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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마담 Aug 08. 2023

사.확.행

예랑이에게 언제 확신이 들었나요.

사랑하게 되는 건 ‘늘’ 한순간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이십 대 초반부터 서른 중반이 되어갈 때까지 한결같이 ‘남들은 납득할 수 없는 사소한 이유’로 금세 사랑에 빠졌다. 하기야 오래된 베프 K는 소개팅한 남자와 첫 술자리에서 ‘짠을 하는데 글쎄 잔을 든 그 사람 손이 부들부들 흔들리더라니까.’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그래서 그 사람이 좋아졌어.’라며 교제 시작을 알려온 적도 있으니(그러나 나만큼은 상당히 공감했다) 이건 비단 극소수의 얘기는 아닐 테다.

    

내가 만났던 남자들의 수만큼, 사랑에 빠진 이유도 각기 다 달랐다. 대단한 계기가 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누구는 랩을 잘했고(심지어 자작랩도 했었고), 누구는 손이 커다랗고 고왔다. 누구는 길가에 떨어진 대리석 조각을 주워다가 고기를 올려두곤 토치를 이용해 고기를 구웠고(그 과정은 약간의 의식이라든지 조금의 생색도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으며 경험해보지 못했던 기막힌 결과를 가져왔으므로 나는 비(非) 도시의 제대로 된 상남자의 기운을 느꼈다), 누구는 ‘가게 이모’를 부르지 않고 직접 ‘처음처럼’을 꺼내왔다. 사소한 것에서 나는 확신했다. 아, 나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될 것 같아. 그 후엔 어떻게 되냐고? 그럼 여지없이 그 사람은 사랑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이로 말할 것 같으면 ‘궁둥이가 가벼운’ 사람이었다. 본인의 지인들과의 캠핑 자리에 날 초대해 놓곤, 쉬지 않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앗, 캠핑장에 오는데 치마를 입고 오셨네.”라며 나를 향해 당황과 한심함을 반반 섞은 표정을 보여주더니만 본인의 바지를 부랴부랴 꺼내 건네주고, 내 주변에 난방기구를 설치해 주고, 분명히 일 분 전에 랜턴을 머리에 매달고 고기를 굽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언제 다가왔는지 핫팩 몇 개를 내 손에 얼른 쥐여주곤 조명을 매달고 있었다. ‘궁둥이가 가벼운’ 인간이 싱긋, 해맑게 웃었을 때 나는 확신했다. 아, 나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될 것 같아.

     

‘궁둥이가 가벼운’ 남자와의 연애는 순조로웠다. 연애를 시작하고 5개월 후쯤 자궁에 팔 센티미터가 넘는, 딱풀만 한 근종이 발견되어 수술하게 됐을 때, 코로나에 걸린 내 엄마를 대신해 그이가 보호자 노릇을 자처했다. 마취에서 깨 구역질을 하는 내 손을 잡고 안심을 시켜준 것도, 피가 많이 묻은 병원복을 갈아입혀 준 것도 그이였다.


나는 코로나가 걸린 엄마가 오지 못한 내 집 대신 남자친구의 집으로 퇴원했고 극진한 간호를 받았다. 그이는 요리는 못했지만, 음식을 먹음직스럽고 정성스레 내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한 날은 돼지고기가 푹 익은 걸쭉한 김치찌개를, 한 날은 국물이 뽀얗고 고기가 야들야들한 닭백숙을 포장해 와 깔끔한 식기에 정갈하게 담아 내놓았다. 서너 끼 정도는 계란과 스팸을 직접 구워주기도 하였고, 인도식 정통 커리 스타일의 전자레인지용 카레를 해줄 때도 있었다.


