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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Sep 28. 2024

나만의 가을 맞이

마음 돌보기

가을이 되면 꼭 내가 인간 자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온갖 쓸쓸하고, 우울하고, 외로운 것들만 달라붙는 자석.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어김없이 몸에 자성이 생겼다.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기력하게, 무겁게,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았다.


며칠 그러고 지내다 보면 나도 내 마음에 지쳐 나가떨어진다. 그러고 나서야 내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 세상에 나 혼자 툭 떨궈진 것 같은 느낌, 망망대해 위에 홀로 떠있는 작은 섬이 된 것 같은 마음. 그런 마음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스스로 그 마음을 꼭 쥐고 있었다. 어디로도 달아나지 못하게 아주 꽉.  


그때 알았다. 이것도 습관이란 걸. 왔다 지나갈 수도 있는 마음을 꽁꽁 동여매고, 가두고, 더 깊이 숨겼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그래서 한 번 안 하던 생각을 해보기로 결심한다. 기분 좋았던 일, 아주 조금이라도 좋게 느껴졌던 일들을 곱씹고 곱씹어 보는 거다. 불안하고 쓸쓸한 마음을 곱씹는 대신. 마치 오른손잡이인 내가 왼손으로 가위질을 하는 것처럼 낯설고 어색했다.


아침에 주차 자리가 넉넉해 편하게 출근했다. 한의원이 무탈하게 잘 굴러가고 있다. 매번 아프다, 힘들다고만 하시던 환자분께 처음으로 좋아졌다,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점심에도, 저녁에도 내가 요리한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에어컨 바람 대신 선선한 바깥바람을 맞으며 잘 수 있다. 매일 아침 보는 높고 푸른 하늘이 좋다.


우울한 마음에 푹 젖어있었던 터라 기분 좋은 일이 있기나 할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마음 잡고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니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도 많았다. 그렇게 기분 좋은 일들을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칠세라 꼼꼼히 적고 틈이 날 때마다 읽고 또 읽으며 곱씹었다. 겨우 그것뿐이었는데, 신기하게 드라이어라도 쐬어준 마냥 축축했던 마음이 조금씩 보송해졌다.  




지난 주말에는 집 근처에 있는 30년 된 도서관이 새 단장을 했다기에 가보았다. 예전에 한 번 와봤을 때는 너무 음산한 느낌이 들어 그 후로 발걸음을 끊었었는데, 리모델링한 도서관은 신세계였다. 예쁜 카페 못지않게 산뜻한 분위기로 탈바꿈해 어린아이들부터 학생들, 어른들 할 것 없이 많은 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도서관에 와서 책을 든 사람들 속에 푹 파묻혀 나도 책과 한 몸이 됐다. 그리고는 책이 작정이라도 한 듯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말을 건넸다.


인생은 혼자 걷는 길이라고 말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세상 안에서는 혼자 내던져지는 법이 없다. 단지 우리가 혼자라고 믿는 것일 뿐이다.
내가 지금 걸어가는 이 길, 누군가는 그 길을 걸었으며, 지금도 누군가는 나처럼 그 길을 걷고 있고, 또 누군가는 그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에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조용히 책을 넘기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그들과 '함께' 독서하고 있는 것 같다는 연결감이 들었다. 망망대해 위에 나만 떠있는 게 아니라고 말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가을마다 힘든 마음이 드니 어느 순간부터는 여름이 끝나가는 게 무섭기만 했다. 이젠 그런 마음들도 조금씩 떠나보낼 힘이 생겼나 보다. 이렇게 새로운 마음들도 느끼기 시작하는 걸 보면.


어쩌면 매년 조금씩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들었다. 언젠가는 가을이 쓸쓸한 계절에서 풍성한 수확의 계절로 느껴질 날도 오지 않을까? 올 가을은 시작이 좋다.


자주 오고싶은 공간이 된 우리 동네 도서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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