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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 Mar 13. 2018

21. 자전거로 마을 한 바퀴

기억 속에 담을 인터라켄의 모든 순간

별 다른 계획이 잡혀있지 않은 마지막 날.

늘 일찍 일어났었던 날과 다르게 오늘은 느지막이 일어나 조식도 먹고 로비에서 있다가 뭘 할지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룸메이트의 부지런함 때문에 억지로 새벽 6시에 일어났지만 그냥 그대로 누워있었다.

조용한 아침.


그 전날은 한국인임을 시험하는 고비와도 같은 날이었다.

괜찮은 줄 알았던 한식의 부재가 온몸으로 와 닿았다. 빵과 커피 시리얼 말고 흰 밥에 제육볶음을 얹어 먹고 싶었다. 그렇게 친구와 나는 매일 밤을 한국음식들을 서로 나열하며 슬픔 속에 주린 배를 빵과 누텔라로 채웠다.

(그래도 누텔라는 인류 최고의 발견이다.)



빈둥거리며 뭘 할까 생각하다가 근처에 자전거를 빌려준다는 소리를 듣고 숙소에서 나와 자전거 대여소로 걸어갔다. 비가 온다는 예보와는 달리 오늘은 하늘은 맑았다.

저 멀리 색색의 패러글라이딩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무서웠던 패러글라이딩도 이렇게 지상에서 올려다보니 아무렇지 않아 보여 다시 패러글라이딩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역의 큰 마트를 구경하고 자전거 대여소로 향했다.

어둑한 그곳에는 자전거가 창고 가득이었다. 우리에게 맞는 자전거를 고르기 위해 여기저기 보는데 자전거가 너무 높았다.

제일 작은 자전거를 달라는 말에 가게 주인이 건네준 자전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아용 자전거라도 타야 하나...

결국 이 곳에서 제일 작지만 나에겐 높은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정말 너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게 되어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페달에 한 발을 올리고 힘껏 굴리니 예전 시골에서 타던 감각이 돌아왔다.

자그마한 동네를 자전거 롤 돌아보기로 했다.


조금 큰 서역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오다 보니 자동차 도로와 자전거 도로가 같은 길에 있는 걸 발견했다.

그러니까 차도 가운데에 자전거도로가 있어 당황했지만 한국과는 달리 차가 사람을 조심한다는 것, 자전거를 조심한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져 마음을 놓고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인터라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자전거 대여시간이 2시간 남짓이라 호수까지는 나갈 수 없었다.

그 대신 동역과 서역을 가로지르는 Aare 강을 타고 달렸다.


청록색과 푸른색을 뒤섞어 놓은 것 같은 강과 강을 두르고 있는 집 그리고 두툼한 목재를 가진 낮은 나무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이 눈에 들어왔고 나무 아래를 비추는 햇살 강바람을 타고 달리는 길 속에 있었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지 잘 모르겠다.  

그저 영원히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길 바랐고, 내 기억 속에 영원하길 빌었다.

정신없이 달리다 강가의 벤치에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쉬었다.

내가 움직이고 풍경은 가만히 있을 때의 느낌과

내가 가만히 있고 풍경이 움직일 때의 느낌은 전혀 달랐다.

벤치에 가만히 앉아 흘러가는 강물의 물결이 변하는 걸 지켜보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았고,

구름이 움직이는 모양 지켜봤다.

어쩐지 코끝이 찡해져 왔다.

 스위스의 마지막을 이렇게 보낼 수 있게 되어 행복했다.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 머무는 일주일은 너무 행복했다.

익숙한 곳에서 떠난 새로운 곳에서도 느낀 도시의 북적임과 화려함이 아닌 새로움이 있었다.

눈이 닿는 모든 곳에 설산이 있고 청록색 강이 흐르는 곳이 어디 흔할까

이 곳에서 있었던 순간순간을 떠올리면 언제나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내 여행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인터라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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