집에서도 그이는 진득하니 궁둥이를 대고 있질 않았다. 끼니를 챙기는 것 외에도 내 머리에 기름이 심하게 끼고 냄새가 난다 싶으면 욕실에 의자를 두고 나를 앉힌 다음, 세면대에 머리를 뒤로 젖히게 해 미용실 방식대로 머리를 감겨주었고,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탈탈 털어 드라이기로 바싹 말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아침 점심 저녁으로 회복을 위한 산책을 도왔고, 시간 맞춰 복용해야 할 약과 함께 물을 챙겼다. 나는 그이의 지극한 간호를 받아들이며 그 호사를 온전히 즐기고 누렸는데, 그때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남자친군데 이 정도쯤이야.”      


일주일쯤 지나니 복부의 통증이 조금 사그라들고 거동이 비교적 편해졌다. 내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남자친구와의 이 ‘안락한 동거’를 조금 더 지속하고 싶었다. 같이 ‘살아보니’ 그는 궁둥이가 가벼워 부지런하고, 세심하고, 또 상당히 깔끔한 사람이었다. 함께 지내기에 편하고 괜찮은 사람이었다. 자연스레 이 안락한 동거는 일주일 더 연장되었다.


다만 거슬리는 부분이 딱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두루마리 휴지 방향’이었다. 화장실 휴지 끝부분을 바깥쪽으로 오게 거느냐, 안쪽으로 오게 거느냐. 내게 있어 그 방향은 타협할 수 없는 신념이었다. 독립한 딸내미 집에 며칠 머무르던 엄마 앞에서도 나는 뻣뻣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엄마가 나온 뒤, 나는 얼른 화장실을 들여다보곤 오래된 싸리 빗자루만큼이나 푸석푸석하고 뻣뻣하게 말했다. “우리 집에 오면 우리 집 룰을 좀 지켜줬으면 좋겠어. 휴지는 반대로 걸어줄래?” 오해는 마시라. 남의 집에 가서도 ‘어머, 너는 휴지 이렇게 걸어? 타일에 수증기가 응결되면 축축이 젖을 텐데. 특허 개발자 도안도 휴지 끝이 바깥쪽으로 거는 거였대. 아직 못 봤나 보다.’라고 얄미운 훈수를 둘 정도로 도라이는 아니니까. 단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진부한 진리를 명심하고, 각자의 문화를 존중해 주자는 마음일 뿐.


아무튼 그이의 집에 머무르며 유심히 지켜본 결과 휴지 끝의 방향은 대략 바깥이 3, 안이 7 정도의 비율로 대중없이 걸리는 듯했다. 신념이 딱히 없는 사람이었다. 이 집안의 휴지 문화는 없구나. 그렇다면 오케이. 동거하는 이 주 간 두어 번쯤, 나는 슬며시 내가 원하는 대로 방향을 바꿔두곤 했다.

     

몸이 완전하게 회복되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나는 그이와 제주 여행을 계획했다. 실로 오랜만의 여행이었다. 기분 좋게 까슬거리는 해변의 모래알, 아름다운 바다 정취, 대자연의 생명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한라산, 그리고 고소하고 쫄깃한 식감과 깊은 풍미를 자랑하는 제주의 흑돼지, 바다내음 가득 품은 여러 해산물을 떠올려 보면 역시 제주는 최고의 여행지였다. 하지만 그보다 일단 난 사락거리는 보드라운 호텔 침구에 얼굴을 부비고,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탁 트인 통창 밖으로 청량한 하늘과 푸르게 우거진 제주를 바라보면서, 때로는 인피니티 풀에 몸을 담그고 싱그러운 공기에 둘러싸인 채 온전한 쉼과 여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다양한 제철 식재료로 만들어진 신선한 조식을 즐기고, 전망이 아름다운 루프톱 바에서 달짝지근한 칵테일 한잔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내게 주어진 모든 ‘고오급진’ 서비스를 제대로 누리고 싶었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일상에서 벗어난 비일상, 일탈, 충만한 ‘갬성’ 확장, 낭만의 향유, 뭐 그런 것 아니겠는가. 상상만으로도 강렬한 흥분감에 얼굴이 상기되고 가슴이 홧홧하게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5성급 호텔을 알아보고 있던 내게 그이는 제주도에 사는 매형이 서울에 볼일이 있어 얼마간 집이 비게 되니 그동안 우리가 그 집에서 지내도 된다며 미소 띤 얼굴로 천진하게 말했다. 살면서 난 늘 순수함에 약했다. 가정집 숙박은 예상에 없었는데, 연애 전 나를 무장해제 시켰던 그이의 해맑은 미소, 그 천진한 대답 앞에 나의 ‘고오급 호텔 숙박 여행’이라는 행복한 상상은 생명력을 잃고 금세 막을 내렸으나,

    

기우였을까.

