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김영하 작가의 세바시 강연을 보았다. 강연 중에 김영하 작가가 대학에서 강의할 때 꼭 학생들에게 해보라는 것이 있다고 하였다. ‘나는 용서한다’라는 주제로 글을 써보라는 것이었다. 글을 쓰는 중에 어떤 학생은 도저히 못쓰겠다며 강의실을 뛰쳐나가고, 어떤 학생들은 눈물을 흘린다는 말을 하였다. 공감이 갔다.
나도 같은 주제로 글을 써볼까 생각을 해보았다. 솔직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쉽게 다룰 주제가 아니었다. 주제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지고,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런 것일까.
많은 이들이 말한다. 진정한 용서는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용서를 해야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머리로는 이해하나, 마음으로 진정한 용서를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용서는 용서받는 대상이 아니라, 용서하는 자를 위한 것이다. 자신을 위해 용서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어렵다.
오래전에 보았던 다큐가 생각났다. 자신의 가족을 무참하게 살해한 살인자를 용서한 어느 가장의 이야기였다. 그 가장은 살인자를 용서하였다고 한다. 자신의 눈앞에서 가족을 살해한 살인자를 말이다. 다른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함께 용서하자고 설득을 하기도 하였다. 물론 어느 누구도 그의 생각에 동참하지 않았다. 많은 역정과 분노만 돌아올 뿐이었다.
해외에도 그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만나서 눈물을 흘리며 아픔을 나누었다. 그리고 용서하는 삶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용서란 무엇일까. 쉽고도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는 작은 일로도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마음의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쉽게 서로를 용서하기도 하지만, 끝까지 상대방을 마음에서 용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물며 자신의 인생의 행로를 바꿔놓고 평생 가져가야할 아픔을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범인(凡人)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일 수도 있다. 어쩌면 신의 영역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용서.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자유와 행복의 문을 위한 하나의 열쇠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 자신조차도 용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일단 나 자신을 먼저 보듬어줘야겠다. 과거의 많은 후회들. 나 자신을 향한 책망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순서일 것 같다. 그리고 서서히 생각해 보아야겠다. 진정한 용서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