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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 Apr 05. 2021

한국적 비극의 정수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그리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다 비켜 여기 K비극이 나간다.

<부제가 너무 거창한가요 하지만 여기 당신이 꼭 읽어봐야 할 장편소설이 있습니다.>


세계에는 유명한 걸작들이 많다.

그리스 비극, 셰익스피어의 비극 현대 세계 모든 문학의 토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비극이 있더랬다.

그 옛날부터 사람들은 왜 한 사람의 인생이 처절하게 박살 나는 비극을 좋아했을까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불행하다.'

문학의 가장 강력한 한 문장을 꼽자면 단연 꼽히는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의 시작이다.

모든 해피엔딩은 비슷한 방향으로 귀결되지만 세드엔딩은 제각각의 잔인함과 극악무도함으로 저마다 다른 곳으로 달려간다. 해피엔딩이라도 보일라 치면 흥미가 떨어져 드라마를 놓게 돼도 비극은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엉망징찬으로 망가지는지 손에 땀을 쥐고서라도 보게 되는 인류의 심리는 참 재밌고 잔인하기가 짝이 없다.


어렸을 적에 티비에서 토지라는 드라마를 봤던 기억이 난다. 김현주 배우와 유준상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는데 김현주 배우가 연기하는, 그러니까 주인공 최서희의 가문이 멸문 지하를 당하는 과정을 보며 그 어렸던 나이에도 다음 화에서는 우리 애기씨가 어떻게 저것들에게 복수를 하나 어떻게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깁갑수에게 철퇴를 먹을까를 고대하며 드라마가 하는 시간을 기다렸다.

그 기억으로 자라 드라마 토지의 원작인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읽으려고 도서관에 갔다. 분량에 기가 죽어 다른 책을 골라 나왔었다.

그러던 나에게 토지에 비하면 비교적 짧은 소설 김약국의 딸들은 코로나 시대 지루하던 틈에 아주 좋은 읽을거리였다.



김약국의 딸들도 제목만 들어봤지 무슨 이야기인지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로 집었다가 삼일 만에 냅다 읽어냈다. 나름 명망 있던 가문의 3대에 걸친 비극의 시작과 절정 그리고 산산조각 난 결말은 그동안 식단 조절을 위해 저염식을 먹다 갑작스러운 마라 맛의 등장에 모든 감각이 다시 작동하는 느낌이었다.


남해 작은 바다 마을 김봉제의 조카이자 훗날 김약국으로 호칭될 김성수. 김봉제의 동생인 그의 아버지부터 시작된 비극은 김성수의 다섯 딸로 이어진다. 설마 이렇게 비극이라고? 이렇게 가슴 울리는 억울함으로 끝나지는 않겠지라는 바람을 무심하게 지나치며 김약국의 비극은 멈출 수 없는 강처럼 흘러간다.

김약국 가족에게 닥친 비극은 자연과도 같다. 인간의 도리로 어쩔 수 없다.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 가슴을 치며 오열하며 원망하지 않는다. 덤덤하기까지 하다.


누구를 동정하지도 비난하지도 판단하지도 않으며 비극을 받아들이는 등장인물들의 태도와 서술방식은 삶을 살아낸 작가의 방식과도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순응하지 않는다. 완벽히 운명론적이라고 하기에는 용빈의 기개와 태윤의 열정과 무모함이 있다. 총명하게 빛나는 이성의 힘과 의지를 가진 용빈,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진 태윤은 그냥 그대로 모든 걸 흘러가게 놔두지만은 않는다. 용빈과 태윤은 자연의 물결에도 떠내려가지 않는 부표 같은 것이 아닐까. 잔인한 시대에도 떠내려가지 않은 사람들이 여기 있어요. 그 부표로 미래의 우린 과거의 삶을 짚어볼 수 있다.

새로운 것과 옛것의 충돌, 변화하는 사회, 식민지배의 허무와 열정에 대한 통찰이 비극적 서사와 맞물려 묘사된다. 이게 바로 대하소설이구나


사필귀정, 뿌린 대로 거둔다는 복수 성취의 이야기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단절시켜버린다.

나는 가문이 모두 잘게 깨져 그 파편조차 남아있지 않은 때, 용혜를 데리고 서울로 간 결말 너머의 용빈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겪지 않은 시대의 삶을 생각하게 되고, 처절한 슬픔과 쓸쓸함을 그리고 나는 어찌하지 못하는 커다란 비극 앞에 짐짓 숙연해지기도 했을 용빈을, 그렇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용빈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용빈에게 박경리 작가의 삶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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