      

매형의 집은 생각보다, 아니 그냥 보아도 너무 좋았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었던 것은 햇살이 널찍한 거실 바닥 가득 스며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채광이 좋아 환하고 따뜻했다. 두 손 가득 든 짐을 내려놓고 얼른 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열어젖히자 기분 좋은 바다 냄새가 훅 밀려왔다. 광활하고 푸른 제주 바다였다. 캬, 이게 바로 진정한 ‘오션 뷰?’ 절로 감탄이 나왔다. 두 명이 누워도 충분할 넓고 푹신한 소파, 커다란 대형 스크린의 티브이, 게다가 거실 중앙에 고급 실내 자전거까지(저 바다를 향해 달리는 느낌으로 페달을 돌리면 덜 힘들려나?). 말 그대로 부족함이 없는 집. 별로이면 어쩌나, 하는 우려는 증발한 지 오래였다. 색다른 환경이 들뜬 마음을 부추기고, 기분 좋은 흥분의 공기가 내 주변을 두툼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대박. 겁나 좋은데?”   

  

낯선 감흥, 비일상적인, 흥분되는, 모호하게 뒤섞여 떠오르는 그것들을 확연한 언어로 내뱉어내자 상황이 선명해지면서 일상이 훅 끼어들었다. 무언가 짜릿한가 싶더니만 이내 급박한 요의가 느껴졌다. 화장실은 신발장에서 들어와 바로 왼편에 있었다.


쫄쫄쫄쫄쫄쫄쫄쫄쫄- 세상에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사랑, 재채기, 그리고 오줌...이라고 했나..? 강렬한 오줌 줄기는 좀처럼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졸졸졸졸졸졸졸졸졸, 체감상 이 분은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멈추지 않는 오줌을 누면서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이곳이 가정집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아마도 일주일은 사용해 왔을 얄팍한 두루마리 휴지가 보였다. 물기를 머금지 않아 보송하게 메말라 있었지만, 어째 휴지 끝이 보이지 않아 몇 바퀴를 돌려보다 보니 그것은 안쪽에 숨어 있었다.

     

급한 요의를 시원하게 해결하고 나왔을 때, 그이는 역시나 궁둥이를 흔들어대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모습은 흡사 열정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이를 졸랑졸랑 뒤따라 다소 조심스레 흘깃대며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집 구경을 했다.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단정하고, 깔끔하고, 쾌적한 집이었다. 게다가 내 집과는 다르게 작지 않은 평수였다. 안방에도 작은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이번에도 두루마리 휴지가 시선을 붙들었는데, 역시나 휴지 끝 방향이 안쪽이었다. 이 정도면 주인장의 신념이지. 특이하시구먼.


안방에 이어 옷방과 부엌까지 모두 둘러본 후 거실 소파에 엉덩이를 깊게 붙였다. 긴장이 풀려 노곤해진 몸을 늘어뜨리고 얼마간 편안히 쉬어볼 셈이었다. 여전히 그이는 이방 저 방을 옮겨 다니며 짐을 풀고, 챙겨 온 옷을 걸어두고, 집에 들어오기 전 사 온 물이며 음료들을 냉장고 안에 정리하며(이 와중에 재활용까지 분류하며) 바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편안한 자세로 쉬고 있는 나를 포착하곤(하지만 움직임을 멈추지 않으며) 내게 얼른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란 말을 잊지 않았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괜찮은 카페가 있다면서. 그의 부지런함은 특이점이 있었다. 그것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해서 ‘나 지금 막 앉았어.’, ‘아, 잠깐만’, ‘오 분만’을 늘상 기계적으로 외쳐왔던 나도 어쩐지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힘. 대답 대신 주춤주춤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어차피 추레한 거, 대충 얼굴 상태만 점검하고 모자만 얹어 쓰고 나갈 생각이었다.  

