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다아
잔뜩 차려진 술을 보면 마치 내가 술꾼 같다. 그러나 술을 자주 마시지 않는다. 한 달에 잘하면 1번, 그나마다 생맥주 한두 잔 또는 소주 한 병정도다. 집에서는 아예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술을 잘 못 마시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며 술은 언제나 즉당히 마셔야 할 뿐이란 생각이다.
술병 사이에 술에 관한 책들이 몇 권 있다. 싱글몰트 책을 어떤 놈이 갖고 튀었는지 알 수가 없다. 허허. 희한하게 가끔 술에 관한 책을 산다. 나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으나 끌리는 것을 굳이 마다하지도 않는다.
온라인 서점에서 본 위스키디아, 위키피디아처럼 마지 위스키 백과사전 같은 느낌의 책이다. 호기심이 부른 클릭에서 보니 위스키를 즐기기 시작하는 층에 대하 가이드 북이란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보고 나오려는데 '시음회'라는 문구가 보인다. 지금은 언감생심이지만 오래전 맥켈란 시음회를 해서 열일 제치고 간 적이 있다. 30년 산 맥켈란으로 하이볼을 만들어 준다는데 안 갈 수가 없지. 맛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맥켈란 사장이 15년이 맛은 가장 좋다고 했었다는데(고객의 전언) 이것으로 하이볼 한 잔을 마셨다. 시음회에서는 싱글몰트의 내력과 오크통, 숙성에 대해서 듣고 귀한 술을 한 잔씩 시음했던 것 같다. 요즘은 이런 일이 뜸한 게 그만큼 경기가 영 넉넉하지 못하다는 말인 것도 같다.
살아오며 다양한 술을 마셔본 것 같다. 국내 소주, 막걸리, 전통주부터 소주만큼 다양한 무색, 무향의 보드카, 70도가 넘는 변종 폴란드 보드카 실버비짜, 중국의 백주라 불리는 술, 이태리 그라빠, 중동의 증류수, 적도를 넘으면 하얀색이 노란색으로 변한다는 아퀴비트, 재스민 향이 나던 못 먹을 맛의 그리스 술, 체코의 베케로브카, 아직도 병이 가죽에 쌓여있는 무슨 맛인지 모르는 칠레산 술, 향이 기가 막혔던 멕시코 테킬라 그리고 많은 종류의 위스키들. 생각해 보니 다양하게도 먹어봤다. 사실 난 양보단 독주 몇 잔을 마시는 것을 선호한다. 싱글몰트, 보드카, 백주처럼 한 종류의 원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다양한 풍미와 향을 설명하지만, 이종 원액을 섞으면 맛이 달라진다. 특히 숙취나 두통이 더 심하다는 생각이 들고, 바닐라 향과 같은 달콤한 향이란 그저 많이 먹이기 위한 기술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블렌디드 위스키를 선호하진 않지만 국내산 윈저는 가성비로 보면 아주 괜찮은 술이란 생각을 한다. 그래도 입맛은 셰리오크, 싱글몰트가 아닐까? 아마도 새벽 미국 면제점의 할아버지가 맥켈란 30년까지 더블샷으로 3잔의 공복 시음을 베풀어 주셔서 일지 모르겠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면세점에서 과감하게 맥캘란 리저브 이스테이트 시음을 해주고 '네가 산거보다 마신 게 한 참 더 비싼 거 알지'하며 잔소리하던 아가씨도 생각이 나네.
책에서 소개된 몽키숄더의 스토리는 익히 들어봤고, 히비키는 병이 참 이쁘다는 생각을 했다. 면세점에서 90-100달러 정도였는데 독일 출장 중에 보니 팔레트에 잔뜩 쌓아두고 70불도 안 되는 가격에 덤핑 중이었다. 두바이에서는 더 저렴하게 팔아서 한 병을 샀었다. 그때 두병을 샀어야 하는데. 그게 단종될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최근의 변화라면 과거 한 10년 정도 selected oak라고 3가지 종류의 나무로 만든 오크통을 이용한 12년 산 싱글몰트가 아닐까 한다. 보급형으로 심지어 남아공에서 40불에 크리스마스 세일을 하던 맥켈란을 이젠 구경하기도 어렵다. 최근 나온 노란빛이 조금 있는 12년은 그때와 비교하면 왠지.. 아쉬움이. 그래도 책에서 소개된 라가블린, 부나하벤, 벤토막은 한 번 시음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위스키 바를 찾지는 않는다. 다만 영국 전시회 기간에 들러 본 바의 문구가 살면서 자주 기억난다. "Service depends on my mood and your attitude" 사장이 바텐더를 보는 딸을 위해서 써 놓은 듯한데 문구가 기가 막히지 않은가? 그런가 하면 홍대에서 우연히 들른 바텐더 아저씨. 기가 막히게 술의 이력과 향을 설명하는 아저씨를 보면 정말 한 잔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나게 한다. 그런데 이 분은 술을 안 마신다고 한다. 사기꾼 아니냐고 물어봤더니 막 웃으신다. 언제 시간 나면 한 번 다시 가보고 싶은 가게다.
세상에 술 종류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걸 다 마셔보겠다는 생각은 글쎄다. 책의 작은 제목처럼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것, 그 정도면 살아가면서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책 보다 시음회를 간다. 오랜만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어떤 삶의 이야기를 술 한잔과 희석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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