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 그 미묘함에 대하여 #12 - 카톡 읽씹

나는 무엇이 두려워서 도피하는가.

by 홍마담
[누나 뭐해]


P의 카톡이었다. 남자 사람 친구를 남사친이라 한다면 남자 사람 동생이니 남사동이라 해야 할까. 십수 년 전 P를 처음 만난 자리였던 4:4 미팅에서의 사랑의 작대기는 이리저리 엇갈려 운명의 사랑이 탄생할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아무도 짝을 이루지 못한 채 미팅은 끝이 나고야 말았다.


그러나 비록 남친은 얻지 못했을지언정 이십 대는 연인의 관계 외에도 여러 스타일의 인연이 가능하다고 믿던 시기가 아니었던가.

나와 P 또한 십 수년의 긴 시간 동안 ‘아는 누나’와 ‘아는 동생’의 역할을 충실히 지켜오고 있었다.


[어머, 오랜만. 웬일이야? 누나 출근했지. 벌써 피곤하다 ㅠ]


[토요일에 뭐해 누나? 나 서울 가는데. 얼굴 보자!]


[좋지. 오랜만에 보겠다. 점심때쯤 볼까? 누나가 밥이랑 커피 쏠게.]


[커피 ㄴㄴ 술 사줘.]


술? 나는 물음표를 입력했다가 다시 지우고 핸드폰을 책상 위에 뒤집어 올려두었다. 성급하게 메시지를 확인해 읽음의 표식인 ‘1을 없앤 것’을 자책하면서.




아는 동생의 술 사달라는 단순한 제안에 내가 이토록 주저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1) 돈이 없어서 2) 술을 못 마셔서 3) 남자가 매력이 없어서 4) ‘무엇’인가가 두려워서


돈이 없어서? 현재 애인도 없다. 딱히 고급 취미를 즐기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술 한 잔 사줄 여력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술을 못 마셔서? 한동안 나의 지인들은 홍주연이라는 이름 대신 애주가와 애연가를 합한 ‘애주연가’로 나를 칭하지 않았던가. 물론 ‘다시 술 마시면 개’라고 일 년에 수십 번을 다짐하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개가 되고 후회하는 것을 반복하는, 알코올 러버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남자가 매력이 없어서? 절친에게 흔쾌히 소개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외모와 성격이니 무난하게 패스하도록 한다.


그럼 ‘무엇’인가가 두려워서?


단 둘이 보는 게 두려운가?

일단 서로 반말을 쓰는 것을 보아 격식을 차리는 불편한 사이는 아니다. 그렇다고 허물없이 친밀한 사이냐 하면 그 정도는 아니다. 미묘한 이성적인 느낌이 있었는가 묻는다면 곰곰이 생각하고 따져 봐야 할 정도랄까. 단체로 여럿이 보기에는 반갑고 단 둘이 만나기엔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할지 미리 정해놔야 할 정도로 약간은 어색하나 크게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다.


그럼 술을 마시는 것이 두려운가?

음, 술과 밤이 가져오는 남녀 사이의 그 어떤 미묘한 분위기의 변화는 비단 나만이 공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른둘, 무려 서른둘이다. 술과 밤이 일으키는 마법의 판타지 속에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벼락같은 로맨스와 다양한 형태의 만남의 케이스를 봐왔겠느냔 말이다.


한동안은 만남에 있어서 그 마법의 묘약을 필수 아이템으로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그 들뜨고 후끈거리는 분위기, 상대방의 성적 매력이 본능을 자극하고 나 역시 어필하고자 하는 매력을 최대치로 발산할 수 있는, 술과 밤은 그야말로 사랑의 ‘부스터’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가혹하게도 술과 밤의 마법은 썸남, 썸녀에게만 유효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 숱한 로맨스의 케이스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실수와 후회의 케이스들이 얼마나 꿋꿋하게 역사를 이루며 존재해왔던가.

단지 P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 같은 이유들로 남녀 간의 술자리는 내게 종종 미묘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곤 했던 것이다. 게다가 로맨스의 상대가 아닌 자의 ‘술 한 잔 하자.’제안은 또 어떠한가. 바로 그 지점에서 파생된 머뭇거림은 결국 나로 하여금 ‘카톡 읽씹’을 시전 하게 하고야 말았다.




“별로. 난 딱히 공감 안 가는데? 단 둘이 술 마시는 게 뭐 어때서. 꽐라 될 때까지 마시는 게 이상한 거지. 그냥 아는 동생이라며. 십 년 동안이나 알고 지냈다며.”

