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행복 스케치

앞으로의 내 인생 멋지게 스케치하기

by 사월

지난 주말 초복을 핑계로 서울에 사는 동생을 천안으로 불렀다. 토요일 저녁 보양식 집들은 다 만석일 것 같아 미리 예약도 해두고 함께 흑염소 집에 다녀왔다. 우리 부부는 작년에 아빠랑 함께 흑염소를 먹었는데 동생은 처음 먹어보는 거라고 해서 혹시 입에 안 맞으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 걱정이 무색하게 동생은 너무 좋아하며 수육부터 전골까지 맛있게 해치웠다.


동생은 고등학생 때부터 취미로 탁구를 쳤다. 운동에 재미를 붙여서 꽤나 오래 취미생활을 하다가 최근 이사 간 집 근처에는 마땅한 탁구장이 없어 탁구를 못 친 지 오래됐단다. 마침 식당 근처에 새로 문을 연 무인 탁구장이 있어 아빠, 남편, 동생, 나 이렇게 넷이서 탁구장엘 갔다.


탁구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탁구장에 사람이 그렇게 많을지 상상도 못 했다. 중학생쯤으로 되어 보이는 남학생들부터 우리처럼 가족끼리 온 손님들까지 탁구장도 북적거렸다. 탁구를 치며 땀 흘리고 노는 아이들을 보는데 요즘 아이들 참 건전하게 노는구나 싶어 괜스레 흐뭇하기도 했다.


나는 몸이 무거워 심판 역할을 했고 아빠랑 동생, 남편 셋이 돌아가며 탁구를 쳤다. 동생은 계속 "이럴 줄 알았으면 내 라켓을 가져오는 건데..." 하며 아쉬워했지만 실력이 엄청났다. 아빠랑 남편은 각각 아들과 처남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래도 다들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도 탁구를 쳤다. 우리들이 신나서 노는 모습을 아빠도 멀찍이 앉아 지켜보더니 껄껄 웃기를 여러 번이었다. 아빠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절로 행복했다. 탁구장에 가보자고 제안해 준 남편에게 정말 고마웠다.




언젠가부터 내게 가장 행복한 풍경은 우리 가족 다 함께 둘러앉아 밥 먹으며 웃고 떠드는 장면이다. 어릴 땐 당연한 줄 알았지만 이제는 그게 얼마나 귀한 순간인지 알기 때문이다. 20대 무렵 까지는 내가 뭘 할 때 행복한지 잘 몰라서 그저 남들이 많이 하는 거나 좋아 보이는 걸 따라 하곤 했던 것 같다.


힘들게 번 돈을 모아 명품백도 사보고, 배낭여행이 유행할 땐 친구들과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명품백도 예쁘지만 나는 그런 가방을 1년에 몇 번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정작 내가 매일 드는 가방은 계절별로 어울리는 각종 에코백이나 작고 귀여운 천가방이다. 어릴 땐 빽빽하게 계획을 짜 한 곳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여행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여행은 날 충천시키기보단 오히려 방전시켰다. 지금은 관광보다 휴양을 즐기고, 하루에 일정을 한두 개만 생각하고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여행을 선호한다.


'내 취향은 왜 이리 마이너 한 것 같지?' 하는 고민을 하며 20대 후반을 지나고 나니 30대쯤 들어와서는 사람마다 행복의 모양도, 색깔도, 맛도, 향기도 다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대학 동기들과 거의 1년 만에 만났다. 한 명은 만삭인 채로, 한 명은 두 돌 지난 딸 엄마로, 나는 임신 중반부를 지나면서 말이다. 어릴 땐 아침부터 저녁까지 똑같은 수업을 듣고, 심지어 하교 후에는 밥도 같이 차려 먹던 사이라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사는 줄 알았다. 그러다 졸업을 하고 각자의 길을 가면서 1년에 3~4번 만나곤 했었는데, 만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 친구들의 모습에 당황하기도 하고 부럽거나 샘이 나는 순간도 생겼더랬다.


이젠 모두 아기 엄마가 되어 잠깐 식사만 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1년에 한 번 밖에 못 보는 상황도 생기기도 하지만, 우리 각자가 누리는 삶을 위해 서로 어떤 희생을 하며 지내는지 알기 때문에 샘이 나는 마음은 벌써 사라진 지 오래다. 무엇보다도 '내'가 원하는 삶과 꿈꾸는 행복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기에 각자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친구들의 행보도 그저 응원할 뿐. 어릴 땐 둘도 없이 꼭 붙어 있어야만 친구인 줄 알았는데, 내 안에서 친구의 의미도 변해가는 걸 보면 새삼 신기하다.




집에서 차로 20~30분 정도 가면 곡교천이라는 천길이 나온다. 천안, 아산 시민들에게는 은행나무 길로 유명한데, 정작 가을에는 사람이 너무 많대서 가보지 못했다. 한여름 초록색 은행잎 아래로 걸어보면 그늘 아래 시원한 바람에 반짝이는 윤슬까지 더해져 답답했던 마음도 확 트인다. 갈 때마다 '여행이 따로 없다~!' 생각하게 해주니 가까운 곳에 이런 공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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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행복이 너무 시시하고 초라하다고 느껴지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게 나만의 독특하고 멋진 밑그림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도 지금처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곁에 두면서 행복한 삶을 한 장면, 한 장면 그리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