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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milk Oct 23. 2018

서울토박이의 3년째 목포 여행

남의 일상이 내겐 새로움과 행복이 될 때


나와 목포의 인연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7년간의 미국 유학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이 직장 저 직장 다니다 2015년 5월, 불현듯 일을 그만두고 스페인으로 1주일 퇴사여행을 갔다.


당시 '꽃보다 할배' 스페인 편을 본 것도 있었지만, 어쩐지 이해할 수 없는 언어가 들리는 곳으로 가서 '아이돈케어리즘'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래서 스페인을 골랐다.


일정은 특별하지 않았다. 마드리드-세비야-그라나다-바르셀로나를 4박 5일간 기차로 여행하기.


예뻤던 바르셀로나 20150530


본래 해외여행을 할 때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정보도 얻을 수 있고 한번씩은 밥이 그립기 때문에 3일째 그라나다에서 예약한 게하에 머물 때였다. 거기서 '인간은 무에서 왔다 무로 간다' 마인드로 가벼운 짐과 마음으로 온 나와는 달리, 진짜 큰 트렁크에 바리바리 짐을 싸서 유럽과 미국, 남미까지 한 달 이상을 여행중인 '트루 백팩커' 언니를 만났다. 부럽기도 했고, 힘들겠다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얼마나 한식이 고플지 싶었기에, 싸갔던 작은 컵라면 하나를 건네며 무사발랄한 남은 여행을 기원했다. "한국 가서 연락해. 목포 한번 와." 으레 건네려니 했던 말을 나는 진심으로 새겨듣고 몇달 뒤 목포로 내려갔다. 스페인에서 만난 그 언니 하나 믿고. 나도 참 그렇다.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해외여행 경력이 화려한 나일지라도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늘 불안한 설렘을 준다. 어떤 곳일지 모르기 때문에 무엇을 준비해야 갈 지도 잘 알수 없다. 그냥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거기엔 뭐가 있을까, 거긴 어떨까. 나는 돌아올 수 있을까...


생전 처음 가본 목포에서 바라본 남해


막상 내려가 본 목포의 첫인상은 특별하진 않았다. 단지 목포 토박이 언니가 있어 이곳 저곳 재밌게 놀러다니고, 잘 얻어먹고 잘 쉬고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처음 목포를 갔던 3년 전엔 동네 명소라는 유달산 (229.5m)를 올랐다가 때아니게 하필 그날 닥친 폭염경보에 돌아와 3일을 누워있어야 하기도 했다. 2년 전엔 처참한 모습으로 인양된 세월호도 보러 갔었고, 작년엔 뒤늦은 여름휴가로 해외 대신 목포를 선택했다. 목포는 별 건 없지만 계속 가고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일단 사람이 적고, 음식이 맛있고, 바다가 가까운 세 가지 만으로도 좋다. 무엇보다 'WHAT' 때문에 좋기 보단 'WITH WHO' 때문에 좋은 게 크다는 진리를 매번 느끼는 곳.


허벌~~~라게 맛있는 음식은 덤... :P


그래도 결정적으로 목포가 나에게 매력을 뽐낸 하나의 포인트만 꼽자면 목욕탕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셨고, 나는 크면서 대중목욕탕에 가본 일이 없었다. 다같이 뜨거운 탕에 들어가 때를 뿔리고 냉탕에서 어푸어푸 수영을 하는 경험을 서른이 넘어 제대로 해봤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지만, 대야에 가득 만든 아메리카노를 국자로 떠서 왕얼음을 동동 띄운 삼다수 페트병에 담아 마신다거나, 사우나 안에서 수박과 떡과 온갖 음식을 나누는 경험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이런 것도 안해보고 나는 뭐하고 살았던가. 진짜 세상은 저 바깥에 있다지만 나에겐 목욕탕이 새로운 세상이었다. 동네 어르신들의 삶의 지혜와 이웃집의 시시콜콜한 사정, 주부님들의 애환, 남편 뒷담화와 자식자랑이 진한 우정 사이에서만 오고가는 거침없는 언어 사이에서 물 틀어놓은 수도꼭지처럼 콸콸콸 흐르고 있었다. "아따 서울에서 온 아야, 얼릉 먹으랑께." 예예, 나는 그냥 그 넘치는 인심과 푸근한 풍경 안에서 잘 먹고 잘 웃으면 된다. 스페인 퇴사여행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속 '아이돈케어리즘' 이었다면, 목포 휴가는 태어나 처음 가본 곳인데도 희한하게 찰떡처럼 흡수되는 '토착미니즘'을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목욕탕에서 느끼는 편안함을 사찰을 방문했을때의 느낌으로 대신한다.


지난 3년 간 목포에 4번 놀러가며 영화 <명량>에 나왔던 진도의 회오리치는 울돌목도 가보고, 국립나주박물관에서 뜬금포 신석기시대를 엿보기도 했지만 도무지 그 목욕탕의 매력을 능가하는 건 아직 없는 것 같다. 그외에도 바닷가 까페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조용한 밤바다 부둣가에 흔들리는 낚시배들 풍경을 보면서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 수도 있는 곳. 멀지 않은 영암 F1서킷에 경기가 있을 때 가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다음 여행때는 보성 녹차밭을 가기로 했으니, 갈 때마다 느끼는 편안함과 새로운 일정에 또 기대가 된다. 좋은 사람, 재밌는 추억,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다. 휴가가 별거 있나, 누군가의 일상이 나에겐 새롭고 특별한 것이 휴가인 것. 멀리 가봤자 피곤하고 돈만 많이 든다. 아이러브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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