‘나만 이래?’라는 질문에 매정하게 ‘응, 너만 그래.’라고 답하는 W. 딱 한 사람의 공감만 있으면 안심이 될 것 같았는데 그저 나의 예민함만 확인한 셈이었다.


“근데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데 굳이 술을 마시자고 하는 건 좀 이상하잖아. 그것도 단 둘이.”


분기별로 한두 번씩의 안부 문자, 연간 한 두 번의 만남, 그마저도 벌써 오륙 년이 넘어버린 것 같지만. 단체로 만난 자리에선 보통 옆자리에 앉곤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확실하게 ‘썸’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었다. 딱히 관심이 있다고 말하기엔 부족하고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보기엔 아주 애매한 그런 사이. 그런 사이에 단 둘이 술을 마시자는 제안이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걸까?


“굳이 술을 먹는 게 아니라 술 아니면 할 것도 없잖아. 아, 그냥 별 뜻 없다니까.”


“아니야! 그러면 내가 커피 마시자고 했는데 왜 굳이 술 마시자고 했겠냐?”


발끈할 일이 아닌데도 발끈해버리고야 말았다. 내 말이 맞는다고 해봐야 이득 될 것이 없는 것이 분명한데도, 지금 이 순간 술 마시자는 이 심각한 제안을 사소한 안부 인사로 치부하는 것은 날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아 나는 이것이 결단코 사소한 일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었다.


“낮엔 약속 있어서 저녁에 보자고 한 거 아니냐? 야, 그렇게까지 부담스러우면 못 만나겠다고 그냥 말해.”


“흠……. 모르겠어. 생각 좀 더 해보고.”


내가 뱉어놓고도 답답하다. 도대체 무엇을 모르겠고 무엇을 더 생각해보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내 마음이 시원하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고 확실했다면야 ‘카톡 읽씹’을 시전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병신이냐? 그럼 계속 씹을 거야? 아무리 동생이라도 그건 너무 실례지. 서른둘이나 먹어가지곤. 애야?


“아, 몰라! 끊는다. 이따 통화해.”


병신이라. W 말마따나 병신 같아 보이는 답변이긴 했다. P와의 카톡 대화창을 열고 보내지도 못할 의미 없는 말을 썼다 지우길 반복하면서 난 생각했다.


친한 친구마저도 결코 이해하지 못할 머저리 같은 행동. 왜, 왜, 왜 어린애도 아닌데 나는 도피하고 있는 걸까.




이미 오래전부터 자연스레 스며들 듯이 알게 되었다. ‘술과 밤’이 가져오는 힘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생각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그것은 스파크가 튀는 강렬한 로맨스도, 몇 날 며칠 머리를 쥐어뜯을 만큼의 후회도 가져온다는 것을. 그리하여 술과 밤을 공유한다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어떤 선택보다도 도피가 편하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


‘술과 밤이 있는 한 남녀 관계에 친구 사이란 없다.’


나는 살면서 수도 없이 이 말을 접했다. 그러나 친구가 있을 수다, 다는 공감과 비공감을 떠나서 나는 이 말을 인정할 수 없다. 술과 밤에 책임을 전가시켜 실제보다도 문제를 단순화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현실은 그처럼 단순하진 않다. 예를 들면 아주 흔하게 벌어지는 이런 상황들 말이다.


어느 날,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한 남사친이 실연을 했다며 만남을 제안한다. 1차로 삼겹살을, 2차로는 맥주를 마시고, 마지막으로 남자와 여자는 바에 가서 간단히 칵테일 한 잔씩을 마신다. 이제 집에 가자며 일어나는 여자의 손목을 남자가 잡는다. 손목을 잡은 채 남자는 토끼 눈을 뜨고 여자를 쳐다본다. 그들은 놀라서 동시에 외친다.

“왜?”


각자의 당혹감이 담긴 ‘왜’의 각기 다른 의미는 보이는 것과는 달리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나는 직간접적인 여러 경험을 통해 암묵적 룰을 얻게 되었다. 술과 밤이 있는 한 친구사이는 없다는 말 이전에 술과 밤을 공유하자는 제안을 수락함과 동시에 그녀에게 요구되는 어떤 ‘역할 기대’에 대한 룰 말이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역할 기대가 존재하는 세계는 결코 조심스럽지 않으며 생각보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견고한 질서라는 것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었다.


뭐랄까, 그것은 결코 의문을 던지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도 당연한 세계였다. 그래서일까. 우습게도 내가 그 역할기대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상대방에겐 당혹감을, 내게는 거부에 대한 미안함을, 아니 나아가 죄책감까지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다. 특히 감성이 둔감하지 않은, 민감한 사람에겐 더더욱 그랬다. 상대방의 생각을 감지하고, 내게 주어진 역할기대를 알아채는 것에 예민했으므로.

