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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병진 Nov 04. 2024

좋아하는 일, 해야하는 일

잘하고 있는 건지 여전히 의문 가득한 40대 입문자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안다는 건 참 중요합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이 40을 목전에 둔 시점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탐구는 여전합니다. 창밖으로 육중한 나무들이 떨어낸 가을 낙엽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지난 10년 간을 톺아보았습니다. 더 내밀히는 제가 해온 것들 저변에 깔린 원초적 동인이 무엇인지를 지켜보았습니다.


30대의 저는 좋든 싫든 그 일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 살았습니다. 어쩌면 그 일들 외에 다른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거나 엄두가 안 났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당면한 일에 우선 착수한 뒤, 부분부분 좋은 점을 찾아 위안 삼는 순간이 잦았습니다.


10대를 지나 20대까지 견지해왔던 '좋아하는 것'이란 남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이었습니다. 주목입니다. 연극영화과에 낙방한 후 언론학과에 진학한 것도, 대학로 극단에 무작정 오디션을 쳐 창작극의 주조연을 맡아 연기를 펼쳤던 것도, 아나운서가 되어 수천 명의 관객들 앞에 서 사회를 본 경험들도, 전국의 시청자들 앞에 앉아 엄숙하게 뉴스를 전달했던 순간들도 그 원초적 욕구는 남들의 주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정 욕구'였습니다. 무대 그 자체가 좋았던 건 방송국에서의 경험 뿐이었습니다.


독일에 와서도 여전히 해야하는 일을 합니다. B2B 비즈니스입니다. 기업 마켓 리서치용 DB의 SaaS 라이선스를 기업에 매칭합니다. 컨설턴트이자 영업인입니다. 현재 제 위안은 '성장'입니다. 기업 간 비즈니스를 성사시키기 위해 배워야 할 게 많은데요. 하나하나 제것으로 만들고 가시적 성과가 나오면 스스로 성장 중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저를 믿어주고, 저의 성장과 실험을 지지하는 조직 리더십 역시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좋은 점입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은 허- 합니다. 해야 할 일에서 좋은 점을 부분부분 찾는 일 말고,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이렇다' 할 일을 하고 있진 않기 때문입니다. 독일에 올 때의 막연한 로망은 글쓰기였습니다. 여유 있게 그간 내 속에 접어두었던 이야기들을 꼬깃꼬깃 펼쳐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입니다. 틈 날 때마다 브런치나 얼룩소 같은 플랫폼에 글을 올려 타인과 교감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낚시를 다니고 싶습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입질을 기다리는 그 한적함을 그리워 합니다. 어릴적 아버지와, 이모부와 함께 낚시 다니며 느꼈던 '우우둑' 전해지는 손맛이 그립습니다. 독일에서는 낚시를 하려면 자격증을 따야 합니다. '아, 그렇구나'까지만 생각하곤 낚싯대 구매 비용, 시험 준비 시간에 생각이 미치자 더 이상 실행까지 이어지진 않습니다.


홀가분하게 여행을 다니는 로망도 버킷리스트입니다. 요즘 유튜브 채널 '육식맨'을 애청합니다. 어쩌면 제가 정말 꿈꾸던 삶이 육식맨 님 라이프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찾아 여행을 다니고, 왜 이 음식이 맛있는지 정연하게 전해주는 삶입니다. 종종 연구한 음식을 집에서 직접 조리하며 먹방 유튜버로서의 정체성도 견지합니다. 음식 먹길 좋아하는 저로선 육식맨의 삶이야말로 평생 그리던 이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건물주도 되고 싶습니다. 10년 방송국 생활하고, 그 밑천을 다 쏟아부어 독일 정착에 사용했습니다. 제로베이스입니다. 작은 평수의 임대용 원룸을 사 단기 임대용으로 사용하는 안, 낡은 집을 매매해 평생 수리하며 살아가는 안 등 다양한 부동산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중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 경매 열심히 해둘 걸, 코인세탁방 아무도 안 할 때였는데 그 때 할 걸, 전세계 뉴스 매거진이 한 곳에 모인 영국 스타일 뉴스 콘셉트 책방을 시작해볼 걸, 땅을 사둘 걸, 아내 친구가 이더리움 채굴하자 할 때 500만원이라도 투자해볼 걸, 이렇게 자꾸 걸걸대며 결혼 생활 13년을 지나왔습니다. 이젠 후회하기 싫습니다. 실천이 답이란 건 자명합니다.


낙엽 한 무더기가 후드득 떨어집니다. 저 누우런 빛깔이 꼭 신사임당 5만 원권 같습니다. 제 자신을 피식 비웃게 됩니다. 40대에는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제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살 수 있을까요? 원래 이게 이렇게 힘든 걸까요? 포기않고 노력하면, 진득하게 바라보면 언젠가는 다다를까요?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나이 40을 목전에 둔 지금도 제 삶은 여전히 의문 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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