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9
벌써 9권이 지나가고 있다. 김진명의 고구려는 7권에서 정체 중이고, 담덕은 그래도 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작가의 노고에 고마울 따름이다. 두 가지 소설이 병행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 소설이 내게 즐거움을 주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세밀하게 자연을 표현하며, 그 안에 세상의 뜻을 심어놓는 글귀가 좋다. 은유적이기도 하고, 잘 다듬어진 글의 모습이 읽는 사람에게 생각하는 기회를 열어준다. 그런 표현이 1~9권까지 곳곳에 남아 있다. 마친 본 적 없는 자연을 상상하며 작가가 그리는 환경과 주인공의 상황도 생각해 보고, 내가 머무르는 곳의 상황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담덕은 이젠 나라의 기틀을 다지면 대국의 기반을 만드어 가는 과정이다. 가야국 근처에서 광개토대왕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왜구 소탕과 관련된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역사적 사건과 그 배경과 시간의 간격을 채워 넣는 작가의 상상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 로랜스, 사건이란 하나의 실들이 천조각과 같은 무늬를 만든다는 생각을 한다.
책에서 논어 학이편에 대한 해석은 흥미롭다. 담덕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다. 담덕이란 주인공을 빌어 말하는 작가의 웅장한 기상이고 생각한다. 물리적인 영토는 전쟁을 하지 않는 한 넓히기 쉽지 않다. 지금처럼 남북이 첨예하게 말싸움을 해대는 상황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문화, 예술, 경제, 교육등 각 분야의 강역도는 다르다. 우리가 경제 10대 대국이고(요즘 다 말아먹는 중이라 걱정이다), K-Pop, K-Culture는 영역을 크게 넓혔다. 문학은 노벨문학상을 받는 쾌거를 얻고, 교육은 글쎄다. 시험 보는 기계는 되었지만 창의적인 교육은 아직 멀었다. 과거 베끼고 따라 하는 모방을 통해 선두를 쫒던 교육이 선두권으로 오며 새로운 길을 여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교육은 우리도 생소하기 때문이다. 교류와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전반을 통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몇 가지 더 있다. 도래인이라 부르는 자들은 왜구와 다르다. 현재의 그 옛 도래인들은 왜구와 혼합되고 일본인이 되었을지 모른다. 가끔 이 왜놈이라 칭하는 것들이 한반도와 대륙에 대한 욕심은 수구초심일까? 그들의 근본에 대한 한일까? 그런 생각을 한다.
다른 한 가지는 외세에 대한 태도와 자세다. 역사를 통해 외세를 등에 업고 사달을 내는 종자들 대부분이 역적질에 가깝거나 사리사욕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내전과 같은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상식적으로 세상에 공자가 없고, 외세의 도움을 얻으면 그에 따른 가격이 붙기 마련이다. 지금 시대를 보는 색안경을 하나 더 껴보는 셈이다. 미국의 정책이라면 발바닥을 핥아서라도 해야 한다고 그 많은 자원과 돈을 퍼부었는데, 지금 꼬락서니를 보면 나라의 대들보를 뽑은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기업이야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국가가 그러한가? 코로나 때 수출제약등으로 도발하던 왜구에 대해서도 조강지처 버리고 눈깔 뒤집힌 바람난 놈도 아니고 설레발을 치더니 흥이 떨어졌나 요즘은 잠잠하다. 외세를 등에 업고 대방을 치던 왜구들의 태반이 수몰되었다. 지금은 다를까? 살면서 미래에 대한 장담이란 것이 우습지만 집에 돌아가기 힘든 종자들이 많이 나오는 시대가 아닐까? 책은 재미있으나 세상을 보면 마음이 또 한편 무거운 이유다.
한 가지 책에서 "총칼"이라는 단어가 한 번 사용되는데, 총은 빼야 하지 않을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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