뻣뻣하거나 재수 없는 여자로 생각되고 싶지 않은 마음은 과연 본능일까, 학습된 것일까. 감정을 봉인한 대신 나는 술값을 내가 전부 계산하는 것 등으로 상대를 배려하면서 동시에 내게 씌워진 역할기대에 대한 거부를 최대한 돌려서 표현하곤 했다. 불편했지만, 그럼에도 미움 받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그 불편한 세계가 변할 리 만무했고, 나는 이 견고한 질서의 세계를 결코 무너뜨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나는 항복했고, 적응했으며 점점 도피의 방법을 택했다.




[누나 토요일 ㄱㄱ?]


잔인하게도 더 이상의 도피를 할 수 없을만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그때는 어떤 선택이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낮에는 약속 있어서 저녁에 보자는 거 아니냐.’


W가 언급했던, 존재할 수도 있을 다른 경우의 수를 기대하면서 나는 키패드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래, 십 년이다. 무려 십 년 동안이나 아는 동생과 아는 누나의 역할에 충실해 오지 않았는가.


[누나 약 먹고 있어서 술은 안 될 것 같은데, 간단히 저녁이나 먹을까?]


이 상황에서도 굳이 약을 먹는다는 핑계를 댈 필요가 있을까. 상대방이 당황하지 않도록 최대한으로 돌려 말하는 내가 초라하고 우습게 느껴졌지만 이렇게 방어의 태도를 취하는 것보다 상처를 최소화할 최선의 방법이 없다는 것 또한 이미 알고 있었다.

[ㅠ헉. 진짜? 누나 그럼 푹 쉬어. 나 다음에 서울 올라올 때 연락할게. 회복해놔!]


내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단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반전 따위 없는 예상했던 결말은 이처럼 불쾌하면서도 찝찝한 뒷맛을 가져오곤 하니까.


술 한 잔 하자는 제안이 가벼운 안부인사에 그칠 것이란 W의 말은 이번만큼은 틀렸다. 이제 나는 밥 한 번 먹자는 말의 가벼움만큼이나 술 한 잔 하자는 말에 담긴 무게가 더 묵직해졌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경계해야만 하는 것인지 까지도.


[알았지?]


연달아 온 P의 메시지가 핸드폰 화면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홀드 버튼을 눌러 액정을 꺼버렸다.

나는 무엇이 두려워서 도피할까.


서른이 되면 두렵지 않을 줄 알았다. 나의 세계는 더 이상 어리숙하지 않고 성숙할 줄 알았다.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판단하고 확실하게 표현할 줄 알았다.

아니, 여전히 나는 부담스럽다.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이 당연한 세계가, 나의 의견 따위 반영되지 않은 내게 씌워진 역할 기대가.

그리고 여전히 나는 두렵다. 확인하면 상처가 되고야 말,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희망의 가능성을 제거해버리는 그 사실을 들여다보는 것이 말이다.


나는 다시 홀드 버튼을 눌러 카톡 대화창을 띄우고 P와의 대화를 삭제했다. 그러곤 눈에 띄지 않게 핸드폰을 매트리스 위로 던져버렸다. 이젠 그의 톡이 보이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심장이 쿵쾅쿵쾅 세차게 뛰고 있었다.

언젠가 P는 알게 될까? 읽씹의 의미를. 누군가에겐 결코 공감할 수 없고, 무례하며, 또 바보 같아 보이는 행위일지라도 이 불편한 세계에 대차게 반항할 자신 없는 소심하고 예민한 누군가에겐 읽씹, 아니 도피는 상대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한, 상대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한, 나름의 씁쓸한 방어책이었다는 것을.



[낯선천장] '공식적으로 사귀지 않는 남자와의 하룻밤'은 별 일인가 아닌가.
[쉬운여자] 삼십 대 여자는 쉬워야 돼요? 내겐 너무 무례한 세상
[금기사회] 금기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녀들의 생존 전략
[삼십대소개팅] 우리는 왜 서로에게 반하지 않는가.
[연하남] 착각의 늪. 그 달콤 쌉쌀한 환상에 대하여

홍마담쌀롱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MVI-WRQYPQFToxaq4Nn04A

인스타그램: @hong_ma_dam

keyword
홍마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프로필
팔로워 1,118
매거진의 이전글삼십 대, 그 미묘함에 대하여 #11 - 관대한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