    

어랍쇼.     


화장실로 들어선 순간 이유 모를 혼란한 기분이 나를 꽁꽁 붙들어 매는가 싶더니, 막 잠에서 깨 서서히 정신을 차리는 것처럼 어렴풋이 느껴지던 것이 이내 구체적으로, 또렷이 변하기 시작했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그것, 혼란함의 정체는 휴지였다. 어느새 휴지 끝이 바깥으로 빠져있었다.   

   

“근데 휴지, 아까 반대로 걸려있지 않았어?”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려 급하게 던진 물음에 그이는 에, 그것이 문제가 있느냐는 표정으로, 당신이 그쪽을 좋아하잖아?,라고 태연하게 대답하며 여전히 그 바쁜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 순간 내 속에서 터진 환희의 소리가 ‘유레카’였는지, ‘앗싸라비아 콜롬비아’였는지, 아무튼 그건 중요치 않다. 다만 나는 다시금 내가 얼마나 사소한 이유로 사랑에 빠지는 사람인지 확인하면서 동시에 확신했을 뿐이다. ‘아, 나 이 사람이랑 평생 살 것 같아...!’

     

결혼을 준비하면서 유명한 결혼 준비 카페에 가입을 했다. 결혼을 준비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그 유명 카페에는 하루에도 수천 개의 글이 올라오는데, 각각의 사연들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난 아직도 그 카페를 끊지 못했다. 일 년쯤 들락거리니 올라오는 글의 종류도 대충 비슷한 것을 파악했는데, 그중 ‘스테디셀러’처럼 꾸준히 인기 글에 오르는 질문이 있다.


‘예랑이에게 언제 확신이 들었나요.’

      

언젠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카페 인기 글을 보다가 그이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언제 당신에게 확신이 들었게. 그이는 아주 짧게 생각하는가 싶더니 아, 이 정도 질문이야 식은 죽 먹기라는 식의 표정(MZ 언어로 말하자면 킹 받는 표정이랄까.)으로, ‘수술하고 간호했을 때!’라고 답했다. 아닌데, 난 자기가 휴지를 잘 걸어서 이 남자다, 싶었어.라고 답하자 그이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작은 눈을 끔벅였다. 진짜야. 여보가 휴지를 잘 걸잖아.

     

수많은 예신이들이 궁금해하는 그 진부한 질문에 대한 내 답은 ‘사확행’이다. ‘사소하지만 확실한 행위’. 사소함이란 곧 일상의 작은 한 조각이고, 그것에 얼마나 많은 것이 깃들어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사랑이 싹트는 건 거창한 이유보다도 그의 생활이 깃든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울 테니까.


자작 랩을 즐겨하던 친구는 나를 향한 마음을 놀랍고 신선한 글과 말로 표현할 줄 알았고, 대리석과 토치로 고기를 기가 막히게 구웠던 친구는 허세 없이 담백해 까다롭고 예민한 날 언제나 편안하게 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궁둥이가 가벼운, 지 방향을 바꿔 걸어준 남자는 부지런할 뿐 아니라 공치사를 하지 않는, 세심함과 배려심이 자연스레 몸에 밴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남편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첫 문단의 ‘남들은 납득할 수 없는 사소한 이유로 사랑에 빠졌다.’는 문장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나의 ‘금사빠’ 기질은 오히려 사소함에 담긴 그 사람을 알아보는 촉이 발달 ‘진화된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이런 문장은 어떨까. ‘사소함에 숨겨진 사소하지 않은 의미를 발견하고 금세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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