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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Sep 30. 2024

어둠. 무게. 신성

시구드 레베렌스, 세인트 페트리 교회

건축명: 세인트 페트리 교회 (Sankt Petri Kyrka)

건축가: 시구드 레베렌스 (Sigurd Lewerentz, 1885-1975)

건축연도: 1962-66년

주소: Sankt Petri KyrkaVedbyvägen 1 SE 264 21 Klippan, Sverige




건축가, 시구드 레베렌스


시구드 레베렌스(Sigurd Lewerentz)는 스웨덴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가 중 한 명이다. 그렇지만 동시대를 살았던 스웨덴의 유명 건축가 군날 아스플룬드 (Gunnar Asplund, 1885-1940)의 명성에 늘 가려진 인생을 살았다. 레베렌스의 이름은 스웨덴을 넘어서는 거의 알려지지 못했다. 


<시구드 레베렌스, Sigurd Lewerentz, 1885-1975>


사실 이 두 명은 동료로 시작했지만, 건축가로서 후반기에는 그렇게 매끄럽지 못한 경쟁관계를 유지했다. 누군가는 아스플룬드의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스웨덴을 찾았다가, 숨겨진 보석인 레베렌스를 발견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레베렌스는 아스플룬드의 그림자에 너무 가려져 있었던 건축가다.

군날 아스플룬드가 누군가? 우리나라의 거장 건축가인 승효상마저 사랑한 건축가다. 승효상은 군날 아스플룬드의 작품을 보기 위해 스톡홀름에서 내리자마자 '우드랜드 공동묘지'로 향했다고 말했다. 이 공동묘지의 스웨덴어 이름은 Skogskyrkogården(스코그스쉴카고든)이다. 즉역하면 '숲의 교회 정원'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영문 이름은 우드랜드다. 발음하기 어려운 스웨덴어 대신 영어식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져 있다.


이 공동묘지는 1915년에 시작해 1940년까지 이어진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만큼 스웨덴 건축역사에 기리 남을 큰 작품이 두 젊은 건축가의 손에 맡겨졌는데, 그가 바로 아스플룬드와 레베렌스이다. 


<우드랜드, 모뉴먼트 홀>

 

스톡홀름 우드랜드 공동묘지는 건축물로도 유명하지만, 공원부지의 아름다운 조경계획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죽음이란 끝이 아니라 떠난 자와 남겨진 자 간의 끊임없이 생성되는 경험의 일부라고 본 컨셉이 그대로 묻어나는 수작이다. 


남겨진 자가 떠난 자를 만나러 가는 의식, 우드랜드


특히, 개인적으로 우드랜드 공동묘지에서 좋아하는 구조물이 있다. 그건 레베렌스가 설계한 공원묘지 입구를 지나치며 만나게 되는 벽이다. 기둥 사이의 벽에서 흐르고 있는 눈물.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따뜻하게 이해할 수 있다. 


<레베렌스가 설계한 우드랜드 입구 구조물, © SVT, 건축가 레베렌스>


그리고 저 산둥성이. 계단의 밑에서는 저 너머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레베렌스는 이 공간을 설계하면서 계단의 돌을 아주 조심스럽게 디자인했다. 올라갈수록 계단의 단의 높이가 조금씩 낮아지게 설계했다. 계단의 시작은 힘들다. 정상에 다다를수록 숨은 가빠진다. 그리고 계단을 걸어온 방문자는 남겨진 자의 슬픔도 시간이 흐르면 추스를 수 있는 감정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참을 수 없는 상실의 고통이겠지만, 이 계단의 끝은 그나마 견딜 수 있는 고통의 무게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레베렌스가 설계한 언덕, © SVT, 건축가 레베렌스>


그 언덕 위에 서서 바라보면, 저 멀리 채플이 보인다. 스웨덴 공식 방송국 SVT가 제작한 레베렌스의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채플로 가는 길은 마치 산 자의 공간에서 죽은 자의 공간으로 거쳐가는 숲길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한다. 숲이 만들어내는 열림과 닫힘,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이 끝없이 반복된다. 고요함 속에 저 멀리서 새 울음 소리가 들리고 나무가 삐걱대며 만들어내는 사소한 자연의 소음을 듣는 경험은 특별하다. 그건 마치 죽음으로 향하는 작은 의식과도 같은 산책이다.


