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레고를 모으기 위해서 중고품을 팔고 사던 일을 해보긴 했다. 하지만 주업이 팔고 사는 일이다 보니 일상에서는 이런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적다.
사무실 구석에 있던 가방들을 바라보면 내가 사회에 나와서 함께 한 시간들을 되짚어 보게 된다. 올해 들고 다니는 가방을 하나 샀다. 있던 가방이 낡고 헤어져서라기 보단 무겁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팩도 하나 샀다. 한 가지 이유는 무겁기 때문이고, 다른 이유는 17" 노트북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있던 가방들이 벌써 한 녀석은 중학교 갈 나이고, 다른 녀석은 초등학교를 한참 재미있게 다닐 나이다. 그러고 보니 가방이 많기도 하네.. 비싼 것도 있고, 에코백도 있고, 다양하다. 가방 부심이 있나 보다. 여자의 가방은 여자의 마음을 담고, 나는 지나간 시간을 담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들고 다니는 일명 토트백은 면세점에서 샀다. 막 들고 다니던 샤오미 백팩은 교체하고 버렸다. 사실 브랜드보단 가방은 모양이 맘에 쏙 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엔 노트북이 들어가냐 안 들어가냐가 결정적 요인이다. 두 번째는 무겁냐 가볍냐의 문제다. 3년 전쯤 예쁜 가방이 딱 맘에 드는 알 수 없는 브랜드 가방을 본 적이 있긴 한데 품절이라 살 수가 없었다. 보일 때 사야 한다니까.
새로 산 백팩은 17인치 노트북이 들어가는 점이 좋다. 기존에 들고 다니는 대형 백팩은 방탄이고 나발이고 이젠 무겁다. 방탄 소재를 사용했다는 것이지 아무리 봐도 방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래도 중학교 갈 나이동안 나랑 읍내부터 세계 곳곳에 다녔으니 누굴 주기도 그렇다. 그냥 친구처럼 사무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누굴 만나러 갈 때가 아니면 항상 들고 다니던 보따리다. 급하면 노트북도 대충 넣고, 아무거나 막 담기도 편하다. 둘러메고 다닌 지가 벌써 꽤 오래됐다. 이 녀석이랑 같이 한 시간에 인생에서 경험하기 힘든 일을 많이 만나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애도 학교갈 나이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잘 마무리하고 잘 지내고 있으니 이 녀석 덕을 좀 본 셈인가? 가방도 새로 사고 정리하며 버릴까 하다 당근을 해 보기로 했다. 낡았다기 보단 사용감 있는 빈티지 가방이라고 했더니 연락이 몇 군데 왔다. 자기 편한 시간을 떠드는 아주머니 같은 분은 일단 냅두기로 했다. 우리 주인님도 이젠 잔소릴 잘 안하는데 변덕스럽게 뭘 자꾸 귀찮게 하신다. 왠지 글이 차분해 보이는 청춘 같아 보이는 사람이 괜찮아 보인다. 이왕이면 답장도 또박또박 쓰는 사람을 골라서 약속을 정했다.
늦은 시간에 찾아와 가방을 전해주었는데, 고맙다면 와플을 사 와서 맛있게 먹었다. 조금 있다가 다시 연락이 왔다. 가방에 USB랑 뭐가 있다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준다. 손 많이 가는 아저씨가 그렇지.. 미안하지만 내일 한 번 더 보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동의해 준다. '말이 마음의 소리고, 글이 마음의 그림'이라던 며칠 전 책 구절이 생각난다.
어제 와플씩이나 얻어먹었으니, '2딸라는 행운을, 1딸라는 지갑에 넣어두면 돈 떨어질 일이 없음으로'라고 써서 선물을 주기로 마음 먹었다. 듬직한 청춘이던데 이렇게라도 고맙다고 하고 응원해 보기로.
#당근 #감사 #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