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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May 28. 2023

나의 구원자는 신이 아니다.


내 꿈속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만약 실제로 지척에 나타난다면 얼른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개구리, 뱀 같은 파충류, 양서류들이 꾀 나오는 편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오히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다가 하늘나라에 간 우리 강아지들이 나온다면 고개라도 끄덕일 텐데, 실제 어렸을 적 본 경험도 별로 없고 내 직업적 특성이나 주변도 흔하지 않은 그들의 등장은 조금은 생뚱맞다.


나에게 개구리, 뱀과 같은 동물은 절대 불호인 까닭에 꿈속에서 나는 참으로 '살생'을 많이 한다. 누군가 내 손바닥에 놓아준 개구리를 손으로 움켜쥐어 죽이거나, 주변에 어슬렁 거리는 뱀이 무섭지도 않은지 발로 밟아 죽이거나 손으로 눌러 죽이고야 만다. 꿈속에서 그들은 나에게 적이자 무찔러야 하는 대상 이상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꿈에서 깨고 나면 기분이 조금 찝찝하다. 그것들도 살아있는 생명이라 내가 죽였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는 건지... 흉몽으로 풀이되는 꿈해석 때문인 건지. 특히 중요한 일을 앞두고 그런 꿈을 꾸면 더욱 불안해진다. 혹시 나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하고..


우연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두 번 연속, 실제로 내게 불운한 일들이 생겼다. 원래는 꿈이라는 걸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두 번의 큰 사건을 겪고 보니 앞으로 동물을 죽이는 꿈이 내게 또 다른 PTSD가 될까 봐 조금 걱정이 된다.

성실한 불자인 엄마에게 이런 꿈에 관한 이야기를 넌지시 해보았다. 아는 스님께 여쭤보니 내가 '업보'가 많아서 그렇단다.... 도대체 전생에 내가 살면서 지은 '업'이 무엇이길래 꿈속에서 그리 많은 생명을 살생하고 있는 것인지....

다음 생 같은 건 없다고 내가 가야 할 최종 희망의 목적지는 천국이라 믿고 있는 천주교인인 내가 불교의 업보를 해결하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꿈속에서 그런 일을 행할 때마다 '관세음보살'을 읊으라는 우리 엄마의 말에 웃음이 났다. 일이 잘 안 풀리고, 되는 일이 없을 때마다 나는 전생의 내 업보 때문이라고 수긍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주말에 본가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는 엄마의 농사일을 거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농부가 논밭에 씨를 뿌리면 뿌려지는 씨앗의 일부는

토양이 고르고  바른 양지에,

때로는 돌 틈 옆에,

일부는 물을 주기 어렵고, 볕도 잘 들지 않는 가장자리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이어나가게 된다.

생존에 있어 모든 씨앗들의 환경은 어쩌면 농부의 손에 의해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

굳이 큰 노력 없이도 때가 되면 보살핌을 잘 받으며 병충해 없이 잘 자라 곡식을 여물 것들도 있겠지만, 항상 물이 부족하고, 누군가의 발에 밟힐까 안간힘을 쓰며 살아남아야 하는 아웃사이더들도 있겠지.


신은 나를 어떤 토양에, 어떤 위치에 나를 심어놓은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비옥한 곳의 기름진 땅은 아닌 것 같다.

자기 연민이라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소녀가장처럼 20년을 우리 집의 경제적 버팀목으로 지내왔고, 부모의 노후도 내 손으로 책임져야 하는 명백한 흙수저라는 이름표는 그리 자랑할만한 조건은 아니지 않은가?

어린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눈칫밥을 먹어가며, 상황판단은 귀신같이 하고, 처세에 능숙하나 주변 환경의 천박함을 드러내기 싫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며 어떻게든 개인적 명예라는 자존심 하나 지키려고 안간힘 써왔다.


치열함을 무장한 생명만이 결실을 맺을 그 황량한 곳에서

나는 나의 생존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인가?


매일을 감사하라고 한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가족과, 친구들에게.

남들과 비교하여 훨씬 더 많은 걸음을 걸어야, 더 멀리까지 나아가야 어깨를 맞출 수 있는 몹시 지친 이들에게

'감사'를 내미는 건 너무 야속한 거 아닌가?

나의 '업보'에 '감사'하고 이를 받아들여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대답은 누가 할 수 있는 건가?

내 마음의 벽은 점점 굳어지고, 단단해지는 모양새인데, 나는 어떤 생각과 의지로 앞길을 내딛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한 가지.

현실은 여기저기 너저분한 난장이어도

끝까지 마음만은 고귀하고 싶다.

내가 理想하던 그 세계 속의 온전한 나로

존중하며 끝까지 가보고 싶다.

때로는 나의 자존을 무너뜨리는 貧과 타협할 일이 있을지라도  

비록 내 주제가 하염없이 저 밑바닥일지라도

그동안 끊임없이 움직였던 그 몸부림으로

앞으로도 살아가자고.

이게 정답일지는 모르겠으나

우연히 내 방 한구석에 한 푼 두 푼 모아놓은 동전 꾸러미를 보다가

'어느덧 수북이 쌓인 저 동전같이.. 그렇게 꾸준히 지내보자'

내 삶의 구원은 끊임없는 내 발자국일 거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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