<언덕에선 긴 길을 지나 채플이 보인다. 이 또한 레베렌스가 설계했다, © SVT, 건축가 레베렌스>


만년 이인자 건축가, 시구드 레베렌스


안타깝게도 두 명이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후반기엔 아스플룬드의 단독 프로젝트로 마무리되었다. 프로젝트 담당자와 레베렌스 간의 불화가 그 이유였다. 아스플룬드는 사교성이 좋아 여러 담당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레베렌스는 그렇지가 못했다. 그는 늘 건축설계도를 변경하기 일쑤였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고집쟁이로 평가받기도 했다. 두 명의 건축가가 함께 경쟁작으로 선출된 프로젝트였지만, 이렇게 우드랜드는 아스플룬드가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사건이 레베렌스에게 끼친 영향은 컸다. 아스플룬드가 이러한 내용을 레베렌스에게 알렸을 때, 레베렌스는 절망과 노여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어쩌면 이때부터 그가 이인자의 길을 걷게 된 시작점일지도 모르겠다. 동료이지 친구였던 아스플룬드의 그림자에 가려진 건축가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스웨덴 공영방속국 SVT가 제작한 '건축가 레베렌스(Arkitekt Lewerentz)'는 그의 삶과 건축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준다. 그리고 그의 건축을 아름답게 담은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다. 안타깝게도 스웨덴 밖에서는 볼 수가 없다. (만약 우회해서 보려면, 맨 하단에 링크를 남겨 두었으니 참조하길 바란다.) 


레베렌스의 마스터피스, 세인트 페트리 교회


다시, 이 글의 원래 목적으로 돌아가서 클리판 세인트 페트리 교회(Klippan Sankt Petri Kyrkan)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레베렌스가 명성이 가려진 이인자가 된 배경을 설명하다 보니, 앞부분의 설명이 너무 길어졌다. 

클리판(Klippan)은 스웨덴 남부 스코네(Skåne) 주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예전에는 텍스트타일(직물)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했다. 지금도 회사는 운영되고 있지만, 공장은 모두 동유럽으로 이전해 버렸다. 현재는 회사가 운영하는 작은 직영 매장만 남겨 놓았을 뿐이다. 이렇게 클리판은 생명력이 꺼진 조금은 볼품없는 도시가 되었다. 이 교회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동네를 찾을 이유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클리판 기차역에서 내려 중심가를 지나 교회로 향했다. 이제는 노동자들로 북적이던 잘 나가던 지방 소도의 옛 영광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든 도시가 되었다. 교회는 중심가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주위도 그렇게 특별할 것이라곤 없었다. 그저 작은 도시의 한적한 주택가 정도의 분위기였다.


워낙 스웨덴에서 유명한 건축물이라 예배가 목적이 아닌 단순 건축관광으로 이곳을 찾는 이가 많다. 내가 교회를 찾은 날도 그런 사람이 조금은 있었지만 대체로 한적했다.

입구 앞에는 얕은 수공간이 있었고, 작은 분수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교회는 벽돌로 지어졌다. 1962년에 공사를 시작해 1966년에 완공되었다. 레베렌스의 후반기 작품으로, 그의 마지막 프로젝트다. 부르탈리스트(Brutalist) 건축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부르탈리즘은 영국에서 태생한 사조로, 1950년대 전후 망가진 도시를 빠르게 재건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탄생했다. 주로 콘크리트와 같은 거친 재료, 육중하거나 거대한 구조물의 뼈대를 그대로 드러낸다. 

개인적으로 북유럽의 부르탈리즘 건축물은 소비에트 공화국의 사회주의 건축물을 연상시킨다. 그걸 보고 있으면 괜스레 복잡한 마음이 든다. 어릴 적부터 반공주의에 물든 탓일까 싶다. 이래서 조기교육이 무섭다.


클리판 교회가 부르탈리스트 건축물로 분류되는 이유는 거친 벽돌 마감이 안과 밖으로 솔직히 드러나 있으며, 교회 예배당 안의 육중한 철골 구조물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가 조금 꺼려진다. 왜냐면, 이 교회는 철저하게 수공예적 방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건축의 주된 재료인 벽돌마저 레베렌스는 따로 제작주문했다. 벽돌 건축물의 마스터피스라고 한다면 어울릴 장소다. 굳이 모던 시대에 벽돌 아치로 천장을 만들었다. 여러 패턴으로 조적된 벽돌을 보고 있으면 조적공이 건축가 때문에 많이 힘들었겠구나를 느끼게 된다. 또한 건축가는 벽돌을 쪼개서 쓰길 거부했다. 이건 마치 안도 다다오가 욕실 바닥 타일을 쪼개서 쓰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교회의 벽과 벽, 벽과 바닥이 만나는 모서리 부분을 보면 벽돌이 온전히 사용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들 레베렌스와 일하기 싫어했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렇게 사람의 손으로 그것도 엄청난 수고로 만들어진 건축을 어떻게 부르탈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예배당 메인 출입구>
<도로에서 바라본 교회 측면, 부속실의 모습>
<뒷마당에서 바라본 교회 측면, 사무 고용 공간>


