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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소이 Oct 22. 2021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

  추석 연휴를 일주일 앞둔 구월 중순 무렵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일요일 아침은 언제나 달콤한 잠의 세계였다. 

  “가을맞이 대청소가 있겠습니다. 주민 여러분들께서는 모두 나와 주시길 바랍니다.”

  오전 여섯 시가 되자마자, 마을회관 스피커에서는 이장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 목소리는 우리 집 창문 너머 내 귓가에도 들렸다. 나는 일어나기가 싫었다. 그래서 이불을 끌어당겨 모르는 척했다. 그런데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며 나오라고 말했다. 그 소리에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잠을 깨운 사람은 오십 대 후반 택시 운전사 옆집 남자였다. 그는 노총각이었다. 가끔 저녁마다 얼굴을 마주치곤 했다. 나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마을 어르신들이 모두 마을회관에 모였다. 나는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그들은 왜 그냥 나오냐는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르신들 손에는 빗자루가 들려 있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쏜살같이 창고로 달려갔다. 플라스틱 빗자루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회관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사십대로 보이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렸던 옆집 남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어르신들은 기쁘게 반겨 주었다. 해맑은 그들의 미소가 정겨웠다.

  일 년 전이었다. 천안 시내 아파트에 살다가 자녀교육을 생각해 전원주택으로 이사했다. 지역은 목천읍 동리였다. 우리 집 바로 옆에 마을회관이 있었다. 우리 집은 옛날에 방앗간이 있던 터였다. 어르신들은 나를 두고 방앗간 새댁이라고 불렀다. 집이 마을 네거리에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리 집을 거쳐야 했다. 사생활이 노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오히려 보안이 잘 되는 장점이 있었다.

  회관에 모인 남자들은 예초기를 메고 있었다. 여자들은 비를 들고 있었다. 동리는 기념관을 기준으로 윗마을, 아랫마을로 나뉜다. 두 팀으로 나누어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청소했다. 나는 이장님을 따라다녔다. 동리에도 전원주택 바람이 불어 외지 살다 온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아침 방송이 나왔음에도 청소하러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방송을 듣지 않았거나 나처럼 달콤한 잠에 빠져 청소하기가 싫었을 것이다. 마을은 지대가 평평한 동네다. 포장된 길 양 끝에는 여름날 무성하게 자란 잡초가 어른 무릎 높이만큼 올라왔다. 고요하던 마을이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로 쩌렁쩌렁했다. 잡초가 다듬어진 길 위를 비로 쓸어 깨끗하게 정리했다. 길은 방금 이발을 끝낸 머리처럼 깔끔해졌다. 아침 공기가 선선했다. 삼십 분 동안 열심히 비질했더니 등에 땀이 맺혔다. 

  동리는 매년 설날 전과 추석 전에 마을 대청소를 한다. 대청소는 이 마을의 오랜 전통이었다. 도시에 살 때는 내가 사는 동네를 청소한 적이 없었다. 그런 일은 환경미화원이나, 용역업체에 맡기면 되는 줄 알았다. 여럿이서 함께하는 대청소는 첫 경험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이라는 미풍을 이론으로만 들었지, 몸소 체험하기는 어려웠다. 아마도 시내 아파트 생활이 그런 문화를 자꾸 앗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사람들은 편리함만 뒤쫓아 그런 생각마저 아예 그만두지 않았는지? 스스로 질문하게 되었다. 이장님은 도시인들이 시골로 들어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라고 하셨다. 젊은이들이 더 많이 들어와야 한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가슴 한쪽이 짠했다. 그리고 시선을 이동녕 기념관 쪽으로 돌렸다. 

  이동녕 생가를 감싸고 있는 뒷산은 백로와 왜가리가 사는 서식지였다. 봄철부터 여름철까지 왜가리들이 시끄럽게 울어대는 소리가 우리 집까지 들렀다. 처서가 지났을 무렵부터 기념관 주변은 조용했다. 아니나 다를까? 왜가리들이 떠나고 없었다. 왜가리는 여름새라 했다. 무리 지어 다니는 텃새라지만, 인간보다 절기를 더 잘 아는 새 같았다. 왜가리 무리가 다시 돌아오는 때는 2월 말경이었다. 봄을 알고 오는 새였다. 왜가리가 번식하는 시기가 되면 마을 어르신들 일손은 무척 바빴다. 얼었던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었다. 산천은 꽃이 피고, 나무에 잎이 돋았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왜가리는 가족과 같았다. 생가터 가까이에 가면 녀석들이 시끄럽게 울어대는 통에 밤에는 잠도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시끄럽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길조라면서 그들의 고향 방문을 즐겁게 반겼다. 그렇게 정답고 가족 같던 왜가리가 떠나니 마냥 쓸쓸하다. 그렇지만 왜가리들은 내년에 다시 돌아온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약속이라도 한 듯 정확하게 돌아온다. 그때가 되면 마을 주민들도 그들의 방문을 기념하듯 대청소한다. 마을 대청소는 가을맞이 연중행사지만, 왜가리를 떠나보낸 마을 사람들의 쓸쓸한 마음이 반영된, 정리의 시간은 아닐는지 나름대로 정의를 내린다. 이장님이 빵과 흰 우유를 수고했다며 건넸다. 열심히 일한 뒤에 먹는 빵 맛은 꿀맛이다. 그즈음에 옆집 남자가 보였다. 아마도 아랫마을을 청소하고 올라오는 길인 듯싶다. 나는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옆집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갔다. 아침에 나를 깨운 그분께 감사드린다. 정말 멋진 대청소였다. 마을 대청소는 당분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런 좋은 경험을 내년에는 내 자식에게도 꼭 전해주련다.

  다음 주면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돌아온다. 왜가리들의 이동처럼 이곳 동리에도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여든다. 그러면 마을은 다시 시끌시끌할 것이다. 왜가리가 떠난 자리에 명절을 계기로 사람 자리가 채워진다. 그만큼 사람 냄새가 구수한 동네다. 우리 집을 지나가는 어르신이 한마디 하신다. 아이들 소리가 들려서 좋아. 그 말을 들으면 이사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은 이제 그들에게 남이 아니다. 이웃이다. 이럴 때 이웃사촌이란 말은 참 정겹다. 왜가리를 닮은 사람들,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 참 매력적인 동네에 사는 나 또한 타인이 아닌 진짜 마을 주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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