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일, 한시적 자유부인의 5월 첫 점심 산책
5월이 됐다.
4월 30일이나 5월 1일이나 그리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은데도, 거리에 나서 보니 눈에 띄는 변화들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덥다. 햇빛이 강해졌고, 바람도 덜 분다. 땀이 예전보다 더 금방 난다는 느낌이다. 여름이 이렇게 갑자기 훅 들어오면, 생각보다 야외 산책을 지속하기 어렵겠다는 불안감이 퍼뜩 든다. 물론 입사 후 첫 여름휴가지였던 7월의 도쿄보다야 서울의 습도가 훨씬 낮지만, 땀으로 인한 불쾌함은 물론이거니와 작열하는 태양은 자칫 자연의 무서움을 모르는 의기양양한 30대 성인 하나쯤은 픽 쓰러지게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는 빈 손 말고 물을 챙겨서 나가도록 해야겠다.
그보다 아 5월이구나, 정확히는 4월이 지나갔구나를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건 서울시청사에서 붙어 있던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이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지자체에서 공식적으로 일 년 내내 추모 분위기를 유지할 수는 없겠다. 그럼에도 왠지 서운한 기운이 드는 건 왜일까. 그 일이 사고가 일어난 4월에만 그렇게 반짝, 기억하고 끝날 일일까. 모든 것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명확히 밝혀지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은 분명히 지고. 정리될 것이 정리되고, 아이들을 놓아줄 수 있게 되면. 무엇보다도 그 날 이후로 전 국민이 목도한, 국가의 안전망 부재를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때서야 놓아줄 수 있는 문제 아닐까.
사실 흔히들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는데, 오히려 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당시 뱃 속에 있던 둘째는 이제 뛰어다닐 만큼 컸는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문득 덜컥 겁이 나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전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그 일을, 어떻게 매년 4월에만 기억하고 아파할 수 있을까. 리본이 붙어 있던 그 자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산책길을 나서기 전에도 사무실에서 옥시 레킷벤키저 한국지사가 연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사과행사(그것 그냥 행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른바 요식행위.) 생중계를 보고 나왔기 때문에 마음이 무거운 참이었다. 옥시 측은 말할 것도 없지만, 공기로 들이마시고 살에 직접 닿는 화학제품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없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식약처도 일을 제대로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음식이나 약물 등 복용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관리하면서 직접 먹는 게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일상생활에서 수도 없이 쓰는 화학제품에 대한 등록 및 관리감독 시스템이 없다니 이건 도대체 뇌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육두문자를 내뱉고 싶지만 참겠다. 베테랑의 유아인 말마따나 '어이가 없네'. 이렇게 우리 국민은 하루하루 서바이벌 게임을 클리어하는 중인 건가. 지금 이렇게 걷고 있는 것도 참 신통방통한 일일지도 몰라.
남대문에서 시청,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다시 남대문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리 낯선 길이 아닌데도 이런 착잡한 생각으로 길을 터덜터덜 걸으니 이게 내가 알던 그 길인지 아닌지, 세상이 내가 알던 그대로인지 아닌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평일 일과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인 내 소중한 산책길을 이렇게 어두운 생각으로 얼룩지게 만든 정부의 안일함에 통탄한다. 더 이상은 나쁜 뉴스를 보고 싶지 않다.
2015년 5월 2일
남대문~시청~덕수궁돌담길~배재공원~남대문
2.08km, 24:53