어둠. 신성


교회의 안은 어둡다. 벽돌이 주는 물성 때문에 마치 동굴에 들어온 것만 같다. 아니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중앙의 거대한 철골 구조물 때문에 마치 깊은 탄광 안으로 들어온 것만 같다. 겨울이 되면 어두운 날들이 많은 스웨덴이다.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어둡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내부는 어둠으로 가득하다.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 입구를 지나 예배당으로 들어가면서 시야도 서서히 어둠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레베렌스가 '어둠의 공간'을 만든 의중을 짐작해 본다. 종교의 본질은 아니겠지만 많은 속성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의 욕망을 제한을 데 있다.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 증언하지 마라...' 

십계명을 잠깐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인간에게 충동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욕망을 제한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종교마다 다른 방법(교리)을 택하지만, 결국은 세속의 아픔, 고통에서 벗어나 더 신성한 신의 세계에 가까이 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건 좋게 해석하면 좋은 인간이 되라는 신의 말씀이다. 물론 이는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나와 같은 비딱한 비종교론자는 '욕망을 제한하면 다루기 쉬운 대중을 만들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욕망을 자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감각을 제한하는 것이다. 즉, 교회의 어두운 공간에 들어선 순간 우리는 시각이라는 감각 하나를 상실하게 된다. 우리가 시각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는 지를 생각한다면, 제한된 시각은 인간의 행동을 제한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감각을 상실한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인간은 나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잔뜩 몸을 움츠리고 조심스럽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공포일 수도 있고 위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가 추구한 것은 공포나 위험이 아니다. 어둠으로 감각이 제한되면 인간은 다른 감각을 일깨운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안정은 신성과 연결된다.  



눈이 멀면 다른 감각이 섬세해지기 마련이다. 종종 그것은 청각의 발달로 이어진다. 어둠 속에서 어디선가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말라고 다독여 주는 소리 같다.  '똑... 똑... 똑...' 마치 오래된 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 같다. 일정한 간격으로 끝없이 들리는 어둠 속의 작은 소음. 이 어두운 공간을 지나오는 여정에도 신성은 늘 당신의 주변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소리다. 신의 입장에서는 인간이란 본연의 자아를 상실하고, 인생이라는 길에서 방황하는 존재이지 않은가. 


물방울 소리가 들리는 원천은 세례를 위한 공간이었다. 곡선으로 둥글게 올라간 곳에서 세례를 받을 사람이 서고, 바닥에 십자가를 새겨 놓은 곳 근처에 목사님이 선다. 틈으로 벌어진 바닥 아래로 물이 흐른다. 조개 위에는 물이 한 방울씩 쉴 새 없이 '똑.. 똑..' 떨어진다. 

이제까지 본 세례를 위한 장소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다. 개인적으로 교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기도 했다. 그 장소에 서서 벽돌로 만들어진 디테일을 오랜 시간 공들여 바라보았다.  


<© SVT,  건축가 레베렌스>


어둠 속에서 빛은 상당히 절제되어 사용되었다. 예배당 입구에 해당하는 벽 쪽을 제외하면 사실상 제대로 된 창이 없다. 대부분 창이라기보다는 틈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빛은 희미하게 어둠으로 스며든다. 그렇지만, 빛은 어둠을 지우기엔 너무도 부족하다. 그저 내부 공간의 형태를 가늠하게 할 정도이다. 


<© SVT, 건축가 레베렌스>
<© SVT, 건축가 레베렌스>
<© SVT, 건축가 레베렌스>



무게. 신성


교회에 사용된 모든 재료에는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물성으로 가득하다. 어두운 벽돌이 그렇고, 두꺼운 벽이 그렇다. 그리고 두꺼운 철골 뼈대도 그러하다. 이 철골 뼈대가 시각적으로 끼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 그 큰 구조물이 예배당 가운데 딱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여느 공장에서나 볼법한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역시 부르탈리즘 건축이라 평을 받는 이유가 될법하다. 

