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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소이 Oct 19. 2021

나는 매일 잠수함을 탄다



  “넌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지.”

  친정엄마는 책꽂이에 빼곡히 꽂힌 책을 보며 한마디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수줍다가도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이 밤새 내 귓가에서 맴돌았다. 나의 호기심을 알아준 친정엄마 덕분에 책이라는 벗을 처음 접하던 때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내 별명은 네모였다. 얼굴형이 네모진 데다가 항상 어깨에 닿을 듯 말 듯한 단발머리가 네모처럼 각을 이루어선지 친구들도 ‘네모’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택시 운전사였다. 저녁 늦게 들어오셨던 아버지는 엄마와 나를 자주 때렸다. 하라는 대로 해! 아빠는 군인처럼 명령했다. 나는 네! 알았어요.라고 주눅이 든 채 작게 말했다. 나는 평소 공상하기를 좋아했다.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을 마뜩잖게 여겼다. 아버지는 공상은 쓸데없는 짓이라며 다시는 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명령대로 행동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내게 있던 호기심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는 갈수록 네모를 좋아하는 성격이 되었다. 네모난 아파트와 네모난 창문, 네모난 방, 네모난 책상, 네모난 의자, 네모난 책꽂이, 네모난 화분, 네모난 지갑 등을 좋아했고, 그것들이 없으면 불안했다. 그중에서 제일 좋아했던 네모는 바로 책이었다.

 열한 살 때였다. 엄마가 시내 중심가에 있는 ‘서점’이라는 곳에 나를 데리고 갔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벚꽃이 팝콘처럼 떨어지는 봄날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책꽂이에 꽂힌 여러 책을 보면서 새로운 네모 세상이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소공녀’ 제목이 적힌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생일 선물이라고 네모진 어항을 집에 사놓으셨다. 나는 엄마를 끌어안고 네모진 어항 앞에서 벙글거렸다. 네모진 어항에 빨간 금붕어 한 마리가 유유히 돌아다니며 내 눈을 유혹했다. 금붕어는 네모가 아니었다. 울퉁불퉁하게 생긴 금붕어를 보면서 야릇한 감정을 가졌다. 그날 밤, 나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처음 갖는 책과 어항이라는 선물이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었다. 책을 들고 거실로 나와서 어항 앞에 머물렀다. 유리 안에는 분홍 불빛이 쏟아졌고, 물거품이 뽀글거리다 사라졌다. 산호초가 흔들렸고, 어항 가운데 장식으로 만든 파란 잠수함이 있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그 잠수함 안에 빨간 금붕어가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그런데 금붕어가 헤엄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금붕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 잠수함을 타봤니? 나랑 한번 같이 타볼래?’ 나는 몹시 놀라서 한동안 머뭇거렸다.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려서 금붕어를 보면서 그냥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금붕어가 이끄는 잠수함을 타고, 바닷속으로 한없이 밑으로 내려갔다. 바다 밑은 깜깜했다. 그러나 노란 불빛이 나와서 잠수함은 어둡지 않았다. 내가 침잠해서 내려간 곳은 다름 아닌 ‘소공녀’가 사는 동화의 세계였다. 그 세계는 정말 아름답고 따뜻한 세계였다.

  어느덧 내 나이는 마흔을 넘겼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된 두 아들과 직장에서 인정받는 남편이 든든한 벽처럼 나를 지켜주고 있다. 나는 전업주부이다. 나는 아직도 네모를 좋아한다. 칼날이 선 것처럼 빳빳하게 다린 와이셔츠와 바지를 남편에게 입히고, 이천 시시 급 중형차를 타고 회사로 떠나가는 그를 볼 때마다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새 옷처럼 빨아서 개켜 넣은 옷을 두 아들이 입고 준비물을 잘 챙겨서 가방을 메고 문밖을 나설 때도 나는 미소를 짓는다. 정형화된 삼십 평 아파트 안에서 남들이 알아주는 살림을 네모반듯하게 각을 세우며 꾸려갈 때마다 나는 편안하고 만족스러웠다. 잠시라도 그 틀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가족들에게 말했다. 그건 위험한 일이라고, 그러면 네모는 유지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의 네모진 가정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큰아들과 함께 정신과에 드나든 지 어느덧 육 년 차가 되었다. 큰아들은 주의력 결핍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틈만 나면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는 친구들을 마구 때렸고, 물건을 파괴했다. 정서장애까지 동반되어 당장 치료가 급했다. 잘 자라고 있다 믿었던 아들에게 배신을 당한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현실을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문제점은 크게 불어났다. 나는 완벽주의자로 아이들과 남편에게 내가 추구하는 삶을 강요하고 있었다. 큰아이의 뇌가 미성숙하다가는 걸 알면서도 네모진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고 신경질을 부렸다. 그런 악순환은 계속되고, 어느 날 나는 가슴에 깊은 통증과 잦은 이명으로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우울증과 함께 강박증까지 동반된 증상은 병원에 가야만 치료할 수 있었다. 정신과 약을 먹고 상담을 받으며 우울증에서 차츰 벗어날 수 있었다. 

