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부도 가끔 생각을 한다
서산 넘어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내가 볼 수 있는 시계에서 서산은 없다. 도시 상공을 크게 넘어가는 둥그스름한 해님이 구름에 가려 넘어가는 광경은 언제 봐도 시선을 멈추게 된다. 기분이 좋으면 아름답게 보이고, 기분이 다운되면 재가 넘어가는구나, 집에 가는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이런 광경이 나오면 저녁 맘마를 먹을 때던가 집으로 발걸음을 떼려 준비하는 시간에 가깝다. 노을도 없어 휘황 찬란하게 퇴근하는 해님 사진을 찍었는데 유리창 먼지에 초점이 맞았는지 해님은 디포커싱이 되었다. 사진을 지우려다 보니 이게 요즘 내게 보이는 시계(視界)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난시 때문에 더욱 뵈는 게 없기도 하고.
세상을 살며 사람들의 다양한 재주는 참 신기한 일이다. 타고난 것, 노력한 것 등 그것이 재능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다. 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말은 쉽지만 사실 나도 내가 뭘 잘하는지 잘 모른다. 천상 하는 짓이 잡부라는 생각이 많다.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없고,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누군 어렵다고 하는데 너무 쉽게 돼서 이게 내 재능인가라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 남들은 다 잘되는데 전혀 안 되는 일이 난무한다. 어제도 주식이 폭락하던데 실현수익이 나쁘지 않다. 남들 다 오를 땐 나락에서 맛이 가기도 한다.
하고 있는 일도 그렇다. 하던 분야는 내란 이후 국내 실물경제 상태가 좋지 않으니 상반기 악화일로에서 조금씩 개선이 되고 있다. 나라 꼬락서니가 몇 년간 올바른 목표하에 체계적인 계획과 실행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시험 보고 똑똑한 제갈량들을 만 명 뽑아 바보 만드는 것도 신박한 재주란 생각을 한다. 이럴 땐 '아이고.. 이건 아니지'라는 바보가 더 현명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헤쳐먹는 잡것들이 나오면 이 잡것들보다 훨씬 더 부지런해야 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준 사례다.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렇게 부지런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해보면 안다.
새롭게 추가한 일은 의외로 이런 시절인데 잘 굴러간다. 여기도 각국의 요란함이 위험하고 익사이팅한 스릴을 매일 추가 중이다. 그럼에도 뭐가 굴러가니 희한한 일이다. 전체적인 요구사항과 요점을 정리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 파악하기 쉽다. 그리고 파악된 것 중에 할 수 있는 것, 준비해서 할 수 있는 것, 당분간 하기 어려운 것, 그럼에도 나중에라도 하고 싶은 것을 이해하는 것은 쉽다. 새로운 분야이기에 스스로 의문과 조심성이 따른다. 그 과정에서 내가 뭘 잘하는지 알 수가 없고 이유가 이해가 잘 안 되니 이게 거시기하다. 알 수 없지만 효과가 있다는 것이 좀 신기하다. 이런 게 운빨인가? 잡부 인생에 이런 게 있을 리 없는데.
이 두 가지를 섞으면 난해한 일과 그럭저럭 괜찮은 일이 번갈아 가면서 나한테 굴러온다는 사실은 좀 명확한 것 같다. 좋은 일이 있으면 이젠 무슨 또 사건사고가 있을까 생각하고, 나쁜 일이 있으면 언제 다시 좋은 일이 생길까 생각하는 버릇이 더 심해지고 있다. 시계가 불안정해지고 안갯속인 이유는, 해님과 바람이 연속콤보로 쉬지 않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아주 규칙적이지 규칙적. 살면서 작작 좀 하라는 소리가 생긴 이유를 아주 잘 깨닫게 된다. 변명이 되지 못하는 것은 내가 거기에 침을 바르던, 불을 지르던, 돌을 던지던 하여튼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러니 잡부도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가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 회사를 만들고 일을 만들면 돈을 벌겠다는 욕심들이 많아 보인다. 사실 이런 욕심은 없다. 일해서 번 것으로 저축을 하고, 투자인지 투기인지 도박인지도 하지만 금액적으로 어떤 회사를 지향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잡부적 관점에서 이렇게 사업을 만들고, 향후 이런 시장 세그먼트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은 많이 한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것은 과감하게 결정을 하고, 필요한 것은 how to do(이게 전략 아님?)에 대한 생각을 올바른 방식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것이 욕심이 많은 것인가? 다른 사람 얼굴에 박힌 눈으로 볼 땐 또 다르겠지. 그걸 내가 다 알 수도 없다.
내년엔 2년간 새롭게 만들어 온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다. 고객들도 늘어나고, 확정된 수주, 신규 수주, 신규고객을 통해서 괜찮을 것 같다. 이게 또 쉬울 리 없고 요란하리라 생각한다. 하던 분야는 꾸준한 분야라 작년은 대박, 올해는 너덜너덜하다 4분기에 조금씩 회복 중이다. 내년은 기저효과 같은 말이 취향에 전혀 안 맞지만 밀린 것들을 시장도 정리해야 하니 수요가 나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이 많아져 이 부분을 적임자에게 맡기고 2년간 개척한 분야에 집중을 해 보려는 중이다. 손오공 깃털이나 홍길동 분신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잡부한테는 일이 가리지 않고 오고.
꽃 꼽은 자처럼 날뛰는 환율, 조금씩 누적되는 국내 인플레이션 압박이 조금 우려된다. 오늘 편하게 살자고 방치할 때인지, 현명한 부양책도 부양책이지만 너무 많이 풀어놓은 돈을 태워야 하는 게 아닌지 그렇다. 다들 고통을 두려워하고 타협하다 보면 버블이 터지기 때문이다. 혼란한 시기라고 생각하고 이럴 땐 작은 불장난이 지옥행 익스프레스를 끌고 온다. 동시에 혼란한 시기는 기회의 전조가 존재한다. 시계(視界)는 오락락인데, 아무 생각 없이 걱정이 적다면 적으니 잡부가 체질인 듯. 아참! 이걸 또 해야 하는구나.
#천상잡부 #요즘 #근황 #알수없음 #오락가락 #아리까리 #Kho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