그러나 굳이 무겁게 벽돌로 지붕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지붕이 무거워지니 그 무게를 버티려다 거대한 철골빔이 사용되었다. 그로 인해 내부 공간이 확 트인 느낌을 주는가?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다. 가운데 자리 잡은 철골 기둥에 시선이 너무 집중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레베렌스의 의도였을 수도 있겠다. 그의 의도를 짐작해 본다. 물론 그는 이 구조물이 십자가를 상징한다고 말한 적은 있다. 그러나 그 이외의 상징성은 알려진 것이 없다. 


그의 의도를 짐작해 본다. 십자가 모양을 한 저 철기둥이 지탱하고 있는 건 예수가 짊어진 무게를 상징한다. 고의적으로 무게감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엿보있다. 예수가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떠날 당시에 십자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철재 십자가가 받치고 있는 어두운 무게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교회가 신성성을 드러낼 때 사용한 방법은 높은 층고, 화려한 장식이나 벽화,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자주 사용한다. 그런 교회 내부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인간세상이 아닌 성스러운 신의 장소에 들어왔음을 직감하게 된다. 

그렇지만 교회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화려한 벽화,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전통적인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무게를 택했다. 그 무게감이 주는 상징성을 택한 셈이다. 예수가 짊어져야 했던 무게를 떠올린다. 

얼마나 무거웠을까? 

우리를 위해 짊어진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자연스레 인간은 그 무게에 신성함을 더하게 된다.




디테일로 시작해 디테일로 끝을 본 건축


1) 창문 디테일


교회 안을 배회하는 일이란 상징으로 가득한 영화를 보는 과정과 같다. 레베렌스가 어디에 어떤 의도를 남겨 놓았을까? 어느 곳 하나 그의 의도가 없는 곳이 없다. 물론 나는 그중의 일부를 찾았을 뿐이다.


레베렌스의 대표적인 창문 디테일은 내부의 디테일을 없애는 데 있다. 내부에서 밖을 보면 마치 창문틀이 없이 그냥 뻥 뚫린 것처럼 보인다. 물론 당연하게도 창에는 유리가 있다. 스웨덴도 추운 겨울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유리를 받치는 틀이 내부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외부에 오버 사이즈로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안쪽에서는 창틀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레베렌스는 이런 창문 디테일을 자주 사용했다.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유리 공장을 이어받아 계속 운영하면서 이런 창문 시스템도 같이 만들었다. 그가 제작한 새로운 창문들은 그의 건축에 고스란히 쓰였다. 사실 그는 뛰어난 사업가이기도 했는데, 그가 고안한 여러 디자인의 철재, 유리 소재들은 많은 지하철 역사와 같은 공공건축물에도 사용되었다.



2) 벽돌 디테일


이 교회를 위해 레베렌스는 벽돌을 따로 주문제작해 사용했다. 벽돌 하나하나 쌓는 방식, 그리고 다른 공간에는 다르게 적용하는 방식을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모든 것을 전부 디자인했을 그의 성격이다. 아래 사진들을 보면, 벽돌이 다양한 모양으로 쌓였으며, 벽돌을 쪼개서 사용하지 않고 조적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괜히 사람들이 그와 일하기 어렵다고 한 것이 아닐 테다. 그렇지만 건축가의 고집은 아름다운 결과물로 남는다.



3) 건축가의 지침 


공간 곳곳에는 건축가의 지침이 담겨있다. 예를 들어 아래 사진을 보면, 바닥에 색이 다른 벽돌이 하나 놓여있다. 이는 목사님이 강단에 서는 곳을 알려주는 표시다. 이곳에 서야 가운데 철골구조에 가리는 부분 없이 교회를 찾은 모든 사람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건축물 곳곳에 건축가의 많은 고심이 담겨 있다. 이 퍼즐 조각들을 찾아보는 것도 교회를 방문하는 즐거움이다. 이 벽돌은 사실 교회를 잘 아는 사람이 알려준 디테일인데 혼자서 방문했다면 절대 찾지 못했을 것이다.



4) 환기를 위한 디테일


모든 것이 디테일, 그리고 디테일이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 벽에는 아래로 길쭉하게 뻗은 선들이 보인다. 이는 외부환기를 위해 구멍을 뚫어 놓은 것이다. 