  상담을 받던 어느 날, 네모난 방 안에서 나는 어릴 적 유리 어항에서 보았던 빨간 물고기가 떠올랐다. 그 물고기는 한 마리였지만,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꿈을 꾸고 있는 듯 반쯤 잠긴 눈, 그 눈은 잠수함을 통해 어느 곳으로든 침잠될 수 있었다. 나는 금붕어가 던졌던 질문이 떠올랐다. ‘잠수함을 타봤니?’

  마음이 안정되고 나서부터 나는 현실적인 문제가 보였다. 일단 아이가 잘 클 수 있도록 내 정신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한때는 종교에 깊이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는 내 헛헛함을 전부 채울 수는 없었다. 그즈음에 책이 내게로 왔다. 

  첫 책모임은 포털 사이트 카페였다. 카페 안에는 심리학 독서 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은 자녀교육에 관한 심리학 책을 읽고 현실적인 문제를 같이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았다. 독서 모임에 나가면서 나는 잃었던 웃음을 찾았다. 독서 모임에서 제일 큰 효과는 나하고 같은 연령층에 부모들이 겪는 어려움을 서로 공감하면서 상처를 보듬고 대안을 찾았다. 나는 모임을 통해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는 걸 알았다. 내 모습을 타인을 통해 발견하고, 다른 책에서도 찾고자 기웃거렸다. 그 책은 바로 다름 아닌 문학이었다. 문학은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또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독자들에게 질문하도록 유도했다. 이야기가 주는 신비한 힘과 재미로 인해 나는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번갈아 가며 읽었다. 그리고 단순히 나 혼자 문학만 읽으면 다른 사람의 생각도 들여다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문학 모임에도 문을 두드렸다. 

  「안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지호락’ 글귀다. 나는 책을 통해 ‘지호락’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고, 지성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되었다. 이 세상은 내가 짜 놓은 네모진 세계가 아니라 다양한 색깔과 형태, 느낌, 사고, 사건 등이 버무려져 인간이 함께 만드는 사회라는 걸 알았다. 이야기 세상을 알면 알수록 나는 그 힘이 신비롭고 다채로 와서 그래, 이 맛이지. 하고 무릎을 친다. 책을 읽고 나면 다른 이야기가 또 궁금해서 책을 애인처럼 잡고 살 수밖에 없다. 

  빨간 금붕어가 잠수함을 타봤니?라고 질문했을 때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이젠 빨간 금붕어에게 답을 할 수 있다. 나는 매일 잠수함을 탄다. 책은 내게 잠수함이다. 잠수함을 타고 과거나 미래로 가거나 판타지나 SF 세계로도 간다. 또한 다양한 인문학 바다로도 간다. 그 세계를 다녀오고 나면 나는 성장해 있다. 책은 이제 내 인생에 없으면 안 되는 물건이다. 책이 있어 나는 두렵지 않다. 엄마로서 여자로서 아내로서 내가 걸어가야 할 이 정보의 바다에서 책은 나를 멋진 잠수사로 만들어준다. 나는 잠수사로 어떤 풍파가 닥쳐도 회피하지 않고 현실에 맞서며 긍정적으로 이겨낼 방법을 책을 통해 얻을 것이다. 이 일은 멋진 일이고 정말 나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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