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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부 Dec 19. 2023

엄마가 엎어졌다.

엄마는 몇 년 전 뇌졸중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다행히 큰 후유증이 없이 지내시고 계시지만 두 달에 한 번은 대학병원에 버스 타고 진료를 받으러 다니신다.


며칠 전 진료를 받으러 가셨다가 오는 길에 버스정류장에서 혼자서 엎어지셨단다. 엄마는 잠깐 기절했고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이 119를 불러 응급실로 실려가셨다.


전화 연락을 받은 아빠는 몇 년 전 운전면허증을 반납하고 운전을 안 하시기 때문에 택시를 타보려고 했지만 실패하시고 버스를 타고 겨우 병원에 도착하셨는데 당뇨병을 앓고 계신 아빠는 식사 때를 넘기면서 기력도 없고 정신도 없으신 상태로 의료진들이 기다리라는 대로 기다리시면서 점점 인내심이 바닥나셨나 보다.


대학병원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서 사고가 났는데 다른 병원 응급실로 데려다 놓은 것도 이해가 안 되고  그래서 가기가 더 힘들었던 것에도 화가 나고, 왜 찍는다는 설명도 없이 사진을 찍어대고 찍고 나서는 결과를 설명해 주지도 않고, 미리 말도 없이 다짜고짜 입술을 꿰매길래 왜 꿰매냐고 하니 그럼 꿰매지 말까요?라는 싹수없는 소리를 듣다가 결국에는 무력감을 느끼셨던 거 같다.


럼에도 두 분은 자식들한테 말도 안 했다. 이틀 뒤 내가 안부전화를 걸었다가 대답이 시원치 않은 엄마를 다그쳐 물으니 겨우 조금 다쳤다고 하셨다. 동네 친구들이 장도 봐주고 불편한 거 없다고 하셨다. 나는 당장 마트며 시장에 들러 보이는 대로 장을 봐서 갔다. 엄마는 내가 간다고 밥을 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한 팔은 깁스를 하고 턱에는 귤만 한 검은 멍을 달고서.


엄마 아빠는 그날 무슨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뒤죽박죽인 상태였다. 아빠한테 전화를 한 사람이 정류장에 있던 사람인 줄 알았는데 구급대원이었고 가까운 병원을 두고 멀리 있는 병원에 갔던 것도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우리 나름대로 이유를 찾아서 이해하고, 병원 의료진들도 무성의하고 체계적이지 않은 대응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배가 고파진 아빠가 차분하게 이해하지 못한 점도 있었다고 납득하고 나니 조금 마음을 놓으시는 듯했다. 자기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해서 벌어진 일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정말 기분이 더러운 일이다.


얼마 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명인 앤 타일러의 신간을 읽었는데 그 줄거리가 중년의 주인공이 낯선 동네로 이사를 하고 그 날밤 강도가 들어서 공격당해서 기절한 후에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는데 주인공이 너무나 간절하게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이었다.


바로 그런 일이 엄마와 아빠에게 일어난 것이다. 아빠는 사고 현장에 있지 않았고 엄마는 기절을 해버렸다가 깨어나 보니 응급실이더라.. 하는 상황인데 구급대원도 응급실의 간호사도 의사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관심 갖고 설명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어디가 어떻게 다쳤는지 저혈당 증세가 일어날 때까지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77살, 84살 먹은 두 노인은 화를 내다가 결국에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내가 가서 두 분이 설명하는 정황을 듣고 나름대로 스토리를 설명해 드리니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구급대원으로 추측되는 전화번호는 며칠 동안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았다고 했다. 내가 전화를 해봐도 받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니 엄마보다도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통제하지도 못했다는 실망감에 빠진 아빠가 오히려 더 우울해 보였다. 다행히 엄마는 통증이 심하지 않았고 팔은 깁스를 했어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서 조심조심 사용하니 많이 불편하지도 않다고 하셨다.


