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D를 단순 극우로 보면 안 되는 이유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최근 행보를 보며 저 사람이 왜 저럴까 생각해봅니다. 머스크는 독일의 네오나치당 AfD를 공개 지지했습니다. 내달 조기 총선을 앞두고 AfD 지지자 모임에 영상으로 참석해 “자부심을 가져라” 역설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축하 연설 중에는 나치 특유의 팔뚝 경례 제스처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저러는 의도를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머스크는 유럽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는 AfD 지지연설에서 “EU 관료주의가 너무 심하고 글로벌 엘리트들이 너무 많이 통제한다”고 성토했습니다. 저는 이 말에 그가 요즘 독일 네오나치당을 밀어주는 의도가 담겼다고 봅니다. 여러 규제로 인해 ‘비즈니스 하기 어렵다’는 게 핵심입니다. 해서 AfD 국회의원들이 원내에 다수 입성해 독일 국정을 바꿔주거나, 유럽의회에 AfD 의원들이 대거 입성해 EU의 정책 기조를 미국의 입맛에 맞게 바꿔주도록 포석을 놓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는 머스크가 너무 남 일이라고 쉽수이 말을 내뱉는다고 생각합니다. 본인도 이민 배경을 갖고 있으면서, 독일 땅의 온 이민자를 재이민, 즉 내쫓아야 한다는 입장의 AfD를 띄워주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것도 자기 이익을 위해 말입니다.
1년 전 독일 탐사전문 매체 코랙티브 보도로 독일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습니다. 각계각층 극우 인사들이 비밀리 회동해 ‘마스터플랜’을 구상했던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그들이 도모한 마스터플랜은 순수 독일인 아니라면 모두 독일 밖으로 재이주시키는 구상입니다. 영주권자, 아니 시민권자도 예외 없이 피부색이 다르거나, 독일 문화에 충분히 동화되지 않은 사람은 쫓아내겠다는 계획을 세운 겁니다. 이 자리에는 AfD 당대표이자 총리 후보 알리스 바이델의 고문이 참석했습니다. 전•현직 하원의원까지 가담했습니다. 참가자 대부분 AfD 소속이었고, IB라는 정체성 운동 활동가들로 구성됐습니다. AfD는 여기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없었습니다. 소속 의원이 이 모임에 가담했던 기민당(CDU)은 AfD와 선을 그으며 총선 후 연정 국면에서 AfD와 손잡는 일은 없을 거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독일 언론, 정치계에서는 AfD를 ‘네오나치’라고 공식적으로 호명합니다. 극우를 넘어선 비인간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유태인 학살이라는 끔찍한 짓을 저지른 나치의 궤논리는 특정 그룹을 타자화, 악마화하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니편 내편을 가르고 적의 좌표를 권력자가 찍으면 그게 파시즘이잖아요. 사람 삶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흑백 일변도로 치닫는 무서운 폭력 이데올로기입니다. 당해본 사람만 오롯이 그 공포를 알겠죠. 저는 독일에 있었음에도 한국에 뜬금포 계엄이 떨어졌을 때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제 동료가 마침 계엄 다음날 용산에서 고객사 미팅이 잡혀 있었는데요. 길거리에 얼씬도 하지 마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이민자•난민을 싸잡아 타자화시키는 AfD의 정체성은 사람들의 잔인함을 자극해 비극을 초래할 가능성 높은 나치 그 자체입니다.
AfD 지지율이 높은 건 전•현 집권 세력의 정책 실패 때문인데, 특히 난민 통합 정책이 방치된 탓이 큽니다. 매주 지지정당을 설문하는 Sonntagsfrage(infratest dimap) 추이를 보면 2013년 이전에는 AfD는 아예 설문 항목에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다 2016년 5월, 2018년 9월에 지지율이 팍 튀는데요. 2016년 1월에 쾰른에서 1천여명의 중동, 북아프리카 출신 난민 신청자들이 행인 특히 여성을 표적 삼아 성폭행, 강도, 절도 행각을 벌였습니다. 독일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줬습니다. 2018년 8월엔 시리아, 이라크 출신 남성들이 독일인 다니엘 힐리히 씨를 살해했습니다. 인도주의적 메르켈표 난민 정책은 그렇게 방치됐고, 정권을 교체한 SPD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그저 미소만 띠며 다닐 뿐 난민 정책을 방관했습니다. 이에 오랜 불만을 품은 유권자들이 AfD 지지로 화풀이 중이라는 게 독일 정계의 중론입니다.
이 문제는 독일 내에서 정치권이 시민사회와 함께 풀어가야 할 중대과업입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머스크가 나타나 AfD를 선전하고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건 전혀 새로운 문제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의 목적은 ‘여럿의 화합’입니다. 서로 싸우지 말고, 죽이지 말고 함께 화합해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입니다. AfD는 그런 측면에서 위헌정당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는 집단입니다. 네오나치라는 수식어로 철저히 경계받아 마땅한 존재이죠. 이들을 선동하는 건 최근 서부지법 건물을 테러하도록 부추기는 짓과 매한가지입니다. 독일과 EU 국가들이 머스크에 강하게 반발하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에는 입체적 인물 하나가 등장합니다. 항문외과 과장입니다. 차기 기조실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조직 내 권력에 줄 서는 캐릭터인데요. 그는 사람 목숨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주인공 백강혁 교수가 병원 적자의 장본인이라며 몰아세웁니다. 급기야 교수들이 한 데 모인 자리에서 백 교수의 과거를 악의적으로 공개하려던 찰나, 그만 넋이 나갑니다. 자기 딸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응급실로 실려온 겁니다.
약간 스포이긴 한데요. 결국 백강혁 교수가 이 응급환자를 기적적으로 살려냅니다. 항문외과 과장은 의사 본연의 존재 이유를 자각하며 각성합니다. 그 똥고집 권력 바라기가 다시금 환자를 살리는 일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자신을 깨우쳐준 백강혁 교수에게 충성하는 인물로 변모합니다.
자본 논리에 앞서 사람을 바라보게 만드는 전환점은 결국 남 일이 내 일 됐을 때입니다. 당사자가 되면 남 일이라고 쉽수이 떠들던 날카로운 말들이 자기 가슴을 찌르는 예리한 송곳이었구나, 절절하게 자각하게 됩니다. 그 자각조차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는 분명 알코올성 치매 환자이거나 망상에 사로잡힌 상태일테지요. 머스크는 어떤 상태일까요. 규제 일변도의 EU를 뒤흔들어 이익을 챙기려는, 공권력을 등에 업은 기업가일 뿐일까요, 아니면 망상가일까요. 자기 자녀가 피해를 입어야 눈 하나 깜짝할까요. 평소 그의 미래적 공상에 탄복했던 저로선 망연할 따름입니다. 무엇보다 한국 등 타국에서 AfD를 그저 우파 정당 중 하나로만 인식하는 건 위험하다는 점을 짚고 싶습니다.
홀로코스트 때 학살당한 유태인이 600만 명입니다. 부산 인구 2배 가까운 수준입니다. 전체 희생자는 1100만명으로 집계됩니다. 1차 대전 때 유럽에서 사망한 사람은 1600만 명, 2차 대전 때는 유럽에서만 4700~5300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한민국 인구 전체에 가까운 규모죠. 파시즘, 즉 우리편과 적 딱 두 부류만으로 구분해 상대를 극단으로 몰고가려는 폭력성을 억제하기 위한 방편을 우리 사회도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