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묵 김상곤의 한풍루에 가마를 짓다
진묵은 다완을 사랑한다.
다완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한국의 장인이 만든 찻그릇이며
그때 당시의 최고의 도공들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서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에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가끔 한국의 '찻사발인 다완'을
막사발로 부르는 경우가 있으나
그것은 한국의 문화와 예술의 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언변이다.
그때 당시에 서민들은
도자기 그릇으로 밥상을 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도자기는 흙으로 만든 기물을
800도 에서 불을 때야 하며
식혀서 꺼낸 후
귀한 유약을 발라서
다시 1200도에서 구워야 한다.
흙가마와 장작으로
그 온도까지 불을 때는 데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
가마의 크기와 수명을 따져 보았을 때
많은 도자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막' 사발이라는 것은
역사적 상식으로 해석해 봐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 찻사발인
'다완'이 조선과 고려에서
어떻게 쓰임을 받았는지
정확한 기록은 남겨져 있지 않다.
그때 당시에 일본의 최고 계층인
사무라이들과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다지기 위해서
정신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하고 있었으며
차를 마시면서 명상과 의지를 길렀다.
그에 따라 차도구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 장인이 만든 다구 중에
한국의 장인이 만든 것을
최고로 쳤다.
와비사비 정신에 걸맞은
고려의 '다완'은
자연스러움의 절정을 보여주었고
고려의 다완 한 점을 얻을 수 있다면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여기서 '고려'는 고려와 조선을 합친
표현입니다.
조선을 외국에서는 '고려'라고 불렀습니다."
현대에 와서
한국에서도 '고려의 찻사발'인
다완을 재현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많은 경험치를 쌓은
도예 작가들의
'마지막 도전'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진묵은 다양한 다완을
충실히 만들어 왔으며
현재 소장하고 있는 다완은 오천 점,
만든 것은 수만 점이 넘는다.
그중 '창작 다완'은 단 한 점뿐이니
다완의 재현은 그만의 규칙이
엄연히 존재한다.
진묵의 꿈은
한국의 전통 찻사발인
'다완의 재현'에 멈추지 않고
현시대를 빛낼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한풍루에 가마를 지었고
이번 11월 20일 전후로 해서
다시 불을 땐다.
그리고
한풍루는 그가 만든 그릇에
조용히 음식을 담는다.
읽어 주시는 당신이
문화와 예술을 완성 시키고 계신거지요.
고맙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한국의 전통의 맥을 잊도록 할게요.
음식 담는 한풍루
그릇 만드는 진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