5) 날 것 그대로의 디테일


건축물을 방문할 때, 몰래 은근히 즐기는 장소가 있다. 바로 화장실이다. 건축가는 화장실을 어떻게 설계했을까? 이를 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화장실 또한 벽은 벽돌로 쌓여 있었다. 숨기지 않고 드러낸 구리 파이프에 찬물과 따뜻한 물별로 달린 꼭지가 인상적이었다. 대충인 듯 대충이 아닌듯해 보였다. 벽돌 속으로 파이프를 넣기 힘들었을 것이다. 감출 수 없다면 솔직하게 드러낸 모습의 결과다.



6) 램프 디자인 


조명도 레베렌스가 디자인했다. 외부 램프는 약간 고개를 숙인 듯한 모습을 가졌다. 레베렌스는 이런 류의 꺾임, 곡선을 디자인에 자주 적용했다. 




다시는 없을 건축물


레베렌스가 설계한 이 클리판 교회는 디테일에서 시작해 디테일로 끝장을 보는 건축물이다. 이젠 이런 디테일을 스웨덴에서는 다시 볼 수 없을 테다. 건축가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시공사는 이런 복잡한 디테일을 듬뿍 담아 온 건축가의 도면을 허락할 리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이 아픈 점은 스웨덴 사람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현대의 스웨덴의 도시들은 시공사의 말을 잘 듣는 건축가만 날아 남았으며, 그들의 합작으로 싸고 조잡하게 디자인된 못생긴 건물들이 새로이 지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모든 것이 현재 스웨덴에서 건축물이 지어지는 시스템에 기인한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쉽게 그리고 싸게 지으려고만 한다. 물론 비싸게 돈을 들여야만 좋은 건축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간과 공을 들이는 데는 그에 상응하는 노동비가 치러질 필요가 있다. 그런 비용을 이제는 원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또한 스웨덴에서는 시공사가 건축가보다 입김이 너무 세고, 거의 모든 과정에서 모듈화가 너무나도 잘 자리 잡혀 있다. 모든 것이 규격화되어 있다. 규격을 넘어서는 창이나 시공법은 천정부지로 가격이 올라간다. 

이러한 환경에서 레베렌스와 같은 건축가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고, 세인트 페트리 교회 같은 건물을 지으려는 건축가도 미래에는 찾아보기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다. 스웨덴 건축의 미래가 어두운 이유다.


레베렌스가 설계한 세인트 페트리 교회는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건축물은 아니었다. 교회를 다녀와서 깨달은 것은 내가 열려있는 공간을 상당히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그런 나에게 이 교회는 너무 닫혀있는 건축이었다. 조금은 답답한 느낌을 지을 수가 없었다. 물론 레베렌스의 마스터피스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건축이었다. 건축을 공부하려면 배울 점이 많은 곳이기도 했다.





1. 방문 정보

방문시간: (월-금) 8시-18시, (토요일) 닫음, (일요일) 10시-18시 

가이드 투어 문의 : 전화 +46) 0435 29680, 메일 info@sanktpetrikyrka.se

주소: Sankt Petri KyrkaVedbyvägen 1 SE 264 21 Klippan, Sverige


2. 가는 길 (구글맵)

클리판(Klippan) 기차역에서 보도로 약 10-15분 정도 소요. 구글맵을 보고 찾아가면 된다.


3. 구글맵으로 본 배치도


4. 세인트 페트리 교회의 전경을 보려면 아래의 유튜브 영상을 보면 된다.


5. 세인트 페트리 교회 현장을 방문한 레베렌스의 모습과 당시 공사현장 (출처: SVT, 건축가 레베렌스)


6. 만약 SVT 다큐멘터리인 <건축가 레베렌스>를 우회(VPN으로 국가를 스웨덴으로 설정)해서 보길 원하는 경우에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면 된다. 참고로 이 동영상은 SVT가 스웨덴에서만 볼 수 있도록 설정을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라 스웨덴 외의 국가에서 접속하면 시청이 불가하다.

https://www.svtplay.se/video/KNwJoEb/arkitekt-lewerentz


7. 세인트 페트리 교회 웹사이트

https://www.sanktpetrikyrka.se/


8. 건축가 시구드 레베렌스가 설계한 건축물 리스트

https://www.lewerentz.one/SWE/lewerentz%20arbeten.htm





위로의 길을 따라 걸을 것 (안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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