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tific Management - F.W Taylor
피터 드러커를 좋아하지만 그 의견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의 책 속에서 어떤 우수한 사례의 칭찬을 보긴 쉬워서 특별하게 칭찬하는 책이 아주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영자의 역할', '경영의 미래'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과학적 관리의 원칙'이 그렇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현재 직무분석, 직무적합성, 직무 평가, 기업경영의 비전과 업철학을 통한 조직 alignment, 동기부여, 애자일 프로세스, 목표관리, KPI, OKR, 프로젝트 관리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테일러를 초시계를 들고 사람을 맛 보내는 사람이라는 혹평도 보인다. 100년 현대 사회에 지금 사용되는 원시적 접근법을 당시의 노동 형태와 고용형태에서 관찰하고 분석했다는 것은 유의미하다. 또한 그렇게 분석한 테일러도 인간의 가치기준이 경제학의 근간인 생산성과 항상 비례하지 않는다는 임계점도 잘 이해한 것 같다. 책의 시대는 육체노동 중심이라면 현재는 지식기반 노동이 압도한다. 어떻게 통찰된 본질을 변화된 세상에 적용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20세기에 해외 영업을 시작할 때를 회상하면 주당 근로시간이 70시간은 육박했던 것 같다. 토요일 반나절도 일을 했으니까? 21세기 초에도 한국 평균이 3천 시간이 육박하고 내 경우에는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직무 적합도는 전공과 직무가 일치하는 편이라 큰 부담은 없었다. 지금처럼 주 몇 시간을 지정하지 않아도 재미가 있었고, 내 직무를 넘어 개발, 품질, 제 조 등 회사 곳곳을 훑고 다니면 경험도 하고 일도 배우고, 그 현장들을 알아왔다. 당시 OECD국가에서 2천 시간 넘게 일하는 나라가 폴란드, 멕시코 정도였으나 한국의 60% 수준 아니었나? 책 속의 사례처럼 더 움직이고 물리적인 노동력이 들어가면 생산성이 증가했다. 야근, 특근 수당을 제대로 주지도 않고, 업무 출장에 들어가는 항공료, 체재비, 출장비도 하나의 혜택이라고 생각하던 시대다. 60시간 일을 하면 내 경험에 삶이 피폐해진다. 소득을 위해 삶의 중요한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선택이 요구될 수 있다. 소득이 필요한 시기 해볼 만하지만, 장기간 이런 생활은 가족과 삶에 트러블이 존재할 수 있고, 아니면 선승과 같은 수도승처럼 살아야 할 듯하다. 그러나 지위가 올라서 제조라인에 가면 테일러처럼 ST분석을 직접 해보고(내가 직접 조립하고 시간재고, 작업량과 내 작업량을 비교해 보고), 연구소에 순서도로 로직트리를 그려가서 끊임없는 질문을 하고, 하여튼 뭘 해도 호불호가 생긴다. 하루는 제조본부장이 쫓아와서 출입금지령을 내리겠다고! 제조, 연구소, 품질에서 문제 해결을 알아서 해주면 천사고, 마주 보고 회의하면 마귀가 따로 없다는 표정이 아니었나 한다.
그러나 산업은 고도화되고, 지식 기반 요구사항을 충족하지 못하면 생산성이 늘어나기 힘들다. 그렇다고 물리적 노동이 필요한 산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간격에 자동화라는 기계도입과 자동화를 위한 소프트웨어 시스템의 도전이 존재하는 시대다. 그럼에도 이 책 속에서 주장하는 접근법과 주의점은 고도화된 시대에 유용한 부분이 있다. 책을 읽는 내내 테일러가 노동자의 무지에 관한 과점은 동의하기 어렵다. 동시에 그들이 현장의 지식을 갖고 있다는 이중적인 접근은 그도 인간의 특수성을 하나로 규정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인간은 멀쩡하게 일을 안 하고, 미친 듯이 갑자기 큰 성과를 내기도 하는 존재니까.
