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이었다.

초록색의 철제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가 보았다. 한적해 보이는 바깥과는 다르게 성당 안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어두운 성당 안 눈을 뗄 수 없이 온갖 빛을 뿜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만 빛나고 있었다. 성당 밖의 장엄한 건축과 안의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는 종교가 없는 나에게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싶게 만드는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프라하 성에서 보인는 자주색 지붕들

성 비투스 성당을 나와 성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아침에 비가 왔었지만 나오니 비가 그쳐있있고 어느새 해가 나와 젖은 프라하 시내를 말리고 있었다.


 


프라하성에서 돌아오는 길 까를교를 지나던 길에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어제 가보고 싶었지만 그 아래 계단에서 우리 몸보다 큰 개에게 질질끌려 다니는 주인이 있는걸 보고 포기했던 터였다. 그 곳은 캄파 섬이라는 까를교 부근 인공섬으로 통하는 곳이었다. 내려가 보니 아기자기한 골목길과 건물들이 나타났다. 돌길들과 자그마한 가로수, 가로등들이 곳곳에 있었다. 인근을 걷는 것만으로도 유럽의 어느 마을에 와 있는 기분을 만끽하게 해주는 곳이었다. 조금 더 거리를 걷다 보니 알록달록 그라피티와 페인트로 덕지덕지 글씨가 써진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레논의 벽이었다. 원래 몰타 공화국 대사관 담이었던 곳이 존 레넌을 추모하는 곳 반공산 정권의 말들로 뒤덮였다고 한다. 대사관 담벼락인 만큼 치외법권이 적용되는 곳이라 그 당시 공산정권에서도 지울 수 없었고, 몰타 공화국도 그 뜻을 존중해 그대로 둔 것이 오늘날까지 남아 프라하에 오는 사람들은 한번쯤 가보는 곳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레논의 벽을 찾아가고자 하는 열정으로 당도하면 실망할 법도 한 규모지만 그 부근의 인공섬 주위를 따라 흐르는 작은 물줄기와 그 위에 있는 배들 그리고 작은 마을의 소박함을 같이 느끼며 찾아간다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곳일 것이다.


 

현지의 시장이 있다면 항상 가보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인 만큼 프라하에도 마켓이 선다기에 기념품도 사고 구경도 할 겸 하벨 마켓을 찾았다.

 길 중앙에 길게 늘어선 노점들이 꽃과 과일 장난감 등을 팔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과일들의 빛나는 색이 너무 탐스러워 보여 체리와 딸기를 한 바구니씩 사 먹었다. 값도 매우 쌌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한 바구니씩 안고 갓길 곳곳에 있는 벤치에 앉아 시식을 했다.

한 입 먹자마자 도전에 의의를 두고 남은 과일은 버리기로 했다.


마켓 곳곳에 있는 회전목마 장난감을 앞으로 남은 한 달 동안 캐리어에 넣어서 여행을 무사히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를 토론하던 중이었다.

그 맑던 하늘에 비가 하나둘 떨어지더니 갑작스럽게 우박이 우두 두두두 떨어지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물론이고 현지인들로 놀랐던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였다.

우리는 황급히 테라스처럼 쓰이는 건물에 들어갔고, 길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우박을 피해 건물로 들어왔다. 테라스 식탁에 앉아있던 사람들과 식당 직원들도 모두 놀라 밖으로 나와 우박이 떨어지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있었다. 정말 알 수 없는 날씨에 당황하던 우리는 현지인들과의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우박을 피해있었다.

 


몇 분이 지났을 까 우박은 도저히 멎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그때까지 멈추지 않으면 그냥 우박을 맞으며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지고 나온 우산이 망가질 만큼의 엄청난 양이라 우산은 무용지물이었다)


몇 분 후 우리는 왔던 길로 달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다 젖고 옷이 젖고 신발이 젖었지만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카메라와 핸드폰이었다. (아마 이때 맞은 비가 원인인 것 같은데 내 휴대폰의 액정에 물이 차서 남은 여행 동안 휴대폰으로 사진을 거의 찍을 수가 없었다)

달리고 또 달렸지만 숙소까지 이대로 가기엔 무리였다.


우리는 근처 카페로 들어가기로 했다. 갑자기 맞은 비로 몸이 추웠고 비가 멈추길 실내에서 기다리고 싶었다.

아무 곳에나 보이는 카페로 들어왔다. 따뜻한 실내의 공기가 몸을 감쌌다. 그 자체만으로 이미 만족이었다. 맛 따위는 사실상 필요 없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직원에게 어렵게 어렵게 얘기해 핫초코를 시켰다. 따뜻한 핫초코를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살짝 차가운 크림이 입술을 적시고 뜨거운 핫초코가 목구멍을 강타했다. 식도를 통해 위로 퍼지는 달콤함과 따뜻함이 느껴졌다. 몸이 스르르 녹는 것 같았고 이 곳은 천국과 같았다.


곧 있다보니 우박이 멈춰 숙소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숙소사장님이 몇년만에 나타난 기상이변이라며 이런 우박은 본인도 처음이라고 말했다.


-우리 참 여행와서 별경험을 다 한다. 한국에서도 못본 이런 우박도 만나고


허허허 몇년에 한번 경험할까 말까한 이제 다시 없을 경험을 한 것 처럼 너털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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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유럽의 변화무쌍한 날씨는 오늘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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