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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마담 Aug 16. 2023

파뿌리가 검은 머리 되도록

흰머리 신부의 거꾸로 된 사랑의 언약  

지금 와서 얘기지만 언제나 인생을 대충대충 살아왔던 ‘대충이’ 인간의 결혼‘식’ 준비는 상당히 버거운 일이었다. 무려 서른다섯 해나 결혼 생각 없이 살아온 나로서는 정말, 진정으로 결혼에 대한 아. 무. 런 지식이 없었다. ‘스드메’가 무언지(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의 준말이라고 한다), ‘헬퍼’가 무언지, 또 플래너가 뭔 일을 하는지도 몰랐을뿐더러 식순, BGM, 부케, 식권, 답례품 등을 부부가 전부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과정을 거쳐 결혼식을 무사히 치러냈다는 것은 마치 까막눈이 한글을 깨쳐 두툼한 책 한 권을 읽어낸 수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특한 일이었달까.

      

그 과정에서 어디 예비 신부, 신랑만 고생했으랴. 양가 부모님들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는데, 상견례, 하객 인원 파악 등 여러 필수 과정을 하나하나 퀘스트 깨듯 밟아나가야만 했고, 한복 및 예복, 폐백 여부 등 여러 선택의 순간에서 고민해야만 했다. 허나 그중 끝판왕은 역시나 덕담과 성혼 선언문이 아니었을까. 당시 우리 결혼식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여왕, 영원한 국민 여동생, 피겨 퀸 김연아의 결혼식에서의 시아버지의 축사가 큰 화제가 되었는데, 그 축사 전문을 읽어보고 어찌나 크게 감동했던지 ‘다른 것은 대충 때워도 축사만큼은 아버지들이 우리에게 진심이 담긴 말씀을 해주셨으면 한다.’라는 부부의 의견에 따라 양가 아버지들이 주요 임무를 수행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대활약에 하객들이 진하게 감동하여 소매 끝으로 눈물을 훔쳐내는 장면을 상상하면 짐짓 설레기도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부탁을 드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 극심한 걱정에 짓눌리기 시작했는데, 그놈의, 그놈의 결혼 준비 카페가 문제였다.


그때까진 까맣게 몰랐지만 결혼 준비 카페에서도 어른들의 축사에 대한 고민은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세미 단골’ 소재였다. 몇 번인가 인기 글에 ‘지나친 종교색의 축사, 구시대적인 언어를 사용한 덕담’과 같은 고민 글이 올라온 것을 목격하곤 했던 터였다. 한날 ‘딸을 잘 키워 보내주셔서 감사드린다.’, ‘아내는 남편을 잘 섬기고’ 라거나, ‘자녀는 꼭 둘을 낳아라.’ 등의 문장이 포함된 축사 때문에 애를 먹었다는 고민 글을 보았을 때 나는 꼭 설사를 할 것처럼 배가 아파왔다. 스멀스멀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었다. 뭐지, 이 낡아빠진 문장은? 이게 진짜 실화? 좀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문장을 쓸 순 없는 거야?

      

아빠와 아버님을 믿지만 어쩐지 마음이 불안했다. 아니, 아니다. 사실 어쩌면 전통적 남성성과 여성성이 강조되고 성역할이 자연스레 분리된 사회를 살아온, 보수적인 육십 대의 남자들에게 굳건한 믿음이 없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나의 부모님께 성혼 선언문이야 간단한 것이긴 한데 그래도 상투적 표현은 지양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얼른 쓰시고 나를 한 번 보여달라며 닦달하였고, 그이에게는 어머, 아버님 덕담 너무 기대된다. 뭐라고 쓰셨을까. 한번 보고 싶다..! 혹시 유머 코드 같은 걸 녹이진 않으셨을까? 궁금하다..! 아니 진짜 한 번 찍어 보내주시라 해봐.라고 장황하고 조잡하게 연기를 해가며 아무튼지 간에 ‘사전 검수’를 꼭 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걱정 말거라. 아빠가 또 글 잘 쓰는 걸로 유명했다.’ 강한 자신을 내보인 아버님, 그이의 집과는 반대로 문제는 우리 집이었다. 나의 ‘사전 검수’가 부담이 되었는지, 아님 애초에 생각지도 못했는지 난색을 보인 것이다.


