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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담쟁이 Mar 01. 2016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주차를 하고 걸어올 때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 별 몇 개가 반짝이고 있다.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분명 진눈깨비를 뿌리던 하늘이었는데 금세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자연도 인간 못지 않게 변덕스럽다. 도시의 밤하늘은 건물과 건물 사이 딱 그만큼의 크기. 하늘을 채우고 있는 별의 수효도 딱 그만큼이다.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지붕엔 박 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심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에는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노천명의 시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는 내 마음의 고향, 나의 노스탤지어다. 별이 쏟아지는 마당을 가질 수 있다면 이름 석 자 없으면 어떠리. 가녀린 목소리로 노래 부르던 가수 윤정하의 이미지는 한때 내가 꿈꾸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목이 길어 슬픈 눈망울을 가졌을 것 같은 시인 노천명 역시 학창시절 내가 닮고 싶은 미지의 여인이었다.


이 노래를 한창 즐겨 부르던 시절, 나는 나를 키워준 대구를 떠나고 싶은 열망에 강렬히 사로잡혀 있었다. 삶과의 치열한 전투로 대변되는 암울한 도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첩첩산중에 홀로 버려진다 해도 좋은 도시. 나는 간절히 그곳을 떠나고 싶었고 결국은 떠났다.


그로부터 삼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사람의 생에 있어서 삼십 년은 얼마나 긴 시간인가. 나는 진정 그 도시를 떠났던 것일까? 삼십 년 중의 단 한 순간만이라도 나는 그곳을 떠난 적이 있었던가. 내가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 나는 아직도 그 도시의 어두운 골목길을 달려가고 있다. 사방에서 그악스럽게 소리치는 삶의 파편들을 피해 잔뜩 움츠리고 숨어 있다. 꽃피는 시절이 내게도 분명 있었을 텐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대구’라는 도시는 어쩌면 이런 것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일까. 나의 고향은 어디에 있을까.


조각보 같은 하늘 아래 서서 나지막이 노래를 불러본다.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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