다음 날 치료받은 병원에 예약이 되어 있어서 가려다가, 그날뿐 아니라 몇 번 더 진료를 받아야 한다면 멀리까지 두 분이 차도 없이 다니시기에는 힘든 점이 있을 것 같아서 근처 정형외과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병원에 가니 일단 사진을 찍어보자고 했고 보시더니 골절이네요..라고 했다. 금시초문이었다. 엄마는 아프지도 않고 별 다른 얘기도 들은 게 없으니 그냥 깁스만 제거하고 오면 될 거라고 했었는데 골절이라니. 두 분한테 아예 설명을  안 한 건지 아니면 설명을 들었어도 놀라고 당황해서 못 알아들은 건지 알 수가 없다. 다행히 골절이 수술을 할 정도로 심하지는 않으니 통깁스로 다시 하고 한 달 동안 잘 유지를 하면 나을 것 같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사진만 찍으면서 보자고 하셔서 깁스를 다시 하고 돌아왔다. 오는 길에 치과에 들러 실밥을 제거해 달라고 하니 최대한 제거했지만 아직 딱지가 많아서 그 아래에 있는 건 제거하지 못했다고 일주일 후에 와서 다시 보자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차분히 다시 설명해 드리고 입술에 딱지가 말랑해지는 크림을 열심히 바르시라고 하고 일주일 후에 두 군데 병원을 한꺼번에 가보면 된다고 설명을 해드렸는데도 그 말을 잊으시고 오늘 아침에 가서 허탕을 치고 오셨다고 한다. ㅠ


엄마는 운동으로 수영을 시작하신 지 30년도 넘은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같이 수영장에 가면 진짜로 물개처럼 수영을 잘했다. 그러다가 뇌졸중이 오고 나서 수영실력이 급감했다고 하시고 또 어깨가 아프신 후로는 아예 수영 자체가 잘 안 된다고 하신다. 그럼에도 수영을 끊지 않고 다니시는데 물에서 노는 게 그렇게 좋단다. 엄마가 다쳤다는 소식을 들은 수영반 친구들이 병문안을 오셨다. 수영을 마치고 함께 오셨는지 가방 하나씩 매고 알록달록 옷을 입으신 할머니들이 오셔서 잠깐 과일 먹고 돌아가시면서 돈봉투를 주셨다. 성자야 맛있는 거 사 먹고 얼른 나아서 나오니라~ 우리 엄마가 이쁨 받는 동생이었나 보다.  저녁때가 되니 앞집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 가신 아줌마가 딸기 한 박스랑 추어탕을 포장해서 가지고 오셨다. 그래서 추어탕을 데워서 같이 저녁으로 먹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먹었다. 점심때가 되니 건너편 사시는 아줌마가 부침개 반죽을 봉투에 담아 오셨다. 성~ 부치기만 해서 드셔.~ 던져주고 바로 돌아가신다. 아까 전화를 하니 동네 아줌마들이 엄마 점심 사준다고 얼른 나오라고 해서 나가는 중이라고 서두르신다.


아빠는 일주일에 두 번은 정해놓고 같이 점심을 드시는 친구분들이 계신다. 그렇게 만날 친구가 있고 외출할 명분이 있는 일상이 정말 소중하다.


생활이 자신 없어져서 도움이 닿는다는 자식 옆으로 이사를 한다면 부모님의 생활환경은 온통 낯선 것들로 채워질 것인데 그것에 잘 적응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자식들의 조금의 도움으로는 갚을 수 없는 독립적이고 건강했던 일상을 잃게 될 것이다. 가장 좋은 건 지금 사시는 곳에서 필요할 때마다 즉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데 안타깝게도 지금 당장은 그래 줄 자식이 셋 중에 하나도 없다.


엄마 아빠가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조금만 더 버텨주셨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시간을 준다면 우리가 달려갈 날이 머지않았다. 엄마 아빠가 필요로 하는 건 작은 도움이다. 조금만 천천히 해도 된다면 못할 일이 없고 조금 더 크게 대화한다면 이해 못 할 말이 없다. 지금도 엄마는 맛있는 반찬을 나보다 더 잘하고 아빠도 집안 건사를 단단히 잘하신다. 조금만 도와드리면 되는데 그게 안되니 속이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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