그럴 바에 네가 그냥 쓰면 안 되겠니. 

아니, 내가 수정을 할 순 있겠지만 처음부터 쓰고 싶은 게 아니란 말이야.

네가 예시를 한 번 보여주든지. 그럼 엄마 아빠가 그거 보고 써볼게. 

아니, 아빠가 나한테 으른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 아냐. 나는 진심 어린 말을 듣고 싶다고.

아이고, 남들은 어떻게 쓴다니. 

아, 그냥 아무렇게나 써. 막 그런 거 있잖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뭐 그런 거.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것은 그때였다. 왠지 모를 오묘한 감정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 사랑의 맹세가 ‘로맨틱’과는 거리가 먼 촌스러운 문장이라서가 아니었다. 으레 쓰이지만 어떠한 울림도 주지 못하는 ‘구어’ 여서가 아니었다. 역대 최고치의 이혼율을 기록하는, ‘백년해로’가 수명을 다한 현대 사회에 결혼이라는 것이 진정 옳은가 하는 철학적이라거나, 허망한 마음이 갑작스레 들어서도 아니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라는 문장이 성립하기 위해선 나는 적어도 이미 십 년 전에는 결혼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첫 책인 <33의 3>에도 썼지만 나는 남들보다 빨리 들이닥친 노화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십 대 중반부터 한 가닥씩 목격되던 새치는 삼십 대에 들어서자 ‘뽑기’가 무색하게 그 영역을 빠르게 넓혀 갔고, 최대한 발악하고 저항했지만 서른다섯의 나는 이미 흰머리가 성성한, 파뿌리 머리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런 이유로 서른이 넘어가면서 나는 ‘썸’을 탈 때마다 썸남에게 흰머리를 들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그것을 사수하기 위한 여러 작전을 수행하곤 했다. 나란히 걸으면서도 부자연스럽게 머리를 기울이며 최대한 멀리 떼 걸었고, 카페라도 간다 치면 가장 흰머리가 많이 나는 귀 옆에 괜스레 손바닥을 대고 흰머리를 교묘하게 가리며 대화를 나누곤 했다. 어쩐지 내게 가까이 다가온다 싶으면 괜히 고개를 한 번씩 휙휙 돌리며 그들의 ‘주시’를 방해했다. 그러다 사이가 진전되면 며칠 전부터 마음을 굳게 먹고 울음을 꾹 참으며 고백했다. 사실 나, 흰머리가 많다고. 엄청 많다고. 누군가는 놀랐다는 듯 눈을 끔뻑였고,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대부분 그래도 뭐, 괜찮아. 머리 검고 못난이보다야 흰머리에 귀요미(?)가 낫지, 하며 애써 나를 달래주었으나 누가 뭐라 위로해도 그 고백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과정이었다.

      

또 한 번의 나의 심각한 커밍아웃(울먹거림을 한 스푼 더한)에 그이는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다만 대단히 태연했다. 그게 뭐 어때서? (나 거의 할머니라고!) 아니, 나 진짜 일부러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그이는 한 달에 한 번 가는 단골 미용실에 동행하는 것을 시작으로 나의 콤플렉스의 동행자가 되었다. 감추고 싶은 콤플렉스를 포함한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하라는 것은 불가능이다. 단점마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고 관리하고 가꾸며 어울려 살아갈 순 있겠지. 말하자면 콤플렉스와의 상생..이랄까. ‘고잉 그레’(염색하지 않고 자연스레 흰머리를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은 검은 머리를 유지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과정이야. 그래, 지겨울 때까진 검게 물들여 보는 거야..!

