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소통
나는 내가 아니다.
- 후안 라몬 히메네스 -
나는 내가 아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내 곁에서 걷고 있는 자,
이따금 내가 만나지만
대부분을 잊고 지내는 자,
내가 말할 때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는 자,
내가 미워할 때 용서하는 자,
가끔은 내가 없는 곳으로 산책을 가는 자,
내가 죽었을 때 내 곁에 서 있는 자,
그자가 바로 나이다.
나(자아)는 하나가 아니다.
기억자아와 경험자아, 배경자아가 있다.
경험자아는 어떤 일을 통해 다양한 즐거움과 행복, 아픔과 고통을 경험하는 자아이다.
기억자아는 일상에서 ‘나’라고 불리우는 자아이다.
기억은 취사선택되기도 하고 스스로에 의해 왜곡되기도 하는데
자신의 경험을 스토리텔링하여 기억하는 자아이다.
배경자아는 기억자아나 경험자아를 알아차리는 존재로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모든 행위를 관조하는 자아이다.
경험자아가 어떤 것을 경험해서 힘들거나 행복할 때
‘내가 지금 힘들어하는구나, 행복하구나’를 알아차리는 자아이다.
일상의 경험들이 생각과 감정이 되고(경험자아),
이러한 생각과 감정이 스토리텔링이 되어 자신의 기억자아가 된다.
이를 한 단계 위에서 알아차리는 것이 배경자아이다.
대상과 경험에 함몰되어 휩쓸리는 자아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나 자신의 존재를 오롯이 알아차리는 자아로
진정한 자유와 평안함 그 자체가 바로 배경자아이다.
평온함을 경험하는 것은 경험 자아가 하는 일이고, 배경자아는 평온함을 경험하거나 느낀다기 보다는 평온함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내면소통(내가 나와 하는 소통)의 내용과 작동방식을 알아차리는 것이 배경자아이다.
결국 내면소통은 배경자아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사물이 있어야 그 사물이 가리고 있는 공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소음이 있어야 그 소음이 가리고 있는 고요함을 알아차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생각과 감정이 있어야 그 생각과 감정이 가리고 있는 배경자아를 알아차릴 수 있다.
복잡한 생각과 격렬한 감정은 고요함과 텅 비어 있음의 순수한 배경자아로 안내하는 길잡이다.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영성이나 무한한 신의 존재와 탁월성과 그 본성을 깨닫는 것.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하나님과 일체(unity)를 이루고 있음을,
나의 삶은 이미 주님의 은총으로 가득차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은 미묘하고도 섬세한 고요함(delicate sound of silence)으로 존재하신다.
우리의 배경자아 역시 늘 고요하고 텅 비어 있다.
마음근력을 키우는 것(명상) 은 늘 거기 그렇게 고요함으로
존재하는 배경자아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나의 고요함은 늘 거기 그대로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해내는 것이 명상이다.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온전하게 존재하는 상태로
조작이나 애씀이 없고, 의미부여나 판단이나 분별, 에너지 소모도 없는 온전한 쉼,
존재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내 삶이 놓여진 상황은 조건(life situation)이지 삶 자체(life itself)가 아니고
문제가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려야 한다.
우리의 삶은 훨씬 더 귀하고 소중하고 행복하다.
- 김주환 교수님의 “내면소통”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