대기업에서 근무할 때 좋은 대학과 학력을 갖은 사람들이 이 좋은 사무실에 앉아서 뭐 하는 병신짓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현장과 제품을 모르고 해외영업을 하는 고급인력, 뭘 대단한 걸 한다고 하는데 시장에서 철 지난 뚱딴지같은 제품을 만드는 개발, 이 와중에 비싼 돈 들여서 취지와 다른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전략컨설팅을 추진하는 전략과 마케팅, 검증된 고급 인력을 데려오면 매일 갈궈서 맛을 보내고 자리 유지하기 바쁜 기획, 지금은 개과천선한 부서가 되었지만 매일 하위 직원에게 틈나면 쌍욕하고 임원만 오면 정중하게 허리 굽고 손금이 없어지도록 비비는 부서장의 모습등 여기가 요지경이란 생각을 했었다. 직무분석은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하지만 현실은 하던 대로 몬도가네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책에서 말하는 접근법은 보편적으로 유효하다. 그러나 이때 책에서 말하는 조직의 수준은 조직의 구멍에 수렴한다는 동일한 나름의 통찰 왜 얻게 되는가? 분업구조에서 모든 부분이 합(合)해야 성과가 나오는데 가장 낮은 수준이 결국 기업의 품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필요하다.(해보면 원숭이 떼가 나온다) 둘째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믿는 시스템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일하다 틈틈이 관찰하다 보면 조직에서 뛰어난 놈과 세상이 뛰어나다고 할 놈이 묘하게 다를 때가 있다. 전자는 시스템의 범위에서 뛰어난 경우일 때가 많다. 즉 과거에는 너무 뛰어난 놈은 세상 피곤한 놈이고, 너무 덜 떨어지는 놈도 세상 피곤한 놈인 셈이다. 두부 썰듯 위아래를 쳐내면 일명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돌아간다. 거 친시대인 셈이다.
이런 환경이 바뀌었다. 그렇게 아등바등하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딱 먹기 좋게 털이 다 뽑히고 물이 끓어오르니 오늘내일하는 시대가 되었다. 네트워크, 정보화가 이런 기반을 만들고,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AUTONOMY와 백문이 불여일견(video)의 시대가 시작되면서부터다. 디테일과 섬세함의 시대가 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뛰어난 놈은 평범한 놈이 되고, 정말 검증된 뛰어난 사람들의 수요는 증가했는데 그렇게 가르쳐놓은 사람들, 자기 스스로 학습한 사람들은 당연히 부족하다. 대신 과거처럼 대충 다니던 놈들을 시스템이 가만두지 않는 시대가 되었고, 과거에도 현재에도 존재하는 단순 노동에는 사람이 없어서 수입을 하고 있다.
이런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책에서 말하는 과학적 관리란 프로젝트관리, 애자일 경영관리등 몇 가지만 찾아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단순하게 보면 가설, 측정, 검증을 계속하는 일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리당하는 역할의 익숙함을 스스로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에 있다. 시키는 것만 잘하면 칭찬을 하다가도 세상이 변하면 시키는 것만 한다고 지랄발광하는 게 사람이다.(2천 년 전에도 복숭아 갖고 이런 똑같은 사례가 존재함) 다들 높은 자리를 돈과 명예의 결과로 생각만 하지 않겠지만 지위가 높아진다는 것은 그 높은 관점에서 의사결정 할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진정한 실력이다. 선임, 과장까지 일 잘하다 파트장 팀장 시키면 정신을 못 차리고, 수석과 부장일 때 유능하다 임원 달면 사업을 말아먹는 게 결국 분석, 판단, 상상력, 지식, 경험의 축적해 온 범위와 의사결정력에 따라 좌지우지하는 경향이 많다. 운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모르면 판단하기 어렵다. 또한 성품의 올바름은 반드시 기본이 되어야 한다. 나쁜 놈이 좋은 머리 쓰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사기꾼만 상상해도.
현재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나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회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 세상에서 바라본 이 회사는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가? 나는 어떤 것을 해보고 싶은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내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나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등등... 수동적 세계에서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세계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과정을 걷다 보면 사람들의 뜻을 모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 비전을 세우고, 공동의 목표를 수립하고, 실행계획과 전략을 짜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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