      

이 어수선하면서도 꼿꼿하고, 시끄러우면서도 확고한 나만의 ‘나이 듦 적응’ 캠페인을 그이는 곁에서 묵묵히, 그러나 기꺼이 지지해 주었다. 몇 번이나 미용실을 같이 갔을까. 한 달이 지나고 또다시 정수리에 흰머리가 송송 올라오고 귀 옆쪽이 하얗게 물들기 시작하던 어느 날, 그이는 유튜브에 ‘셀프 염색’을 검색해 몇 번인가 유심히 보더니만 미용실을 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이제는 ‘우리 집 홈 살롱’의 베테랑 미용사가 된 그이의 첫 ‘시술’ 날이었다. 나의 콤플렉스를 온전히 내보이고 그에게 모든 처치를 내맡기는 것. 그것은 꽤 떨림을 주는, 쑥스러운, 그러면서도 아주 흥분되는 특별한 경험이었는데, 나는 그 첫 경험을 통해 오, 안정감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배우게 되는 동시에 내 콤플렉스, 흰머리도 이제 그의 시선에서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비로소 홀가분해진 것이다.

      

결혼식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언제나처럼 염색을 하는(물론 받는) 와중에 문득 떠오르는 어떤 명쾌한 생각에 나는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은 모습이 이러했을까.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평생 사랑할 것을 맹세하시겠습니까.’ 대신에 ‘파뿌리 검은 머리 되도록 평생 아내의 머리카락을 염색해 주며 사랑할 것을 맹세하시겠습니까.’라고 하는 거야. 이거다, 이거야..! 이거야!!!!     


이 놀랍고도 기막힌 아이디어에 나는 염색약을 바른 바보 같은 얼굴로 솟아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싱글벙글 웃었는데, 늘 프로페셔널하고 진지한 태도로 시술에 임하던 그이도 나의 그 바보 같은 얼굴만은 참을 수가 없었는지 연거푸 사진을 찍어대며 놀려댔으나 환희에 빠진 인간에게 그 무엇이 타격감을 줄 수 있을까. 조금 전까지 또다시 하얗게 센 머리에 얼마나 실망했는지도, 염색약을 도포한 얼굴이 얼마나 우스운지도 까먹은 채로 나는 신나게 나불나불 떠들었다.

      

결론적으로 나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결혼식은 무게감 있게 하고 싶다는 보수적인 육십 대 부모님의 의견으로 실제 결혼식장에서는 ‘신랑과 신부는 어떤 고난이 다가오더라도 언제나 사랑하며 아껴주고 지켜줄 것을 약속합니까? 언제나 존중하며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라는 세상 상투적이고 밋밋한 문장이 무겁게 쩡쩡 울렸지만, 나는 속으로 멋대로 바꾸어 듣고 기쁘게 대답했다. 파뿌리 검은 머리 되도록 평생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한 달에 한 번씩 나는 나의 노화를 확인한다. 여전히 그것은 익숙해지지 않고, 상처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아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이제 나는 기꺼이 그것을 끌어안고 다독인다. 인정과 수긍의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상생과 동행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이가 나의 파뿌리를 검은 머리로 물들여 줄 시간이다. 염색약이 다른 곳에 묻지 않도록 미용실 가운 대신 얇은 비닐을 내 어깨에 두르고, 염모제와 산화제를 황금비율로 섞어 염색약을 만든 다음, 꼬리빗으로 머리카락의 영역을 섬세하게 나눈 후 꼼꼼하게 펴 발라준다. 얼룩이 생기지 않도록 비닐장갑 낀 손으로 살살 염색한 부분을 문지르는 것도 잊지 않는다.

      

흰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콤플렉스와 상생하는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나이 듦의 과정. 나는 그의 기꺼운 동행에 매번 감사해하며 그 시간을 충분히 즐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우리만의 사랑의 언약을 잊지 않는다.  

    

신랑은 신부의 파뿌리가 검은 머리 되도록 평생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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